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핍박받는 中 2등시민의 눈물…美, 대륙의 화약고 건드리다

이슈추적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이 갈수록 달아오르는 가운데 최근 양국이 다른 일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미 의회가 얼마 전 ‘중국이 위구르족에 대한 탄압을 멈출 수 있도록 (미국) 정부가 강력한 대응을 해야 한다’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거든요. 공화당과 민주당이 뜻을 한데 모았고 상ㆍ하원에서 동시에 발의됐죠.
중국 드라마 '왕의 여자'의 주연 배우 디리러바. 위구르족 출신으로 중국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위구르족은 한족과 외양은 물론 언어, 종교도 다르다.

중국 드라마 '왕의 여자'의 주연 배우 디리러바. 위구르족 출신으로 중국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위구르족은 한족과 외양은 물론 언어, 종교도 다르다.

의원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정부에 ‘위구르인 재교육 캠프’ 폐쇄를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강제수용소와 다를 바 없다는 거죠. 또 신장웨이우얼자치구(신장위구르자치구)의 고위 관리들을 제재하고 위구르인 구금에 이용될 수 있는 기술ㆍ제품의 수출도 막아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발단은 최근 유엔인권이사회(UNHRC)가 낸 보고서였습니다. “위구르인 100만 명가량이 불법 구금 상태에서 탄압받고 있다”는 내용이 폭로됐는데, 사상교육은 물론 고문이 행해진다는 얘기도 나왔습니다. 국제인권감시기구(휴먼라이츠워치) 역시 중국 정부가 위구르인 감시를 위해 이들의 DNA 샘플을 수집하고 있다고 고발했고요.
 
미 의원들이 법안을 발의하자 중국은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대체 무슨 우월감으로 내정에 간섭하느냐”며 미국 내 인종차별 자료를 들고 나왔죠. 한마디로 ‘너나 잘해’란 얘기랄까요.
위구르족이 누구기에 이 난리 통일까요?
 
제국의 후예, 위구르
중국은 인구의 90%를 차지하는 한족과 55개 소수민족으로 이뤄진 다민족국가입니다. 그 역사는 중원을 사수하려는 한족과 빼앗으려는 타민족 사이의 분쟁으로 얼룩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신장위구르 지역에 있는 공안경찰들. [AP=연합뉴스]

신장위구르 지역에 있는 공안경찰들. [AP=연합뉴스]

현재 중국 정부가 소수민족 통합에 에너지를 쏟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하지만 언어와 문화, 종교가 다른 이들을 한족 중심의 ‘중화사상’으로 통합하는 게 쉬울 리가요. 그중에서도 위구르족은 중국 정부의 가장 큰 ‘골칫거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1100만 명가량 되는 위구르족은 중국 서북부 지역에 있는 신장웨이우얼자치구에 살고 있습니다. 베이징ㆍ상하이와 같은 중국 정치ㆍ경제 중심지와는 한참 떨어진 내륙 지방이죠. 튀르크족(투르크족) 계열인 이들은 한족과 생김새는 물론 언어, 종교도 다릅니다. 위구르어를 쓰며 이슬람교를 믿죠. 중국뿐 아니라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에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드넓은 중앙아시아의 여러 유목민족 중 하나였던 위구르족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건 7세기 초부터였습니다. 744년에는 다른 부족들을 통합해 돌궐 제2제국을 쓰러뜨리고 위구르 제국을 세우게 되죠. 카스피해 유역에서부터 만주에 이르기까지 광활한 초원을 손에 넣었는데, 당나라가 반란으로 위험에 처했을 때 도와줬을 정도로 막강했습니다. 때문에 당나라 황제는 공주를 억지로 위구르의 카간(튀르크계 국가의 지도자)과 결혼시켜야 했죠.
 
위구르인들은 유목민족이면서도 농경문화를 받아들였는데요. 여기엔 여러 장점이 있었지만, 유목민족 특유의 전투력이 약화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약 100년간 중앙아시아에서 위용을 떨치던 이들은 알프 쿠틀룩 빌게 카간이 죽으면서 혼란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죠. 결국 북쪽 지역의 키르기즈인들이 쳐들어와 위구르 제국을 무너뜨리고 맙니다.  
 
