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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심장까지 들어간 中고속철, 첨밀밀의 홍콩 "이젠 안녕"

“리체이 직전 도우탑 홍콩 사이카우룽잠(列車即將到達香港西九龍站)”

2018년 11월20일 중국 선전(深圳)의 푸톈(福田)역에서 탄 고속철이 홍콩 영내에 들어오자 홍콩의 공용어인 캔토니스(광둥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中·홍콩 웨스트카우룽역에 출입경 사무소 공동운영
제도 시행 21년만에 본격 시험대 올라선 '일국양제'

일국양제 철저한 시행 명분보다 운영 효율에 더 무게
인프라 연결로 대륙의 사회·문화적 침투 가속화될듯

‘열차가 곧 홍콩 웨스트카우룽역에 도착한다’는 안내였다. 이어 중국 대륙의 공용어인 만다린(푸퉁화)과 영어 안내방송이 나왔다.   
홍콩 웨스트카우룽역에 도착한 중국의 고속열차. [차이나랩]

홍콩 웨스트카우룽역에 도착한 중국의 고속열차. [차이나랩]

일국양제(一国两制)가 적용되는 홍콩은 이렇게 광둥화로 홍콩과 대륙이 구별된 지역임을 드러낸다. 열차가 선전(深圳)푸톈(福田)역을 출발한 지 15분만에 홍콩 웨스트카우룽역에 도착했다. 홍콩은 대륙에서 쓰는 간체자가 아닌 번체자를 쓴다. 역 구내 안내판은 모두 번체자다. 중국 대륙이 아닌 홍콩에 들어왔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홍콩 웨스트카우룽역의 안내문들. 대륙에서 쓰는 간체자가 아닌 번체자로 쓰여져 있다.[차이나랩]

홍콩 웨스트카우룽역의 안내문들. 대륙에서 쓰는 간체자가 아닌 번체자로 쓰여져 있다.[차이나랩]

웨스트카우룽역은 홍콩의 상업중심지 한복판에 있지만 문 밖에 나서기 전까진 완전히 홍콩이 아니다. 홍콩 웨스트카우룽 역내 출ㆍ입경 관리소, 세관, 검역소, 역사 플랫폼 등 시설은 홍콩법이 아닌 중국법이 적용되는 구역이다.  
중국 대륙의 주민들과 홍콩 시민들이 홍콩에 들어가기 위해 신분증으로 자동입경 심사를 하고 있다.[차이나랩]

중국 대륙의 주민들과 홍콩 시민들이 홍콩에 들어가기 위해 신분증으로 자동입경 심사를 하고 있다.[차이나랩]

이 때문에 출국 카드를 써서 중국 출입국 관리직원에게 여권과 함께 제출하고 심사를 거쳐야 중국을 떠날 수 있게 된다. 홍콩은 중국 영토이긴하지만 일국양제가 적용되는 특별행정구라는 점에서 출입경으로 표현한다.  

 
출경 소속을 마친 뒤 100여m를 걸어오니 중국과 홍콩이 갈라서는 분계선이 보였다. 이 선을 넘으면 법적으로 홍콩 관할 지역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간단하게 입경 카드를 쓰고 여권을 보여줬다. 수속이 끝났다.

홍콩 웨스트카우룽역 출입경 사무소 내의 홍콩과 대륙의 행정 분계선[차이나랩]

홍콩 웨스트카우룽역 출입경 사무소 내의 홍콩과 대륙의 행정 분계선[차이나랩]

홍콩 언론은 이 시스템을 두고 ‘일지양검’(一地兩檢)이라고 부른다. 홍콩 심장부에서 난데없는 출입경 수속이 웬말이냔 볼멘 항의다. 일국양제가 사실상 무력화되고 있다는 반발이다.
중국 출경 수속을 마치고 홍콩 입경 사무소로 향하는 사람들. [차이나랩]

중국 출경 수속을 마치고 홍콩 입경 사무소로 향하는 사람들. [차이나랩]

필자가 홍콩특파원 시절 일국양제가 시행 14년째에 들어가던 시점이었다. 일국양제는 1997년부터 50년간 시행된다. 홍콩특별행정자치구 도널드 창 행정장관과 아시아 외신 간담회 자리가 있었다. 일본의 니케이와 교도통신, 싱가포르의 스트레이트타임스 그리고 한국의 중앙일보가 초대됐다. 도날드 창에게 물었다.  

