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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년 된 건물, 만찬 복장 전통 … 유럽 사회 품격을 느끼다

[빠른 삶, 느린 생각] 주마간산 유럽 여행담
[일러스트 강일구 ilgook@hanmail.net]

[일러스트 강일구 ilgook@hanmail.net]

지난달 오랜만에 유럽에 갈 기회가 있었다. 그러니까 이번 방문은 영국에서 반년을 보냈던 때로부터 26년만이었다. 물론 2005년을 전후해서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그리고 학술회의 등으로 독일을 방문했고, 5년 전에 라트비아의 리가에 간 일이 있기는 하였다. 프랑크푸르트에서는 듣고 보는 것이 적지 않았지만, 주로 도서전이나 학술회의에 휘말려 널리 보고 생각할 틈이 없었다. 리가는 여러 가지로 인상이 깊은 곳이었는데, 라트비아는 유럽의 일부이면서도 근대적인 유럽과는 상당히 다른 아담한 짜임새를 가진 곳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600년 걸려 지은 밀라노 성당
사람들을 정신적으로 묶은 대역사

아무렇게나 차려 입고 행동하고
아파트 공화국 된 한국과 대조

도시·건축과 일상적 삶의 질이
미래의 아름다운 나라 만들어

 
사람 일이란 다 그런 것이지만, 외국 방문이라는 것은 지나고 나면 대체로는 큰 기억이 남지 않는 것 같다. 그전의 방문과 체제에 대한 기억도 그렇게 되었지만, 이번의 유럽 방문은 그야말로 주마간산(走馬看山)의 여행이었다. 그러나 그 나름으로 그 방문에서 얻은 인상이나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열흘 가까이 이탈리아의 밀라노와 영국의 옥스퍼드에서 보낸 것이지만, 그 여행은 관광객이 되어 그것을 지나쳐 간 것이었다.
 
관광객으로 어떤 곳을 찾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최근의 신문 보도를 보니, 관광객이 관심을 많이 갖는 것 하나가 특정한 지역의 음식을 감상하기 위한 식도락 여행이라고 한다. 그러나 관광에 있어서 흔히 동기가 되는 것은 문화 유적을 탐방하는 것일 것이다. 본격적인 문화 탐방은 상당한 예비지식을 또는 후속(後續) 공부를 필요로 한다. 문화 유적의 깊은 의미는 외관만으로 알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순히 외모만 보는 것이 무의미한 일일까? 외지(外地)에 나가는 동기의 하나는 조금 다른 것, 이국적(異國的)인 것을 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대체로는 아무 것이나 보는 것보다는 볼만한 것을 보자는 것이다. 찾는 곳은 자연 경관이 뛰어난 곳일 수도 있고, 이름난 예술 작품이 많은 곳일 수도 있다. 그에 더하여, 탐방하는 곳은 유명한 건축물이 있는 곳, 그러한 건축물로 이루어진 길거리, 좋은 느낌을 주는 시가지일 수도 있다.
 
 
서울광장은 100년, 200년 후에도 볼만 할까
 
피상적인 것으로 보일 수 있는 이런 여행도 그 나름의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여행에서 알게 모르게 동기가 되는 것은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름다운 삶, 많은 것이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삶에 대한 그리움이다. 오래 전 이야기이지만, 서울시의 개발에 관한 회의에서 시청 앞 광장의 발전 계획이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 그때 제안했던 하나는 그 광장이 50년, 100년, 또 200년 후에도 볼만하고 쓸 만한 것이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그러한 광장 설계에 중요한 요소의 하나는 그곳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곳이었으면 하는 바람일 것이다.
 
