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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부부의 고통 “남편수술 동의 자격도 없어”

“(동거 부부는) 법적인 보호자로 인정받지 못해서, 한 사람이 응급실에 실려 가더라도 수술동의서에 사인할 권한도 없습니다.”
 
방송인 허수경씨는 21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 여성가족부의 ‘다양한 가족(동거가족) 간담회’에 참석해 이렇게 말했다. 허씨는 “의지하고 함께 사는 동반자가 있더라도 자녀들의 반대나 다른 이유로 결혼을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라며 “함께 사는 두 사람이 부부와 유사한 관계를 유지한다면 동반자로 인정하고 권리를 보장하고 책임을 다할 수 있게 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허씨는 남편과 7년째 동거 중이다. 아들(21)과 딸(11)은 각각 남편과 자신의 호적에 올라있다. 엄연한 가족이지만 법적으로는 ‘한부모 가정’이다. 그는 “부모가 동거 상태거나, 한부모 가정이라는 사실이 아이들 또래 집단에 알려지면 놀림을 받고 아이가 상처를 받기도 한다”라며 “부모의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그 자녀에 대한 보호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허씨를 포함해 결혼을 선택하지 않고 동거 중인 남녀 8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동거가족으로 생활하면서 겪는 어려움을 털어놨다.
 
결혼과 동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달라지고 있지만 동거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은 여전하다. 통계청의 2018년 사회조사에 따르면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같이 살 수 있다”라는 비율이 56.4%로 2010년 조사 이래 처음으로 절반을 넘어섰다. 또 “결혼하지 않고 자녀를 가질 수 있다”는 비율(30.3%)도 처음 30%를 돌파했다.
 
하지만 2016년 보건사회연구원의 ‘다양한 가족의 출산 및 양육실태와 정책과제’에 따르면 동거경험자(253명) 중 부정적 시선이나 편견 등 차별을 경험한 비율은 51%에 달했다. 또 정부의 지원이나 서비스 혜택 등에서 차별을 경험한 비율도 45.1%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간담회 참석한 조세진(가명)씨는 아내와 12년째 동거 중이다. 지난해 결혼식을 올렸지만 혼인신고는 하지 않았다. 조씨는 “주변에 처음 동거한다는 사실을 밝히면 ‘오~좋겠네’ ‘야, 좋겠다’식의 반응을 보이곤 한다. 자유로운 성생활을 부러워하는 거였다. 실상은 그렇지 않은데. 웃고 넘겼지만 불편해서 피했다”라고 털어놨다. 아내는 결혼식을 올리기 전 가족들에게도 동거 사실을 밝히지 못했다. 조씨는 “아내 부모님이 집을 찾는 날이면 내 물건을, 신발까지 다 치우곤 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참석자 김지연(가명)씨는 동거 가족들이 정부 지원에서 배제되는 현실을 지적했다. 김씨는 “나는 건강보험 지역가입자인데, 만약 배우자로 인정되면 (남편의) 피부양자가 돼 부담이 줄어든다. 사소하지만 자동차 보험료나 주택청약 할 때도 1인 가구로 분류돼 혜택이 적다”라고 말했다. 김씨도 결혼을 할까 고민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은 둘만의 신뢰와 애정을 기반해 관계가 유지되지만 결혼과 동시에 주변 가족들과의 관계가 한꺼번에 (둘 사이에) 들어오는 게 부담이 됐다”라고 말했다.
 
지난 2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미혼모나 비혼 가족 등 어떤 가족 형태라도 아이와 행복한 세상을 목표로 가족다양성TF를 꾸렸다. 위원회는 혼인신고 때가 아닌 자녀 출생신고 시에 부·모의 성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하고, 동거 부부에게도 난임 시술 지원하는 등의 대책을 제시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금은 동거 가족이 보편화된 프랑스나 독일도 1980~90년대엔 법률혼 외에 부부나 그 자녀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다”라며 “동거 부부도 병원 입원 할 때 보호자로 인정하고, 건강보험 피부양자 지위를 주는 등 사회적인 저항이 덜한 제도부터 바꿔나가면 사회적 인식도 차츰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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