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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하나가 아니다, 여럿이다

책 속으로 
만들어진 진실

만들어진 진실

만들어진 진실
헥터 맥도널드 지음

관심사·편향·사고방식에 따라
한 사안에 대한 진실 판단 달라

마약 중독은 치료 필요한 질병
도덕적 진실도 시대 따라 바뀌어

이지연 옮김, 흐름출판
 
뻔한 거짓말인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s)이 진짜인 것처럼 버젓이 유통된다. 여론은 팩트보다는 개인의 신념이나 감정에 따라 좌우되기 일쑤다. 풋풋하고 유연했던 시선은 차츰 세계관 혹은 프레임으로 굳어지며 완고해져 자신의 입장과 다른 주장은 어떻게 해서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단면들이다. 극단적 대립 반목의 시대, 포스트 트루스(post-truth)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이럴 때일수록 진실의 가치는 귀하다. 음험한 주장에 쉽게 휘둘리지 않을 테니 말이다. 문제는 진실 자체가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다는 데 있다. 어쩌면 한 사안을 바라보는 사람의 숫자만큼 다양한 진실이 있다고 얘기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중요한 건 진실이 아니라 입장이고 철학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사람들은 어떻게 같은 걸 보고 다른 얘기를 하는 걸까. 어떤 경로를 거쳐 각자가 진실이라고 믿는 상태에 도달하나. 이런 대목을 집중적으로 살핀 책이다. 세상의 진실을 크게 네 종류로 분류했다.
 
첫 번째는 부분적 진실. 대표적인 사례로 든 게 남미의 슈퍼푸드 퀴노아를 둘러싼 소동이다. 씨앗 식품인 퀴노아는 2000년대 중반부터 각종 영양분이 풍부하고 씹는 맛도 훌륭한 음식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2013년 국제연합(UN)까지 가세해 ‘세계 퀴노아의 해’로 지정하자 볼리비아·페루 등 산지 가격이 폭등했다. 그러자 역풍이 불었다. 권위지 뉴욕타임스까지 서구인들이 퀴노아를 과다 소비하는 바람에 남미 현지인의 아이들이 먹을 게 없어 영양실조가 증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역풍은 현지인들을 위해 퀴노아 섭취를 자제해야 한다는 주장에까지 이르렀다.
 
퀴노아 자제 주장들이 틀린 정보를 바탕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 가격이 올라 현지인들의 퀴노아 구입 비용이 비싸진 건 맞지만 퀴노아 수출로 가계 수입은 증가해 오히려 경제적으로 나아졌다. 현지인들의 소비가 준 것도 맞지만 식단이 다양화되면서 전통 음식을 덜 먹게 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퀴노아 자제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어떤 팩트에는 눈을 감은 것이다.
 
2013년 미국 미네소타에서 동성결혼을 허용하는 법안 통과를 기뻐하는 모습. [사진 Fibonacci Blue]

2013년 미국 미네소타에서 동성결혼을 허용하는 법안 통과를 기뻐하는 모습. [사진 Fibonacci Blue]

저자는 “모든 스토리에는 다양한 측면이 있다”고 말한다(21쪽). 그래서 하나의 사안에 대해 합당하다고 여길만한 설명은 대개 복수로 존재한다. 그런 상황이 가능한 건 ‘경합하는 진실(competing truths)’ 때문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동성애나 무신론, 마약중독에 대한 도덕적 판단이 시대별로 바뀌는 것도 진실들이 경합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종류, 주관적 진실의 사례다. 가령 마약 중독은 그동안 처벌해야 할 도덕적 실패로 여겨졌다. 최근에는 치료가 필요한 의료 사안이라는 인식이 생겨난다. 그에 대한 재반발로 마약 이용의 숨통을 터줄 경우 마약 생산 국가에 사회적·생태학적 피해를 준다는 마약 금지론자들의 주장이 등장했다.
 
세 번째 종류는 인위적인 진실. 네 번째 종류인 알려지지 않은 진실에서 저자는 집단자살극으로 끝난 종교 광신도 사례까지 건드린다.
 
경합하는 진실들 가운데 어떻게 하나를 선택하는 걸까. 나의 관심사나 편향, 뭐가 됐던 그 순간 머릿속에 들어 있던 생각, 아니면 내게 의미 있거나 내 사고방식에 맞는 것을 선택하는 거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런 기준에 맞지 않는 것은 버린다. 의도적으로 진실을 선별해 받아들 수도 있다.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 편향이다. 이런 특성이 오히려 조작된 진실을 믿도록 만드는 토양 역할을 하는 건 아닐까.
 
옥스퍼드를 졸업한 저자는 자신을 비즈니스 스토리텔링 전문가라고 소개한다. 기업이나 기관의 의뢰를 받아 고객사의 성장·발전에 요긴한 최선의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일종의 업자다. 한 사안에 여러 개의 진실이 존재하는 현상에 호기심이 일어 책이나 페이스북, 광고 문구나 정치인 연설문 등에서 경합하는 진실의 사례들을 모았다고 한다. 시사 상식 수준이라고 박하게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일도 있었나, 싶은 흥미로운 이야기가 곳곳에 박혀 있다. 의뢰인이 제공하는 팩트의 숲에서 매력적인 이야기를 뽑아내는 전문가다 보니 술술 읽히게 책을 구성했다. 지난 3월 워싱턴포스트가 긴 분량의 리뷰를 실었는데 전적으로 호의적이지는 않았다. 상중하 척도에서 재미 상, 의미 상, 깊이 중.
 
신준봉 기자 inform@joo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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