“36년 후 홍콩은 어떤 정치체제를 갖게 되나. 사회주의 차이나에 가까운 홍콩인가, 아니면 홍콩에 가까운 차이나인가.”

도날드 창의 답변은 이랬다. “야릇한 질문이다. 둘 중 하나일거다. 뭐가 됐든 중국과 홍콩은 매우 닮아 있을 거다. 그때까지 그게 안되면 다시 몇 십년이고 연장하는 결정을 할 것이다.”  
그때가 2011년 이었다. 7년이 흐른 지금 도날드 창의 전망이 현실이 되고 있다. 홍콩과 중국의 일체화. 홍콩의 독자적 정체성을 파고드는 중국의 하드웨어 통합이 맹렬한 기세로 진행되고 있다. 첨병이 선전과 홍콩을 15분만에 갖다 붙이는 고속철이다. 초스피드를 내는 하드웨어의 연결은 두 지역의 차별적 정체성을 흐릿하게 만든다. 

이 열차가 갖고오는 변화의 충격이 어느 정도일까.
1994년 9월 베이징에 체류하던 필자는 홍콩에서 비자 갱신 수속을 밟기 위해 베이징~광저우 열차에 몸을 실었다. 장장 36시간이 걸리던 먼 길이었다. 홍콩에 들어가려면 광저우역에 내려 9인승 버스를 타고 선전까지 7시간을 달려야 했다. 광저우와 선전은 147km 거리였지만 당시 도로 사정상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렸다.     
 
선전에 도착한 뒤 로후(羅湖) 출입경 사무소에서 출입경 수속을 밟고 홍콩과 중국의 분계선을 넘었다. 오전 9시에 광저우역에 도착해 홍콩의 상업 허브 카우룽지역까지 가려면 장장 11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광저우남역에서 고속철을 타면 50분이 안돼 홍콩 카우룽에 들어갈 수 있다.  
영화 '첨밀밀'의 한 장면.[바이두백과]

영화 '첨밀밀'의 한 장면.[바이두백과]

1970년대 문화대혁명 당시 경제적 기회를 잡기 위해 해마다 수 천명의 중국인들이 목숨을 걸고 강을 건너 홍콩으로 밀입국했다. 80년대 개혁·개방의 물결이 광동성을 비롯한 동부연안 지역을 휩쓸고 지나갈 때 많은 청년들이 열병을 앓듯 홍콩으로 밀려들어갔다.

 
영화 첨밀밀에서 리밍(黎明)이 연기한 소군은 이렇게 홍콩으로 들어온 젊은이였다. 광저우와 홍콩이 고속철로 통합되면서 첨밀밀 시대는 황혼의 기억이 됐다.   

 
2014년 2월 베이징 특파원 시절 베이징~홍콩 국제열차를 탔다. 이 열차는 24시간만에 베이징과 홍콩을 연결한다. 20년 전엔 47시간이 걸렸던 여정이었다. 이 열차를 타려면 베이징에서 출경 수속을 밟으면 끝이다. 홍콩 이스트 카우룽의 홍함역에 도착해 입경 수속만 거치면 된다.   

4년이 흘러 2018년 9월 개통된 이 고속철은 선전과 홍콩의 분계선을 한참 남쪽 홍콩 심장부까지 밀고 들어간 것이다.  

