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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파에 할퀴어 맹렬해진 서정시

책 속으로 
파일명 서정시

파일명 서정시

파일명 서정시
나희덕 지음, 창비
 
익숙했던 이전 세계로부터 벗어나 보겠다는 의지가 제목에서부터 읽히는 시인의 여덟 번째 시집이다. 표제시인 ‘파일명 서정시’는 첨단의 디지털 문명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내용이다. 서정시인 라이너 쿤체의 뒤를 캤던 구동독 정보국의 자료집 제목이란다. 기관원이 파악한 서정시의 구성 목록은 기껏 “머리카락 한줌/ 손톱 몇조각/ 한쪽 귀퉁이가 해진 손수건”, 이런 사소한 것들이었고 알아내려 했던 근황이래 봤자 시인이 “숲에서 지빠귀와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정도였을 거라고 전하는 서정시 찬가에 가깝다.
 
‘늑대들’ 같은 작품이 허를 찌른다.  
 
“늑대들이 왔다// 피냄새를 맡고/ 눈 위에 꽂힌 얼음칼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얼음을 핥을수록 진동하는 피비린내/ 눈 위에 흩어지는 핏방울들// 늑대의 혀는 맹렬하게 칼날을 핥는다/ 제 피인 줄도 모르고/ (…)”.
 
늑대들이 어떤 대상을 지칭하는지 알 수 없지만, 격정적일 때조차 차분하고 정돈된 언어로 사태를 전하던 시인의 이전 모습과는 뭔가 달라진 느낌이다.
 
‘시인의 말’에서도 변화가 느껴진다.
 
“이빨과 발톱이 삶을 할퀴고 지나갔다. 내 안에서도 이빨과 발톱이 지닌 말들이 돋아났다. 이 피 흘리는 말들을 어찌할 것인가.”
 
시인을 할퀸 이빨과 발톱은 가까운 이의 죽음, 세월호 사건, 30년 시인 이력에 대한 자의식 같은 것들이다. 시인은 또 시가 “닻이고 돛이고 덫”이었다고 털어놓는다. 얼마나 위안이 되고 신나고 고통스러웠을 것인가. 그 자랑과 기쁨, 눈물과 분투의 기록이 시집의 시편들이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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