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공무원이 베껴 기획, 허울뿐인 공모전 … 싼 티 나는 공공건축

[SPECIAL REPORT] 연 27조 공공건축 시장 요지경
지난 16일 서울 서초동 대한건축사협회에서는 이례적인 기자회견이 열렸다. 대한건축사협회·한국건축가협회·새건축사협의회·한국여성건축가협회 등 건축 관련 네 단체가 한목소리로 “공공건축 건축설계 공모 제도를 개선하라”며 성명서를 발표한 것이다. 세종시 행정중심복합도시 신청사 국제설계공모전 과정에서 “짜고 치는 심사”였다며 심사위원장인 건축가 김인철이 사퇴하는 초유의 사태 이후(중앙일보 11월 1일자 18면)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자는 움직임이 각계에서 일어나고 있다. 대통령 직속의 국가건축정책위원회는 건축 단체의 문제 제기를 공식 안건으로 채택하고 진상조사에 들어갔다.
 

세종 신청사 공모전 논란 후폭풍
10채 중 9채 최저가 낙찰로 뚝딱
부실 기획에 편파 심사까지 겹쳐
‘최악의 건축물’ 단골로 꼽히기도

설계와 다른 붕어빵 건물 수두룩
“공공건축, 집 망가뜨리는 시스템”
엄격한 품질 평가 시스템 구축을

국민 세금을 들여 짓는 공공건축물은 한 해 12만 채가 넘는다. 공사비만 26조5700억원(통계청·2016년 기준)에 달한다. 전체 건축 공사의 15.4%에 달하는 규모다. 공공건축물만 잘 지어도 동네와 도시의 획일적인 풍경을 바꿀 수 있을 텐데 명작(名作)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최악의 건축물로 공공건축물이 꼽히기 일쑤다. 윤승현 새건축사협의회 회장(인터커드건축사사무소 대표)는 “우리나라 공공건축 생산 시스템은 안타깝게도 집을 망가뜨리는 시스템”이라고 일갈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고 바뀌지 않는 걸까. 현장을 살펴봤다.
 
 
파출소·우체국·주민센터 어디나 비슷
 
공공건축 잘 짓기로 유명한 일본 구마모토현의 파출소(위)와 한국 파출소. [사진 Koichi Torimura]

공공건축 잘 짓기로 유명한 일본 구마모토현의 파출소(위)와 한국 파출소. [사진 Koichi Torimura]

우리나라에서 공공건축물을 지을 때 발주 방식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공사비다. 어떤 건물을 짓겠다는 고민에 앞서 얼마짜리 건물을 짓느냐에 따라 진행 방식이 정해진다. 2013년 제정된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에 따르면 설계비 2억1000만원 이상의 건축물(공사비 50억원 이상)의 경우 설계 공모전을 진행하도록 의무화했다. 그보다 작은 규모의 건축물은 가격 입찰로 짓는다. 즉 최저가로 짓겠다는 사람한테 설계와 공사를 맡긴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비중이 상당하다. 건축도시공간연구소에 따르면 2016년 지은 공공건축물 중 공사비 50억원 이하의 소형 건물은 92.5%(11만465채)에 달한다. 10채 중 9채가 디자인의 질을 따지지 않은 채 최저가로 지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업계획서 자체가 엉망인 경우도 많다. 박인석 명지대 건축학부 교수는 “작은 공공건축물의 경우 전문성이 없는 담당 부서 공무원이 맡아 사업계획을 세우다 보니 몇 가지 판본이 판박이처럼 반복되고 있다”며 “사업계획서에는 부지와 건물 층수와 규모, 층별로 담을 공간 등 설계 밑그림이 담기는데 공무원들은 이를 복사용지 구매계획서처럼 베껴 쓰는 게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동네 파출소, 우체국, 어린이집, 주민센터가 비슷비슷하게 생긴 이유다.
 
함인선 한양대 건축학부 특임교수는 “공공건축의 기획을 전담하는 프랑스의 공공건축 부처 협의체나 영국의 총리 직속 조직 ‘CABE’처럼 건축 전문가로 구성된 공공건축 기획을 전담하는 기구가 필요하다”며 “우리나라의 경우 건축도시공간연구소 내에 국가공공건축지원센터를 만들었지만 여력이 없다 보니 적극적으로 기획에 나서기보다 기초자치단체가 제출한 기획서를 검토해 주는 수준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공사비 50억원 이상의 중·대형 건축물의 경우 설계 공모전을 열고 작품성을 따진다. 행정안전부와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행복청)이 발주한 정부세종 신청사의 경우 공사비 3174억원, 설계비 135억원짜리 초대형 프로젝트다.  
 
