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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촛불정권의 부채론 속에 숨은 진실

고대훈 수석 논설위원

고대훈 수석 논설위원

문재인 정권은 민주노총에 얼마나 신세를 졌기에 저리 쩔쩔매나.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는 막말을 내뱉는 그들의 오만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여우 정권’이라고 놀림을 당해도 그들의 비위를 맞춰야만 권력을 유지할 수 있나. 수틀리면 뒤엎고 무단 점거할 수 있는 초법적 권리를 누가 그들에게 부여했나. 요즘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이런 의문을 가질 법하다.
 
노동계의 한 인사가 정곡을 찌른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촛불 덕분에 광장에서 권력을 거저 주웠다. 정권 교체를 광장의 촛불이 견인했고 그 선봉에 섰던 게 민주노총이었다.” 이른바 ‘촛불 부채론’의 논리적 근거다. “민주당은 어떻게 집권 여당이 됐는지 자각하라”는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의 으름장은 노골적이다. 2016년 10월~2017년 3월 ‘대통령 박근혜 파면’이 나오기까지 1500만 촛불이 장삼이사의 순진한 열정만으로 거저 탔겠느냐는 은유적 의미가 담겨 있다.
 
부채론의 실체를 알기 위해 2년 전 탄핵정국으로 돌아가 보자. 탄핵 열풍이 범국민적으로 확산된 결정적 계기는 2016년 10월 29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내려와라 박근혜 시민 촛불’이었다. 3만 명이 모인 ‘제1차 촛불집회’는 민주노총의 민중총궐기투쟁본부가 주도했으며 5개월간 이어진 촛불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이후 민주노총은 시민단체 연합체인 ‘박근혜 정권 퇴진행동’에 가세해 주말 20여 차례의 대규모 집회를 이끌며 박근혜 정권 몰락에 일조했다. “장작불이 훨훨 타오르도록 불쏘시개 역할을 한 게 민주노총의 투쟁력·조직력·자금력이었다”고 ‘퇴진운동’에 참여했던 인사는 전한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정권을 자임한다. 촛불민심을 권력 정당성의 기반으로 한다. 그러니 촛불집회를 주도한 민주노총은 이 정권 창출에 공신이라는 그럴듯한 추론이 성립한다. 그러곤 자신들 덕분에 권력을 잡았으니 청와대는 채무자로서 부채의식을 가지라고 다그친다. 부채의식은 보은(報恩)의식을 동반한다. ‘오늘의 나’는 그 부채의 덕에 존재하기에 채권자에게 한없이 감사하고 빚을 갚아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가 생긴다. 촛불을 매개로 한 채권과 채무의 탄생 과정이다.
 
고대훈칼럼

고대훈칼럼

현 정부가 내건 ‘노동 존중 사회’는 보은의 한 방식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가장 먼저 인천국제공항공사로 달려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공언했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 쌍용차·KTX 해고자 복직, 52시간으로의 근로시간 단축 등 친노동 정책으로 은혜를 갚아나갔다. 이제는 전교조 합법화까지 들고 나와 구애를 펼친다. 그런데도 민주노총은 21일 ‘빚 독촉’ 총파업을 강행했다. 파업 명분은 따로 있지만 본질은 정권 길들이기였다.
 
과도한 보은의식은 ‘민주노총 트라우마’에서 비롯됐을 수 있다. 문 대통령의 저서 『운명』에는 “스트레스에 치아를 10개나 뽑기도 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노무현 정부 출범 첫해인 2003년 민정수석일 때 노동계와의 협상을 회고하면서다. 당시 화물연대·철도노조 파업이 터지면서 사사건건 민주노총과 충돌했다. 결국 “대통령직 못 해먹겠다”와 “선무당 노무현이 노동자 잡네”란 험한 말이 오간 뒤 둘은 갈라섰다. 이후 정권은 지지율 하락과 함께 흔들렸다. 이런 과거의 악몽과 공포가 보은 심리를 북돋우는 원인으로 보인다.
 
권력을 놓고 채권-채무의 부채 공방을 벌이는 일은 초유의 현상이다. 민주노총은 촛불 전체를 대표하지 않는다. 그들이 없었어도 당시의 도도한 물결을 되돌릴 순 없었다. 지난 대선 때 그들은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지 않았다. 정치적 빚이 없다는 얘기다. ‘퇴진운동’ 자료에 따르면 촛불집회 기간 중 수입은 총 39억여원이었으며, 현장 모금액이 18억여원으로 가장 많았고 계좌 후원, 단체 분담금이 나머지였다. 이 중 28억원이 무대·음향 설치, 현수막, 양초·컵 등에 쓰였다. 시민들의 십시일반이 컸고, 민주노총에 손 벌릴 이유도 없던 셈이다. 이면합의가 없다면, 드러난 것이 전부라면 지금까지 보은 조치로 충분히 변제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 정권의 부채의식은 모든 국민에게 져야 한다. 그날그날 벌어 겨우 먹고사는 서민들, 고용 참사 앞에 좌절하는 젊은이들, 망해 가는 소상공인들이 촛불민심이었다. 민주노총에 들인 공에 10분에 1만이라도 떼어내 절망하는 그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실체 없는 촛불청구서는 ‘민주노총만을 위한 나라’를 합리화하려는 프레임일 뿐이다. 이를 빌미로 소수의 기득권 노동귀족이 정부와 국민을 헤어날 수 없는 빚쟁이의 함정에 끌어들이려는 전략이다. 이게 부채론의 진실이다. 통제 불능의 민주노총은 문재인 정권을 집어삼킬 공룡으로 돌변할 수 있다. 속히 ‘빚 없음’을 선언하는 게 그런 비극을 막는 길이다.
 
고대훈 수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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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