졸지에 나라를 잃은 위구르인들은 중앙아시아 전역으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김호동 서울대 교수는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에서 “이들은 새로 이주한 지역에서 서서히 정착 생활을 하면서 독립 왕국을 건설”했고 “위구르인들의 이주와 정착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중앙아시아의 ‘투르크화’에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설명하죠.  
 
10세기에 받아들인 이슬람교 지금까지 이어져 
흩어진 이들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뉘어 각각 왕국을 세웠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서쪽(현재의 투르키스탄 지역)에 자리 잡은 카라한 왕조는 이슬람교를 받아들여 위구르인이 이슬람교를 믿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몽골 기마병 부대를 재연한 모습. [중앙포토]

몽골 기마병 부대를 재연한 모습. [중앙포토]

그러나 약 300년 동안 이어졌던 위구르 독립왕국들은 동쪽에서 어마어마한 기세로 쳐들어온 몽골 제국 앞에 무릎 꿇게 되죠. 이후 몽골 제국의 후예 중 하나인 차카타이 한국 등의 지배를 받으며 위구르인들은 이슬람교에 더 깊숙이 젖어 들게 됩니다.  
 
시간은 흘렀고, 이번엔 만주족의 시대가 왔습니다.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은 한족의 나라인 명나라를 무너뜨리고 위구르인들의 땅까지 쳐들어왔죠. 1700년대 초, 청나라는 위구르족의 근거지를 정복하고 이곳을 ‘신장(新疆ㆍ신강)’이라 불렀습니다. ‘새로운 땅’이란 뜻이었죠.
  
그러나 너무 다른 세월을 살아온 이들이 잘 어울리긴 힘들었습니다. 위구르인들은 계속 반란을 일으켰고 그럴수록 청나라는 무력으로 진압해 갈등이 끊이지 않았죠. 큰 반란으로 청나라의 지배력이 약해졌다가 다시 강해지길 반복했습니다.
 
그랬던 위구르족에게도 기회가 찾아온 걸까요?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이 멸망합니다. 분열을 반복하던 위구르족은 1944년 중국에서 내전이 일어나자 드디어 기회를 포착, 나라 이름을 ‘동튀르키스탄공화국’으로 짓고 임시정부를 세우죠. 하지만 중국 내전에서 공산당이 승리하자 동튀르키스탄공화국 임시정부는 중국 공산당과 병합을 선언합니다. 그 결과가 현재의 ‘신장웨이우얼자치구’인 셈이죠.  
 
독립하겠다는 위구르족 vs 절대 안 된다는 중국 정부
중국 신장 지역 이드 카 모스크 앞 광장을 공안들이 순찰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중국 신장 지역 이드 카 모스크 앞 광장을 공안들이 순찰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중국 중앙정부와 늘 갈등을 빚어온 위구르인들이 독립을 꿈꾸는 건, 역사적ㆍ문화적 이유 때문만은 아닙니다. 연안의 부유한 도시들과 내륙 지역 간 빈부 격차가 큰 원인이죠. 가난한 위구르 청년들은 2000년대 들어 기승을 부린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손쉬운 먹잇감이 됐고, 신장웨이우얼자치구는 ‘화약고’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민족, 특히 유목민족의 침입을 끊임없이 받아온 역사를 지닌 한족 정부가 위구르를 순순히 놓아줄 리가 없습니다. 게다가 신장은 러시아ㆍ인도ㆍ몽골ㆍ파키스탄ㆍ아프가니스탄 등 8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전략적 요충지역’이라 더더욱 강경하게 진압하고 있습니다. 석유와 석탄 등 자원이 풍부한 것도 중국이 이들을 놔줄 수 없는 또 다른 이유죠.
 
정부 측은, 신장에서 퍼지고 있는 ‘범튀르크주의’ 운동에 맞서 “당신들은 모두 중국인이며 튀르크족이 아니다”고 사상 교육에 나선 것은 물론 안면 인식장치 등 각종 첨단 기술을 이용해 이들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인권 탄압이 행해지는 수용소의 규모는 2년 전보다 무려 5배나 커졌다는 보도(월스트리트저널)가 나올 정도고요.   
관련기사
하지만 그럴수록 위구르인들의 분노는 점점 커지고 있고, 이미 여러 유럽 국가들은 중국 정부에 경고를 보냈습니다. 여기에 미국까지 나선 거죠. ‘일대일로’의 꿈을 꾸는 중국 정부가 실크로드의 중심지였던 신장 지역을 두고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