기분이 묘했다. 중국철도총공사는 단거리인 홍콩-광저우(廣州), 홍콩-선전 노선을 위주로 운영하면서 베이징ㆍ상하이ㆍ우한 등 장거리 노선도 편성하고 있다. 홍콩에서 베이징까지 예상 소요 시간은 8시간56분, 홍콩에서 상하이까지 소요 시간은 8시간17분이다. 철도망이라는 하드웨어 차원에서 보면 홍콩은 이제 역외가 아니다.  
교통망이 홍콩 중심부까지 연결되면 두 지역의 물리적 흡수는 더욱 가속될 수 밖에 없다.  
중국 정부는 베이징·상하이·난징역 등 떠나는 역이 아니라 홍콩 웨스트카우룽역으로 출경 업무를 통합했다. 이유는 업무 효율이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반만 맞는 말이다. 일국양제에 대한 국제 사회의 의심이 서슬 퍼럴 때만 해도 중국은 명분을 앞세웠다. 50년간 일국양제는 흔들림 없이 실시될 것이라고 말이다. 
상하이의 마천루 전경.[셔터스톡]

상하이의 마천루 전경.[셔터스톡]

효율만 따지자면 중국 국내총생산(GDP)에서 민영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60%를 넘었고 민영기업이 재정수입의 50%, 세수의 60%, 기술혁신의 70%, 일자리의 80% 이상을 차지하는데도 불구하고 효율 떨어지고 부채만 늘어 좀비기업이 되고 있는 국영기업을 경제정책의 중심축으로 삼는 이유는 뭘까.

중국공산당의 손발인 국영경제가 필요하기 때문에 효율 문제에도 불구하고 지원하는 것 아닌가. 

일국양제의 철저한 시행을 다짐했고 그것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분명하다면 역마다 출경 관련 일자리를 만드는 일인데 마다할 중국 당국이 아니라는 얘기다. 일지양검의 반발을 무릅쓰고 홍콩 한복판까지 와서 통합 출입경 사무소를 운영하는 행보에서 분명한 메시지가 감지된다.  

 홍콩 웨스트카우룽역 홍콩측 출입경 사무소.[차이나랩]

홍콩 웨스트카우룽역 홍콩측 출입경 사무소.[차이나랩]

이제는 홍콩도 흡수통합의 때가 무르익었다고 보고 좌고우면 없이 직진하겠다는 것이다. 여전히 홍콩은 중국 경제와 정권의 민족통합 과제 수행이라는 차원에서 유의미하지만 상하이·선전 등 대체 동력이 만들어지고 있는 이상 개혁·개방 초기처럼 절실한 위상은 아니라는 무언의 메시지다.    

영화 '첨밀밀'의 한 장면.[바이두백과]

영화 '첨밀밀'의 한 장면.[바이두백과]

선전~홍콩 고속철에선 커다란 트렁크를 든 중국인들이 심심찮게 보였다. 홍콩에서 분유나 영양제 등 안전이 검증된 소비재를 사서 채우려는 사람들이다. 대륙의 대량 홍콩 왕래는 이제 빗장이 풀렸다. 경제를 필두로 사회·문화적 통합이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 

일국양제를 대체하려는 대륙의 거대한 움직임은 웨스트카우룽역 개장을 전후로 변곡점을 찍게 될까.

도널드 창에게 물었던 질문은 사실 답이 정해진 것이었다. 홍콩의 독자적 정체성을 압도하는 중국의 하드웨어 공습이 현실이 된 이상 홍콩의 중국화는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홍콩의 운명을 이렇게 필자의 경험을 들어 세세하게 얘기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북한 때문이다. 북한은 덩치만 컸지 사이즈의 중국 앞에선 홍콩과 크게 다를 바 없다. 특히 정치ㆍ경제적으로 중국에 의존하는 한 홍콩의 처지를 벗어나기 어려운 구조다.  

중국은 긴호흡으로 일국양제를 띄운 뒤 일단 제도가 궤도에 오르자 발빠르게 자기 스타일로 일국양제 다음 단계를 향해 성큼성큼 가고 있다. 

중국은 늘 이런 식으로 인접국을 대하곤 한다. 일단 의존시킨 뒤 자국의 거대한 물량 네트워크 속으로 흡수한다. 우리가 이 시점에 홍콩의 운명에 눈을 뗄 수 없는 이유다.  

 
차이나랩 정용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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