그런데 이 초대형 프로젝트의 기획 자체가 부실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공무원의 전문성이 부족했던 문제와 더불어 충분한 시간을 들여 기획하지 않은 탓도 컸다. 이번 공모전의 심사위원장이었던 김인철 건축가(아르키움 대표)는 “공모전을 진행하면서 ‘빨리 해야 한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다”며 “2021년으로 입주 일자를 정해 놓고 이를 역산해 공모전을 급히 진행하고 빨리 공사해야 하는 프로젝트이다 보니 논의하거나 기획할 시간이 충분하지 못했다. 형식적인 위원회를 몇 번 열고 공모전을 개최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신청사의 경우 행정안전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이 입주할 예정인데 청사 이전 관련 주민 공청회가 지난 3월에 열린 뒤 프로젝트는 급물살을 탔다. 4~5월에 심사위원과 건물이 들어설 부지가 선정되고, 7월에 국제설계 공모전을 공고해 10월 31일 당선작을 발표했다. 공모전에 참가한 한 건축가는 “국제설계공모전이라고 판을 펼쳐 놓고는 영어로 된 지침서 하나 없이 공모전이 진행됐다”고 토로했다.
 
지자체장이 공공건축물을 자신의 치적으로 내세우면서 ‘빨리빨리’ 풍토는 더욱 굳혀졌다. 자신의 임기 내에 준공식을 열고 테이프 커팅식을 하길 원하면서다. 잘 짓는 것을 고민하기보다 빨리 짓는 것에만 몰두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윤승현 새건축사협회장은 “한 자치단체장의 경우 명품도시를 만들겠다며 바로크·고딕·해체주의 양식 등 모든 양식의 건축물을 짓는 공모전을 열려고 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번 정부세종 신청사 공모전에서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이슈는 ‘편파 심사’다. 발주처인 행안부와 행복청이 편파적으로 심사위원을 구성해 ‘짜고 치는 심사’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다. 이에 대해 행복청 측은 “정부세종 신청사 설계 공모는 국토부 ‘건축 설계공모 운영지침’을 준수해 공정하고 투명하게 진행됐다”고 반박했다. 발주기관 소속 공무원을 심사위원으로 임명할 수 있게 한 지침대로(전체 위원 수의 30% 내) 공모전을 운영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7명의 심사위원 중 2명은 행안부와 행복청 소속 공무원인 데다 두 기관이 추천한 교수가 심사위원으로 선정되면서 사실상 발주처가 심사 결과를 좌지우지할 수 있게 판을 짜놨다는 지적도 많다.
 
공모전 운영지침조차 지키지 않는 설계 공모전도 숱하다. 최근 조달청이 운영하는 나라 장터에 공시된 익산통합청사 개발사업 설계 공모전이 한 예다. 심사위원 명단을 보면 9명의 심사위원 중 5명이 한국자산관리공사·기획재정부·익산세무서 소속 공무원으로 구성돼 있다. 국토부의 지침을 준수해 공모전을 열고 있는지 현장 관리가 제대로 안 되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처벌 조항도 없다. 함인선 교수는 “발주자가 어떤 공간이 필요한지 요구 사항을 충실히 기획하고, 심사는 작품성을 평가할 수 있는 건축 전문가에게 맡겨야 하는데, 기획은 대충 해놓고 심사에 개입하려 하니 문제”라고 말했다.
 
공정하지 못한 심사 결과는 청탁 의혹으로도 이어진다. 대형설계사무소의 경우 영업팀에서 주요 발주처의 심사위원 명단을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관행도 여전하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건축가는 “조달청의 공모전 심사위원이 전국구로 200명이라면 대형설계사무실의 영업팀에서 한 명당 십수명씩 관리하며 골프 치고 접대하며 관계를 다진다”며 “올해의 경우 특히 한 회사가 조달청 공모전을 휩쓸어 가기에 조달청 프로젝트는 들어가지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고 전했다. 건축계 일각에서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건축가나 교수부터 자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운영지침 안 지키는 설계 공모전 많아
 
석정훈 대한건축사협회장은 “건축설계공모 심사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심사위원의 선정, 심사 과정 등 일련의 모든 자료를 일일이 공개해야 한다”고 밝혔다.
 
기획하고 설계한 대로 실제 건물이 잘 지어져야 하는데 공사 현장에서 기획 의도가 뒤집어지기 일쑤다. 아무리 좋은 안이 뽑혀도 공사가 끝나면 어디서 봄직한 관공서 건물이 지어진다. 품질 관리가 제대로 안 되는 탓이 크다. 윤승현 새건축사협회장은 “품질 평가 시스템을 구축해서 못한 시공사에 입찰 자격을 박탈하고, 잘한 시공사에 우선권을 주는 식의 보상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싸게만 지으려는 관행도 고쳐야 한다. 건축계에서 흔히 비교하는 두 공공 건축물이 있는데, 서울시청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다. 같은 시공사에서 공사했는데 하나는 졸작, 하나는 명작으로 꼽힌다. 서현 한양대 건축학부 교수는 “기존의 사례를 기준으로 예산을 책정하는데 입찰 과정에서 깎여 예산보다 훨씬 낮은 가격으로 공사해야 한다”며 “싸게만 지으려는데 좋은 건물이 나올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관련기사

구독신청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