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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기억이 ‘나’인가?

김봉석의 B급 서재
기억 파단자

기억 파단자

기억에 대한 소설을 이어서 읽었다. 고바야시 야스미의 『기억 파단자』는 타인의 기억을 마음대로 심고 지워버릴 수 있는 악당 키라와 맞서는 ‘전향성 기억 상실증’에 걸린 남자 니키치의 이야기다. 크리스토퍼 판즈워스의 『마인드 리더』는 타인의 기억을 읽고, 조종할 수 있는 존 스미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액션 스릴러다.
 
『기억 파단자』는 키라와 니키치의 게임을 전면에 내세운다. 기억을 심고 지움으로써 타인을 조종하는 키라의 능력은 니키치에게 의미가 없다. 어차피 모든 기억은 지워지니까. 키라가 기억을 심으면 오히려 니키치는 의심한다. 왜 이 기억만 남은 것일까. 의심을 하면, 키라의 능력은 제대로 통하지 않는다.
 
마인드 리더

마인드 리더

『마인드 리더』에도 비슷한 설정이 나온다. 군대와 CIA에서 특수 임무를 맡았던 존은 기억과 생각을 조종한다. 최면으로 마음대로 사람을 움직이는 것과는 다르다. 아니 최면도 그 정도는 불가능하다. 존은 ‘부주의한 착시 현상’을 통해 ‘그들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평상시에 하는 일을 하도록 만’든다. 뻔히 보고 있지만, 평소 습관대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는 묻지 말자. 물어도 소용없다. 의뢰인의 질문에 존은 ‘의식의 양자적 얽힘을 통해 전달되는 정신생리학적 이식’이라고 답한다. 내 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몰라도, 손으로 아주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훈련을 통해서 더욱 정교하고 강력하게 만들 수 있다. 『기억 파단자』와 『마인드 리더』는 기억 그리고 인간의 의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만들어낸 SF 스릴러다. 『기억 파단자』는 대결에 집중하며 만화적인 스토리를 전개하고, 『마인드 리더』는 조금 더 현실적이지만 할리우드 영웅담으로 질주한다.
 
두 편의 소설을 흥미롭게 읽으면서, 기억을 다룬 영화들로 생각이 뻗어 나갔다. ‘블레이드 러너’와 ‘토탈 리콜’ 등 필립 K 딕의 소설과 영화,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 극진한 연애물 ‘이터널 선샤인’ 그리고 초현실적인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비디오드롬’과 ‘네이키드 런치’ 등등.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에서는, 인간이 만든 안드로이드가 인공적인 기억을 주입받고 스스로 인간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은 기억밖에 없다고 생각하니까. 폴 버호벤이 연출한 ‘토탈 리콜’에서는 반란군에 잠입하기 위해 기억을 지운 스파이가 나온다. 그런데 원래의 자신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남자는 이식된 기억으로 살아가는 것을 택한다. 오리지널보다 만들어진 기억이 더 가치 있다고 믿으니까. 그렇다면 기억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은 신뢰할만한 것일까?
 
‘공각기동대’에서 쿠사나기는 육체를 버리고 네트의 세계로 기꺼이 들어간다. 영화 ‘그녀’에서 인공지능이 무한의 지식을 통해 다원적인 자아를 만들어내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인간, 특히 개인의 기억이란 대단히 의심스럽다. 인간은 본 것, 경험한 것을 왜곡하거나 조작한다.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 사건일 경우는 더욱 그렇다. 『기억 파단자』의 니키치는 기억을 잃기 때문에 모든 것을 노트에 기록한다. 『기억 파단자』가 영향을 받은 영화 ‘메멘토’는 ‘기록’을 스스로 왜곡하여 적는 상황을 보여준다. 미래의 자신을 조종하기 위해서다. 인간은 결국 자신이나 집단의 목적과 이익을 위하여 기억을 조작하고, 타인을 착취해 왔다. 단지 가능성이 아니라 지금까지 우리는 그렇게 역사를 만들어왔다.
 
그래서 더욱 흥미롭다. ‘이터널 선샤인’의 그들은 실연이 너무나 고통스러워 연애의 기억을 지웠지만 감정 혹은 여운이 남아 있다. 여전히 그들의 마음은 아프고, 설렌다. 동의한다. 기억은 사라졌지만 어떤 장소에 가면, 어떤 상황이 되면 자연스레 과거의 감정과 느낌이 소환된다. 기억은 과연 어디에 남는 것일까. 뇌만이 아니라 마음에, 온몸에 남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저 너머 어딘가에.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lotusid@naver.com
대중문화평론가. 부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등. 영화·만화 등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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