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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안개와 단풍 그리고 기암절벽…황홀한 산행길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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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만윤 사진 하만윤
[더,오래] 하만윤의 산 100배 즐기기(33)
동틀 무렵의 주산지. 물안개가 피어올라 몽환적이다. [사진 하만윤]

동틀 무렵의 주산지. 물안개가 피어올라 몽환적이다. [사진 하만윤]

 
주왕산국립공원에 주산지가 있다. 고요한 수면 위로 왕버들이 흐드러지며 물 위와 물 아래 경계가 사라지고, 물안개라도 피어오르면 꿈인 듯 환상인 듯 현실인 듯 아닌 듯 모호해지는 풍경에 넋을 놓게 되는 곳. 영화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을 통해 더 유명해진 주산지는 조선 시대 경종 원년(1720년) 8월에 착공해 이듬해 10월에 완공한 인공저수지다.
 
길이 200m, 너비 100m, 평균 수심 8m로 그리 광활한 느낌은 없으나 가뭄이 닥쳐도 물이 마르거나 바닥을 드러낸 적이 없고 여전히 13.7ha의 농지에 물을 댄다고 하니 ‘정성으로 둑을 막아 물을 가두어 만인에게 혜택을 베풀고자’ 했던 임금의 마음이 하늘에 닿은 게 아닐까 싶다. 물론 이를 뒷받침하는 과학적인 설명은 논외다.
 
가을과 겨울이 공존하는 때에, 혹시 올해 마지막 단풍을 볼 수 있을까 싶은 기대에 주왕산국립공원 산행을 계획했다. 새벽 동틀 무렵 주산지까지 덤으로 말이다.
 
물안개에 묻힌 주산지 왕버들 나무들. 가을 끝자락 단풍마저 스산해 보인다. [사진 하만윤]

물안개에 묻힌 주산지 왕버들 나무들. 가을 끝자락 단풍마저 스산해 보인다. [사진 하만윤]

 
서울을 떠난 버스는 해가 뜨기 한참 전에 주산지 입구 주차장에 일행을 데려다 놓았다. 밤새 달려온 버스에서 불편한 잠을 청했던 터라 필자와 일행은 버스에서 조금 더 눈을 붙인 뒤 일출예정시각 30분 전에야 주산지로 향했다. 주차장에서 주산지까지 1km 남짓한 거리는 포장이 잘돼 있어 걷기가 좋다.
 
일행은 배낭을 버스에 둔 채로 삼삼오오 무리를 이루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다. 우리 일행 외에도 대여섯 대 버스에서 내린 관광객이 함께 길을 나선 탓에 거리는 이내 소란스러워졌다.
 
여명의 주산지는 황홀했다. 뿌옇고 축축한 물안개에 갇혀있던 왕버들 30여 그루가 어슴푸레한 빛에 의지해 겨우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니, 가을 끝 샛노란 단풍을 달고 물 위에 있는지 물속에 있는지 혹은 두 곳 모두에 있는지 구분 짓기가 어려웠다.
 
이 왕버들들은 주산지가 만들어지기 한참 전부터 이곳에 뿌리내리고 있었다고 전한다. 물을 좋아하되 물속에서는 숨을 쉴 수가 없는데 주산지 왕버들은 물속에서도 호흡하기 위해 호흡근을 발달시켰다고 하니 그 끈질긴 생명력에 그저 감탄할 수밖에. 주산지가 2013년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105호에 이름을 올리게 된 일등공신이 왕버들이 아닐까 싶다.
 
단체 사진으로 주산지를 기억한다. [사진 7080산처럼]

단체 사진으로 주산지를 기억한다. [사진 7080산처럼]

 
주산지의 몽환적인 풍경을 눈으로도 만끽하고 사진으로도 간직하기에 모두 분주하다. 다행히 날씨가 춥지 않다. 일행은 해가 온전히 뜨고 물안개가 가실 무렵에서야 주차장으로 돌아와 간단히 아침을 먹고 버스로 주왕산국립공원 상의탐방지원센터로 이동했다. 아직 시간이 이른지 주차장이 제법 한갓졌다. 본격적인 산행은 이제부터다.
 
주왕산 기암괴석이 대전사 병풍마냥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사진 하만윤]

주왕산 기암괴석이 대전사 병풍마냥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사진 하만윤]

 
주차장에서 즐비한 가게를 지나 조금만 가면 대전사가 있다.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주왕산 정상인 주봉으로 향하고, 왼쪽으로 가면 주왕산 기암절벽을 끼고 용추폭포, 절구폭포, 용연폭포를 만날 수 있는 산책로로 이어진다. 주왕산은 경북 청송군 부동면·진보면과 영덕군 지품면·달산면에 걸쳐있는 산으로, 1976년 우리나라에서 열두 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주봉을 비롯해 장군봉, 연화봉, 두수람, 왕거암, 가메봉 등 12개나 되는 고봉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고 해 석병산 또는 주방산으로 불렸다. 대전사는 대웅전 뒤로 주왕산을 대표하는 이 기암절벽들이 병풍처럼 펼쳐있어 더 유명하다. 일행은 주봉을 넘어 후리메기 삼거리에서 용연폭포를 보고 대전사로 돌아오는 짧은 코스를 잡고 산으로 들어간다.
 
대전사 뒤편, 주봉으로 오르는 초입이다. [사진 하만윤]

대전사 뒤편, 주봉으로 오르는 초입이다. [사진 하만윤]

 
대전사 뒤편으로 주봉으로 오르는 초입이 보인다. 주봉마루길이라고 적힌 이정표를 지나면 바로 오르막길이 펼치지만 그리 힘든 길은 아니다. 40여 분을 오르면 주왕산 기암괴석이 한눈에 보이는 전망대에 도달한다.
 
