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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서도 wi-fi 터진다···IT기업 16곳 몰린 日산골마을

르포 
지난 20일 도쿄에서 약 600㎞ 떨어진 도쿠시마(徳島)현 도쿠시마 공항에서 다시 자동차로 1시간. 주변이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시골 길이 30분 정도 계속됐다. ‘이런 산골짜기에 과연 사람들이 찾아올까’ 라는 생각이 들 때쯤 ‘가미야마(神山)’라는 표지판이 나타났다.   
도쿠시마현 카미야마의 전경. [사진 NPO그린밸리]

도쿠시마현 카미야마의 전경. [사진 NPO그린밸리]

도쿄에서 600㎞ 도쿠시마 가미야마정(町)
가미야마정(町)은 인구 5400여명의 작은 시골마을이다. 그런데 도쿄의 IT 기업들이 앞다퉈 ‘위성 사무실(본사 기능을 지방으로 분산시킨 사무실)’을 개설하기 위해 이 곳으로 몰려들고 있다. 2018년 11월 현재 16개 회사가 가미야마에 터를 잡았다.  
 
이주기업이 늘면서 가미야마엔 최근 10년 동안 200명 넘는 이주민이 새로 유입됐다. 그것도 약 70%가 20대, 30대의 젊은이들이다. 고령화와 인구감소로 고전하는 일본의 지방 소도시 중에서도 매우 드문 사례다.
  
도쿄의 영상편집회사 ‘프랏토 이즈’는 2013년 가미야마에 ‘위성 사무실’을 열었다. 95년 된 양조장을 사들여 최신식으로 개조했다. 현재 도쿄에 90명, 가미야마에 16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영상편집회사 '프랏토 이즈' 사무실의 내부. 95년된 양조장을 사들여 현대식으로 개조했다. [사진=NPO 그린밸리 ]

영상편집회사 '프랏토 이즈' 사무실의 내부. 95년된 양조장을 사들여 현대식으로 개조했다. [사진=NPO 그린밸리 ]

도쿄보다 빠른 초고속인터넷망, 계곡에서도 Wi-fi 빵빵
스미타 테츠(隅田徹) 회장은 “도쿄 생활과 비교해 불편한 것이 전혀 없다. 업무 내용도 도쿄 사무실과 100% 똑같다”고 말했다.  
 
가미야마가 매력적으로 다가온 이유는 무엇보다 완벽한 인터넷 환경 때문이었다. 가미야마는 2007년 시골마을로선 드물게 마을 전체에 초고속 인터넷망을 깔았다. 당시 TV 송수신 방식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되면서 초고속 인터넷 망을 깔았던 것이 결과적으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 된 것이다. 사용자수가 적은 덕에 속도는 도쿄보다 빠르다.
 
덕분에 어딜가나 Wi-Fi가 빵빵하게 터져, 여름에는 계곡에 발을 담근 채 노트북을 들고 일하는 광경을 가미야마에선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2007년 초고속인터넷망을 깐 덕분에 카미야마에선 어디를 가도 자유롭게 Wi-fi를 사용할 수 있다. [사진 NPO그린밸리]

2007년 초고속인터넷망을 깐 덕분에 카미야마에선 어디를 가도 자유롭게 Wi-fi를 사용할 수 있다. [사진 NPO그린밸리]

"어디서 누구랑 일할지 자기가 선택하는 시대"
회사 운영비가 도쿄의 5분의 1 수준으로 저렴한 것도 장점이었다. 처음엔 ‘지방으로 가면 물 먹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에 지원을 꺼렸지만, 최근엔 여유 있는 삶을 찾아 손을 드는 지원자도 늘었다.
 
스미타 회장은 “일하는 방식의 선택지가 늘어난 것”이라고 강조했다. “예전엔 회사가 어디에서 누구랑 일할 지를 강제로 정해줬지만, 이제는 자기가 선택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는 것이다.  
2013년 위성 사무실을 오픈한 영상편집회사 '프랏토 이즈'의 전경. 95년된 양조장을 사들여 현대식으로 개조했다. 윤설영 특파원

2013년 위성 사무실을 오픈한 영상편집회사 '프랏토 이즈'의 전경. 95년된 양조장을 사들여 현대식으로 개조했다. 윤설영 특파원

인터넷 환경이 전부는 아니었다. 가미야마는 마을 부흥사업으로 1999년부터 해외 예술인을 초청해 전시회를 여는 등 마을 전체가 개방적이었다. 여기에 참가했던 예술가 한 두 명이 가미야마로 이주하자 마을 주민들이 본격적으로 ‘이주 사업’에 나섰다.  
 
