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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틀콕 재팬’ 이끈 박주봉 “강자에게 깨지며 배우게 했다”

[스포츠 오디세이] 일본으로 간 배드민턴 황제
지난 5월 26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배드민턴 세계 여자단체선수권(우버컵)에서 우승한 일본 선수들이 우승 컵을 들고 있는 박주봉 감독을 향해 존경과 감사의 표현을 하고 있다. 박 감독 왼쪽은 최상범 코치. [사진 박주봉]

지난 5월 26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배드민턴 세계 여자단체선수권(우버컵)에서 우승한 일본 선수들이 우승 컵을 들고 있는 박주봉 감독을 향해 존경과 감사의 표현을 하고 있다. 박 감독 왼쪽은 최상범 코치. [사진 박주봉]

일본 배드민턴이 세계 정상을 달리고 있다. 세계배드민턴연맹(BWF) 랭킹 남자단식 1위는 모모타 겐토, 여자단식 2위는 야마구치 아카네다. 여자복식은 1~3위가 일본 선수다. 일본은 올해 배드민턴 여자 단체전 세계선수권대회인 우버컵에서는 차지했고, 남자 단체전인 토머스컵은 준우승했다.

일본 감독 15년, 전 종목 톱랭커 키워
올해 여자 단체전 세계 1위, 남자 2위
전권 위임받아 60명 대표 선수 지휘

실업팀 반발에도 대표팀 지옥훈련
실력 자각한 선수들 “신의 말 듣자”
도쿄 올림픽 후 조국에 봉사할 생각

 
일본은 세계 최강인 중국은 물론 한국에도 뒤지는 팀이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일본은 13명이 출전해 12명 1회전 탈락, 1명 2회전 탈락의 수모를 당했다. 이런 팀이 극적인 탈바꿈을 했다. 그 중심에 ‘셔틀콕의 황제’ 박주봉(54)이 있다. 박주봉은 2004년 11월에 일본 국가대표 총감독을 맡아 15년째 대표팀을 이끌고 있다. 2016 리우 올림픽에서 금 1, 동 1개를 딴 일본은 2020 도쿄 올림픽에서 최고의 성적을 거두겠다며 박 감독에게 전폭적인 신뢰와 지원을 해 주고 있다.
 
전주농고 1학년 때 국가대표가 된 박주봉은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김문수와 짝을 이뤄 남자복식 금메달을 따냈다. 1996 애틀랜타 올림픽 혼합복식에서는 은메달을 차지했다. 국제대회 72회 우승으로 기네스북에도 올랐다. 은퇴한 후 박주봉은 영국 대표팀 코치, 말레이시아 대표팀 감독을 거쳐 일본에 둥지를 틀었다.
 
지난 21일 도쿄 시부야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박 감독을 만났다. 그는 “올해만 국제대회 우승을 30개 정도 한 것 같다. 14년 동안 한 번도 꺾인 적이 없이 계속 상승곡선을 타고 있다. 선수들에게 자신의 수준을 스스로 느끼도록 해준 게 힘든 훈련을 견디고 높은 목표를 세우는 자극제가 됐다”고 말했다.
 
지도자 한 명이 한 나라 국가대표팀 수준을 이렇게 바꿀 수 있나. 도대체 뭘 한 건가.
“시스템을 바꾼 거다. 일본은 대표팀이 아니라 철저히 실업팀 위주였다. 대표팀 전임감독도 없고, 전용훈련장도 없고, 합숙훈련도 거의 없었다. 대표팀에 뽑힌 선수의 소속팀 감독이 대회 때만 대표팀을 이끌고, 선수들도 공항에서 모여 대회에 출전했다. 지도자도 선수도 대표팀에 대한 사명감과 승부욕이 없었다.”
 
 
실업팀 반발에 “그만두겠다” 강수 던져
 
지난 21일 도쿄 시부야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박주봉 감독. [도쿄=정영재 기자]

지난 21일 도쿄 시부야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박주봉 감독. [도쿄=정영재 기자]

올림픽에는 많은 선수가 출전했는데.
“그게 문제였다. 강호들이 나오는 대회는 피하고 B급 대회에서 성적을 올려 올림픽 출전 포인트만 높인 거다. 선수들에게 A급 대회에 출전해 자신의 실력을 스스로 느껴 보라고 했다. 처참하게 깨지면서 선수들이 자각하기 시작했다.”
 
훈련을 매우 힘들게 시켰다고 하던데.
“훈련량과 밀도를 크게 올렸다. 한겨울 새벽에도 깨워 러닝을 하게 했다. 강도 높은 체력훈련을 해본 적이 없는 선수들이 ‘몸이 부서지는 것 같다’며 비명을 질렀다. 그럼에도 새로운 방식에 대한 호기심과  ‘박상이 시키면 해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들은 나를 ‘가미사마(神)’라고 부른다. 6개월 정도 지나면서 실력이 느는 게 보이니까 선수들 눈빛이 달라졌다.”
 
실업팀과는 마찰이 컸다고 하던데.
“우리 선수 다치면 책임 질 거냐고 다그치고, 대표팀 운영에 사사건건 개입하려고 했다. 하도 많이 싸우고 그러다 지쳐서 ‘그럼 당신들 뜻대로 하라’고 했다가 다음날 아침 ‘이건 아니다. 성적이 안 나면 모든 책임은 내게 돌아온다’는 생각에 화들짝 놀라 다시 싸우곤 했다. 다행히 선수들이 ‘실력 올라가는 맛’을 알고 대표팀 훈련을 좋아했다.”
 
