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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마틸다와 ‘갑질 손녀’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요즘 인기인 뮤지컬 ‘마틸다’에서 특히 인상적인 노래는 ‘어른이 되면’이다. “어른이 되면 어려운 질문도 풀릴 거야… 밤마다 날 괴롭힌 괴물들도 무찌를 수 있겠지.” 어린 배우들의 해맑은 목소리로 이 노래를 들으며 어른 관객은 눈물을 흘린다. 어른이 되면 질문이 풀리는 대신 질문 자체를 포기하게 되고, 세상 부조리라는 괴물을 무찌르긴 커녕 침묵하는 겁쟁이가 되기 쉽다는 걸 아니까.
 
그 슬픈 아이러니를 강조하듯, 주인공 마틸다의 담임교사 허니가 나와 그 노래를 따라 부른다. 허니는 참된 교사지만, 자신을 학대해온 이모이자 폭군 교장인 트런치불을 두려워해 저항하지 못한다. 이때 마틸다가 응답하듯 노래한다. “부당할 때 한숨 쉬며 견디는 건 답이 아냐. 꾹꾹 참고 또 참으면 보나마나 또 그럴걸.” 만5살에 도서관 책을 섭렵한 천재소녀지만 머리 빈 부모에게 무시와 학대를 당하는 마틸다는, 울면서 구원을 기다리는 대신 영리하게 부모를 골탕먹이며 자유를 모색해왔다 그러다 허니에게서 처음으로 따뜻한 사랑을 받고, 또 허니는 마틸다에게서 처음으로 저항의 용기를 얻는다.
 
이렇게 ‘마틸다’는 세상에 찌들어 겁쟁이가 된 어른들에게 순수하고 강한 아이의 목소리로 ‘부당함을 참지 말라’고 말해주고, 또 자격 없는 부모와 교장을 철저히 조롱해 전통 유교적 권위주의를 깨주니, 지금 여기 어른들을 위한 동화인 셈이다.
 
그런데 현실은 서글프다. 마틸다처럼 권력에 저항하고 약자를 돕는 대신, 초등학생 나이에 할아버지뻘에 가까운 상대방의 약점을 이용해 괴롭히는 언론사 사장 손녀가 최근 화제였으니 말이다. 아이가 50대 운전기사에게 반말 막말을 하는 게 유교적 장유유서 정서에 충격을 주고 있지만, 사실 이 아이는 사라진 조선 유교 신분질서를 자본주의 계급에 대입해 양반 애기씨가 하인 대하듯 한 격이다. 재벌 2-3세를 ‘왕자,’ 재벌기업 임원을 ‘신하’라고 표현하는 언론 기사가 거리낌없이 나오는 한국에서, 이렇게 봉건 신분 권위주의가 현대 자본주의와 기괴하게 결합해 탄생한 갑질 문화는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갑질 손녀’의 문제는 어른에게 반말을 했다는 것보다 인간에 대한 존중을 배우지 못했다는 것이다. 낡은 권위주의를 청산하지 못하고 개개인의 자유 보장과 존중에 소홀했던 반쪽짜리 자유주의가 한국 보수의 위기를 불렀음을 보수 쇄신을 바라는 이들은 기억해야 한다.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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