빈집을 내놓고 무조건 “오세요”라고 하는 게 아니라, ‘살고 싶은 집’으로 개조해 적극적으로 외지인들을 초대했다. 나중엔 마을이 먼저 빵집, 의상실 등 필요한 가게의 입주자를 모집할 정도의 수준까지 올랐다.
 
아일랜드 출신의 마누스 스위니(38)는 1년 전 가미야마에 소규모 맥주공장을 짓고, 수제맥주 판매를 시작했다. 그는 “나만의 맥주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꿈을 가미야마에서 이뤘다”고 말했다.
 
100% 주민들의 힘...지자체 무관심이 성공 도와 
해외 예술인 초청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가 카미야마에 정착한 아일랜드인 마누스 스위니(39). 자기 맥주공장을 갖고싶다는 꿈을 이뤘다. 윤설영 특파원.

해외 예술인 초청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가 카미야마에 정착한 아일랜드인 마누스 스위니(39). 자기 맥주공장을 갖고싶다는 꿈을 이뤘다. 윤설영 특파원.

이런 사업을 이끈 것은 100% 주민들의 힘이었다. 주민들은 아예 “미국 실리콘 밸리처럼 만들어보자”며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주민 20여명으로 구성된 NPO ‘그린 밸리’가 중심이 됐다. 무너져가는 봉제공장을 사들여 대형 사무공간으로 개조했다. 누구라도 24시간, 365일 사용할 수 있는 공유 오피스로 탈바꿈 한 것이다. 현재 도쿠시마 현청, 도시락배달 업체 등 10여개 회사가 이 공간을 이용하고 있다. 가미야마에 사무실을 열기 전 테스트 공간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이날도 도쿄에서 온 한 여성 IT기업인이 상담을 하고 있었다. 그는 “1년 중 일주일이든 한달이든 다른 생활방식으로 살아보면 리프레시가 가능할 것 같다”면서 사무실 개설을 적극적으로 검토 중이었다.
 
반면 지자체는 이주 사업에 무관심했다. 흔한 기업 보조금조차 주지 않았다. 역설적으로 그런 무관심이 가미야마의 변화를 이끌었다.   
NPO 그린밸리가 운영하는 공유오피스 한 켠엔 '도쿠시마는 선언한다, VS 도쿄'라고 적힌 포스터가 붙어있다. 윤설영 특파원.

NPO 그린밸리가 운영하는 공유오피스 한 켠엔 '도쿠시마는 선언한다, VS 도쿄'라고 적힌 포스터가 붙어있다. 윤설영 특파원.

‘그린 밸리’의 오오미나미 신야(大南信也) 이사는 “보조금을 보고 들어오는 기업은 보조금이 끊기면 여기 있을 이유가 없어진다. 여기서 뭔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기업이 들어온 게 결과적으로 기업과 지역의 협업에도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사람 불러들인 건 IT 인프라 아닌 사람"
1999년부터 추진해온 해외 예술인 초청 사업. [사진=NPO 그린밸리]

1999년부터 추진해온 해외 예술인 초청 사업. [사진=NPO 그린밸리]

최근 가미야마엔 프랑스 음식점, 피자집, 커피전문점 등이 생겨나고 있다. IT기업 뿐 아니라 서비스업으로 업종이 다양해지고 있는 것이다. 위성사무실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위한 호텔도 문을 열었다.
 
가미야마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또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마을을 꿈꾸고 있다. 예술가, 기업가에 이어 요리사를 초청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지역 농산물을 이용해 가미야마에서만 맛볼 수 있는 창조적인 음식으로 가미야마를 널리 알리자는 프로젝트다. 10년 후엔 요리학교 개교도 꿈꾸고 있다.
 
오오미나미 이사는 “가미야마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온 건 사람이다. 창조적인 사람들에게 새로운 발상을 일으킬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 결국 마을에 사람을 불러들인 건 IT인프라가 아닌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도쿠시마 가미야마=윤설영 특파원 snow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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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