중간에 그만두겠다고 한 적도 있다던데.
“2012 런던 올림픽에서 처음 은메달을 따고 돌아왔는데 협회에서 ‘이제부턴 실업팀 얘기 들으면서 하라’고 했다. 마침 말레이시아에서 영입 제안이 왔다. 물밑 협상을 하고 계약서까지 받은 뒤 ‘사임하겠다’고 통보했다. 협회가 난리가 났다. ‘박상 하고 싶은 대로 하시라’며 통사정을 해 주저앉았다. 말레이시아 쪽에는 지금도 미안한 마음이다.”
 
박 감독을 전폭적으로 지원한다고 들었다.
“협회 강화위원장·부위원장·강화부장이 모두 나를 지원하는 게 주임무다. 협회 수석부회장인 세키네 일본체대 교수님이 든든한 후원자다. 그분은 내가 고1 때 경기를 보시고 ‘세계적인 선수가 될 것’이라고 격려하시며 세심하게 지도해 주셨다.”
 
 
숫자로 채울 수 없는 전문가 경험 존중해야
 
일본 배드민턴 대표팀이 국제대회에 출전할 때면 기자회견을 하는데 100여 명이 몰린다. TV에서도 박 감독을 다룬 프로그램이 심심찮게 방영된다. 한 여자 선수는 “감독님이 헌볼치기(셔틀콕을 계속해서 쳐 넘겨주는 훈련법)를 할 때면 왼팔에 셔틀콕 20개 정도를 올려놓고 쉴 새 없이 쳐 넘겨주신다. 정말 귀신같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대표팀과 상비군을 포함해 60여 명의 선수를 선발하고 관리한다. A대표팀과 상비군에 각각 5개 종목 전담코치가 있다.
 
본인의 배드민턴 DNA는 어디서 나왔나.
“돌아가신 부친이 1m86cm의 장신에 연식정구 선수셨다. 어머니는 핸드볼을 하셨고, 할아버지와 형제분들이 국궁 선수로 이름을 떨치셨다. 부친이 봉직하던 초등학교에 배드민턴부를 만드셨고, 거기서 내가 배드민턴을 시작했다.”
 
한국 배드민턴이 점점 위축되는 모양새다.
“예민한 문제다. 이용대 같은 주축 선수들이 대표팀에서 은퇴하면서 축이 무너졌다. 대표선수들이 중국·인도 등의 프로리그에 출전하느라 중요한 국제대회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인 게 협회-선수 간 마찰의 원인이 됐다. 이걸 슬기롭게 풀어야 한다.”
 
지도자는 어떤가.
“스포츠의 공정성을 강조하는 시대가 되면서 모든 것을 룰에 따라 투명하게 한다. 이게 경기력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는 게 아이러니다. 일본은 대표선수 10명을 뽑는다면 선발전 1,2위만 자동으로 뽑고 나머지는 추천을 받아 감독이 결정한다. 단순 수치와 성적으로 채울 수 없는 전문가의 경험과 감이란 게 있다. 이를 어떻게 조화시키느냐가 과제다. 다만 지도자에게 좀 더 많은 권한과 책임을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한다.”
 
박 감독이 20년 이상 해외를 떠도는 이유가 대한배드민턴협회와 사이가 틀어져서 그렇다는 말들이 있었다. 그는 “그렇지 않다. 대표팀에 들어오라는 제안을 받았는데 개인 사정으로 못 간 적도 있다”며 “도쿄 올림픽이 끝나면 우리나라를 위해 일할 기회가 있지 않겠나”라며 푸근한 웃음을 보였다.
 
박주봉 ‘환상의 파트너’는 김문수, 혼합복식 ‘짝’ 놓고 갈등도
1996 애틀랜타 올림픽 혼합복식 경기를 펼치고 있는 박주봉-라경민 조. [중앙포토]

1996 애틀랜타 올림픽 혼합복식 경기를 펼치고 있는 박주봉-라경민 조. [중앙포토]

박주봉에게는 ‘영혼의 파트너’ 김문수(55·성남시청 감독)가 있었다. 오른손잡이인 박주봉과 왼손잡이 김문수는 환상의 복식 조합을 이뤘다. 박주봉이 전위에서 네트 플레이를 담당했고, 스매싱과 점프가 좋은 김문수가 후위를 맡았다. 각종 국제대회를 휩쓴 박주봉-김문수 조의 절정은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이었다.
 
혼합복식은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정식종목이 됐다. 은퇴하고 한국체대에서 조교수로 일하던 박주봉을 대한배드민턴협회가 불러냈다. 당초 협회는 김동문의 짝인 길영아를 붙여주려고 했다. 그러나 박주봉이 “중·고교 후배인 김동문의 파트너를 뺏을 수는 없다”고 사양했다. 대신 대학 후배이자 제자인 라경민을 선택했다. 협회는 심은정과 짝을 맞추라고 했다. 박주봉은 “심은정이 팔꿈치 부상이 있었고, 짧은 서비스의 완성도가 좀 떨어진다”며 라경민을 고집했다. 진통 끝에 올림픽에 출전한 박주봉-라경민 조는 결승에서 김동문-길영아 조에 1-2로 역전패해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박주봉 감독은 “준결승에서 경민이가 발목이 돌아가는 부상을 당했다. 후배들과 결승전을 하는 부담도 있었다”고 말했다.
 
애틀랜타 올림픽 결승에서 맞붙었던 김동문과 라경민은 이후 혼합복식 조로 맺어졌고, 둘은 2005년 결혼했다.
 
정영재 스포츠선임기자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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