좁아지는 세계라고 해도 역시 넓다고 할 세계에서 관광 여행지로서 많이 찾는 곳이 유럽일 것이다. 한국인의 경우에도 그러한 것으로 보인다. 밀라노나 옥스퍼드에서도 한국인들은 많이 볼 수 있었다. 물론 밀라노는 여러 나라의 관광객으로 넘치는 곳이었다. 도시의 중심에 있는 밀라노 성당은 특히 그러했다. 밀라노 성당은 이탈리아에서 제일 거대한 사원이라고 한다. 유럽의 다른 성당들이 그러한 것처럼, 민족적 역량을 집중하여 건설한 것이다. 지금의 성당은 시작한 후 600여 년이 걸려 지었다고 하는데, 지금도 모든 작업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이러한 기념비적 건물은 대체로 정치 귀족들이나 고위 성직자들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처음 착공부터 밀라노 성당은 귀족과 노동자를 다 같이 위한 것이라는 명분을 표방했다고 한다. 수백 년을 지속하여 그것을 세우는 일은 국민적 동의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정신적 의의를 갖는 하나의 사업에 결속할 수 있게 하는 기능을 가졌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기본적인 삶의 필요가 충족된 다음에 할 수 있는 일의 하나는 이에 비슷한 정신적 문화적 의미의 작업을 위하여 힘을 합치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 다시 말하건대, 밀라노와 같은 유럽의 오래된 도시는 그 자체로 이미 역사의 도시이다. 성당 주변의 도로가 자동차가 다니는 데에 불편하기 짝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조약돌로 포장으로 되어 있는 옛 좁은 도로를 건드리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연립주택 식의 건축물들도 문화재급으로 오래된 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 밀라노가 살만한 도시일 성 싶지는 아니하였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중심가를 인산인해(人山人海)가 되게 하는 관광객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베니스가 관광객의 수를 제한하는 방침을 생각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해할 만한 일이라고 할 것이다.
 
어수선한 가운데에서도 아카데미아 암브로지아나라는 연구 기구에서 개최된 회의는 그대로 진행되고, 그것이 끝난 다음 나는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으로 향하였다. 밀라노에서 옥스퍼드로 가는 것은 숨 막히는 인파를 피하여 시골의 들판으로 가는 것이었다. 물론 옥스퍼드도 도시이고 대학은 도시에 뺄 수 없게 연계되어 있다. 그러나 옥스퍼드 시, 특히 대학은, 숨쉬기에도 넉넉하고 학문에 집중하기에 적절한 설계를 가지고 있었다. 대학의 건물들은 물론 웅장한 그러나 너무 크고 높은 것은 아닌 석조 건물들이다. 이 건물들은 대체로 ‘쿼드랭글’이라고 부르는 사각형의 잔디밭을 감싸 안고 있다. 이 잔디밭은 밟고 지나는 사람이 없어서 그러한 것이겠지만, 넓은 들녘의 잠잠함을 느끼게 한다. 유럽의 수도원들에도 그러한 풀밭이 있는데, 아마 대학의 이러한 정원도 기원은 거기에 있을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옥스퍼드는 유럽에서 그리고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의 하나로, 800년 정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오랜 시간은 건물들에서 또 건물의 석재에서 그대로 느낄 수 있다. 그 오랜 시간이 현재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조금 전에 말한 바와 같이, 전체적인 디자인에서도 공간과 시간의 엄숙성을 느낄 수 있다. 여기에는 자연도 한 역할을 한다. 대학은 전체적으로, 물새와 물고기들이 있는 작은 강물과 호수에 이어져 있다. 그리하여 자연과 인간의 건축물의 오랜 연결을 보여준다.
 
 
오랜 시간이 현재 속에 존재하는 것
 
나는 옥스퍼드의 머턴 대학의 만찬에 참여할 수 있었다. 만찬은 교수와 학생이, 좌석은 따로 하면서 함께 참가하는 것이었다. 거기에는 복장에 대한 규칙, 드레스코드가 있어서, 교수는 정장을 하고 그 위에 가운을 입고 참석했다. 학생도 비슷한 규정이 있는 것 같았다.
 