이곳에 서면 혈암, 장군봉, 기암, 연화봉, 병풍바위가 일렬로 서있는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주왕산을 설악산과 월출산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암산으로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산이 높지 않되 산세가 웅장하고 산허리를 기암절벽이 둘러싸고 있어 경북의 소(小)금강으로도 불린다.
 
주봉으로 오르는 길 전망대에서 만나는 주왕산의 기암괴석. 경북의 소(小)금강으로 불릴만하다. [사진 하만윤]

주봉으로 오르는 길 전망대에서 만나는 주왕산의 기암괴석. 경북의 소(小)금강으로 불릴만하다. [사진 하만윤]

 
전망대에서 조금 더 오르면 정상인 주봉에 다다르게 된다. 주봉은 나무들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어 산세를 조망할 수 있는 매력은 없다. 그런데도 일행은 주봉에 도달했다는 성취감을 사진으로 남기기 시작한다. 사소한 듯한 이런 성취감들이 모여 또다시 길을 나설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이리라.
 
주왕산 정상인 주봉. [사진 하만윤]

주왕산 정상인 주봉. [사진 하만윤]

 
주봉을 넘으면 그때부터는 온전히 하산길이다. 걷기가 편하니 길이 눈에 들어오고 길에 가득한 낙엽이 보인다. 주왕산의 가을은 낙엽과 함께 길에 수북이 내려 앉아있었다. 그렇게 가을을 눈이 아닌 발걸음으로 느끼며 걷다 보니 어느새 용연폭포로 오를 수 있는 후리메기 입구에 다다랐다.
 
주왕산의 가을은 떨어진 낙엽 밟는 소리에 스며들어있었다. [사진 하만윤]

주왕산의 가을은 떨어진 낙엽 밟는 소리에 스며들어있었다. [사진 하만윤]

 
후리메기 입구에서 하산 길과 반대편으로 10분 정도 오르면 물소리 우렁찬 용연폭포를 만날 수 있다. 용연폭포는 2단으로 이뤄져 있으며 주왕산 폭포 중 가장 크고 웅장한 규모다. 이슥한 가을임에도 물이 많아 거침없이 떨어지며 물빛 또한 짙은 옥빛이라 주위를 가득 메운 나무들과 어우러져 참 좋았다. 필자를 비롯해 수많은 사람이 데크에 한 줄로 붙어 그 장관을 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용연폭포는 거침없이 떨어져 내렸다. [사진 하만윤]

용연폭포는 거침없이 떨어져 내렸다. [사진 하만윤]

 
용연폭포를 지나면 대전사까지 5Km 남짓한 거리는 그야말로 눈이 호강하는 길이다. 머리를 맞대고 있는 웅장한 바위틈으로 걸어 들어가는 주왕산에서 최고의 풍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용추협곡을 시작으로 솜씨 좋은 조각가가 빚은 듯한 절구폭포, 3단으로 이루어진 용추폭포,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절벽 위에 청학과 백학 한 쌍이 둥지를 짓고 살았다는 학소대, 떡을 찌는 시루 같기도 하고 사람의 옆모습 같기도 한 시루봉, 화산 폭발로 생겨났다는 연화굴 등 오랜 세월 동안 자연의 힘이 빚어낸 풍경은 놀랍고 그저 신비롭기만 하다.
 
주왕산은 전국에서 빠지지 않는 가을 단풍 명소로 꼽히지만 어느 계절에 오든 변함없이 버티고 서서 웅장함과 고고함을 잃지 않는 기암들이야말로 주왕산의 참 매력이 아닐까 싶다.
 
대전사로 다시 하산 길은 눈이 호강하는 길이다. [사진 하만윤]

대전사로 다시 하산 길은 눈이 호강하는 길이다. [사진 하만윤]

 
첫 출발지인 대전사를 지나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은 다시 입과 코가 행복하게 된다. 길가에 늘어선 식당에서 풍기는 고소한 파전 냄새며 시큼한 동동주 냄새가 산행으로 지친 몸을 금세 노글노글하게 만든다. 식당 평상에 걸터앉아 잠시 잠깐 뒤풀이를 즐기는 것은 산행을 마무리하는 제법 괜찮은 방법이리라.
 
그동안의 산행을 돌아보면 걷기 힘든 길이라서 마냥 걷기만 하는 것도 아니고, 걷기 좋은 길이라서 거저 걷는 것도 아니라는 말에 백배 공감하게 된다. 지난 원정 산행들이 긴 거리를 힘들게 걸었던 극기 산행이었다면, 이번 주왕산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소풍 가듯이 걸었던 산행이었다.
 
고되든, 아니든 함께 길을 나선 동무가 있기에 좀 더 수월하게 좀 더 즐겁게 한 걸음 한 걸음씩 내디딜 수 있었으리라. 그리고 앞으로 또다시 문지방을 넘어 산으로 향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리라 확신한다.
 
대전사-주봉-후리메기삼거리-후리메기입구-용연폭포-시루봉-대전사, 거리 총 약 11Km 시간 약 4시간 20분. [사진 하만윤]

대전사-주봉-후리메기삼거리-후리메기입구-용연폭포-시루봉-대전사, 거리 총 약 11Km 시간 약 4시간 20분. [사진 하만윤]

 
하만윤 7080산처럼 산행대장 roadinm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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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