이러한 점에 주목하는 것은 옛 풍습이 그대로 계승된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기도 하고, 이러한 외면적 규칙도 사람의 마음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기도 하다. 사회생활은 여러 가지 층으로 이루어진다. 그리하여 사회적 공간의 성격에 따라서 복장부터 달리 준비하는 것은 많은 사회의 관습이다. 물론 이것이 버거운 일이 되는 것도 사실이나, 요즘 보는 바와 같이 모든 모임에서 아무렇게나 차려 입고 아무렇게나 행동하는 것이 반드시 좋은 일은 아니다. 그것은 사회생활의 공공성을 손상하는 일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점에 대한 주의가 전혀 없는 것이 오늘의 우리 사회이다. 여기에서 옥스퍼드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러한 사소한 것보다도 시공간의 분위기가 저절로 학문과 사회의 엄숙성을 전해주는 것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대학에서도 그러하지만, 도시의 모양에서도 그렇다. 프랑스의 젊은 사회학자가 한국의 도시를 논하면서, 한국을 아파트 공화국이라고 부른 일이 있지만, 아파트 공화국은 아마 아름다운 도시는 쉽게 되지 못할 것이다.
 
위에서 머튼 대학을 말하였는데, 20 세기의 중요시인 T. S. 엘리엇은 1930년대에 잠시 머튼의 학생 생활을 한 일이 있다. 그가 그것을 별로 즐겼던 것 같지는 않지만, 머튼에서는 몇 해 전에 ‘T. S. 엘리엇 극장’을 지었다.
 
 
외면적인 규칙도 사람들의 마음에 영향
 
엘리엇의 작품에 ‘사원의 살인’이라는 시극이 있다. 1935년에 나온 이 작품은 12세기 후반에 있었던 캔터베리 대승정 토마스 베켓의 죽음을 소재로 한 것인데, 엘리엇이 이 시극에서 내세우려 한 것은 왕권에 맞서다가 결국 살해되는 대주교를 통하여 세속 권력에 굴복하지 않는 정신의 우월성이다. 머튼 칼리지의 교정 한편에는 교회당이 있는데, 교회당에서 15분마다 은은한 종 소리가 들리고, 주일(主日)이 아닌데도 작은 예배가 있었다. 엉뚱한 이야기이지만, 영문학도인 필자에게는 엘리엇 작품의 배경에는 머튼 대학도 그의 작품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일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연극에서 대주교가 정신의 우월함을 수호하는 데에는 그에 대비하여 다른 선택들이 있고 유혹이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다른 선택의 하나는 정치이다. 정치를 비하하는 말에는, 정치에서 강한 자는 강하게 다스리고, 약한 자는 멋대로 다스리며, 정치인의 관심은 오로지 한 가지, 권력을 장악하고 그것을 놓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 나온다. 그러나 정치를 긍정적으로 보면, 그것은 선을 수호하고 정의로서 모든 사람들을 동등하게 한다고 한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정치인의 프라이드에 대한 설명이다. 그들의 프라이드를 기르는 것은 덕과 공정성과 관용이다. 엘리엇은 보수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연극에 나오는 정치에 대한 폭넓은 평가, 그리고 반드시 이점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정치인의 프라이드에 대한 설명은 좌우 관계 없이 널리 적용될 것이다. 연극에서도 이야기하는 공정성, 페어플레이는 여기에도 적용될 것으로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주목하고자 하는 고고한 마음가짐에는 학문 세계의 분위기, 대학 도시의 분위기, 사회 분위기가 작용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저절로 환경에서 흡수되는 어떤 태도일 수 있다.
 
얼마 전에 미래학회의 50주년 행사가 있었다. 창립 직후 2대 회장을 지냈던 최정호 울산대 석좌 교수가 미래학회의 역사와 과업을 두고 회고와 전망을 이야기하였다. 그때 나온 말에 2048년을 마음에 두고 나라의 미래를 생각해 보자는 것이 있었다. 그런데 근대화 초기에 동아시아의 여러 나라가 목표했던 ‘부국강병(富國强兵)’이 다시 한번 지향의 대상이 되지는 아니할 것이다. 과거나 현재에 집착하지 않고 미래를 내다본다면, 어쩌면 ‘아름다운 나라’와 같은 것을 생각하지 않을까, 나에게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정치에 못지않게 도시와 건축과 일상적 삶의 좋은 습관에서 우러나오는 분위기로 정착될 수도 있을 것이다.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고려대 명예교수. 서울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뒤 미국 하버드대에서 미국문명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7년 첫 저서 『궁핍한 시대의 시인』 이후 『지상의 척도』 『심미적 이성의 탐구』 『자유와 인간적인 삶』 『기이한 생각의 바다에서』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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