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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영의 글로벌 인사이트] "누구 편이냐" 배틀한 미·중, APEC 회원국 공포로 몰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7일 파푸아뉴기니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연설했다. 시 주석과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서로를 날카롭게 공격하면서 나머지 회원국을 압박했다. [포트모르즈비 AP=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7일 파푸아뉴기니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연설했다. 시 주석과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서로를 날카롭게 공격하면서 나머지 회원국을 압박했다. [포트모르즈비 AP=연합뉴스]

 
지난 17일 남태평양 섬나라 파푸아뉴기니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연단에 올랐다.
 
“중국은 다자무역체제를 지지하고, 시장 개방과 지식재산권 보호를 강화하고, 수입을 적극적으로 확대하겠습니다. 관세를 매기고 글로벌 공급망을 흔드는 (미국의) 행위는 근시안적이며,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의 일방주의가 세계 무역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중국은 개방 정책을 이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일대일로는 패권추구가 아니며, 중국이 세계와 공동의 발전 기회를 공유하는 광명대로입니다. 누구 말대로 주변국을 빚더미에 빠뜨리는 올가미는 더욱 아닙니다.”  
 
잠시 후 연단에 오를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의 비판을 의식해 선제적으로 일대일로 정책을 방어했다.
 
시 주석은 연설 말미에 질문을 던졌다. “인류는 다시 한번 교차로에 섰습니다. 어느 방향을 선택할 것입니까? 협력인가요, 대립인가요? 개방인가요, 폐쇄인가요?”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지난 17일 파푸아뉴기니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연설했다. 펜스 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서로를 날카롭게 공격하면서 나머지 회원국을 압박했다. [포트모르즈비 AP=연합뉴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지난 17일 파푸아뉴기니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연설했다. 펜스 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서로를 날카롭게 공격하면서 나머지 회원국을 압박했다. [포트모르즈비 AP=연합뉴스]

 
이어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연단에 섰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대신해 참석했다. 시 주석의 예상대로 중국의 지정학(geo-political) 전략과 일대일로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중국은 수년 동안 미국을 이용해 왔습니다. 미국은 서둘러 무역전쟁을 끝내려 하지 않을 겁니다. 중국이 태도를 바꾸기 전에 미국은 진로를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이어 미국이 중국보다 “더 좋은 선택권”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아시아 모든 국가와 세계를 향해 말하겠습니다. 주권을 타협해야 할 수도 있는 (중국) 외채는 쓰지 마세요. 미국은 파트너를 빚의 바다에 빠뜨려 익사시키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시 주석과 펜스 부통령의 연설을 들은 APEC 회원국 정상과 고위 관료, 기업 최고경영자(CEO)들 사이에 긴장감이 돌았다. 세계 경제 1, 2위 국가가 공개적으로 서로를 향해 날카로운 공격을 퍼붓자 청중석은 가시방석이 됐다. 회원국들은 혼란에 빠졌고, 1989년 이후 처음으로 APEC 공동 성명 채택이 불발됐다.
 
통상적인 수준의 공동 성명조차 발표할 수 없을 정도로 의견 충돌이 커진 것은 미·중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양측이 사용한 공격적이고 단호한 수사는 냉전 시대에 오가던 말을 연상시킨다”고 전했다. 
 
블룸버그통신은 “1990년대 초 소련 붕괴 이후 동남아 국가들은 강대국의 싸움에 휘말리지 않으려 각고의 노력을 했는데 상황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전했다.
 
18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마친 정상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피터 오닐 파푸아뉴기니 총리, 아베신조 일본 총리,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 [AP=연합뉴스]

18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마친 정상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피터 오닐 파푸아뉴기니 총리, 아베신조 일본 총리,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 [AP=연합뉴스]

 
당초 APEC에서 미국과 중국 지도자가 만나면 무역전쟁으로 인한 긴장이 완화할 것으로 예상했다. 기대와는 달리 시 주석과 펜스 부통령은 오히려 긴장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상대의 무역 정책을 비난하면서 APEC 회원국의 충성심을 놓고 ‘배틀’을 벌이는 모양새였다고 NYT는 설명했다.
 
시 주석과 펜스 부통령의 연설은 누구 편인지 선택하라고 종용하는 듯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블룸버그는 “미·중 무역전쟁이 시작된 이후 아시아 국가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바로 미국과 중국이 두 진영으로 갈라지는 것이다. 
 
휴 화이트 호주국립대 교수는 “아무도 그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당하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호주 외교부의 리처드 모드 선임 고문은 “특히 작은 나라나 중진국은 워싱턴 또는 베이징을 선택하는 대신 그사이 어딘가 적절한 지점을 찾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파푸아뉴기니 주민들이 16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문을 환영하기 위해 모였다. 중국 정부가 학교를 세워준 데 대한 감사 문구가 중국어와 영어로 적혀 있다. [AP=연합뉴스]

파푸아뉴기니 주민들이 16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문을 환영하기 위해 모였다. 중국 정부가 학교를 세워준 데 대한 감사 문구가 중국어와 영어로 적혀 있다. [AP=연합뉴스]

 
미국과 아시아의 관계를 연구하는 민신 페이 미국 클레어몬트 맥케나 칼리지 교수는 “미국은 일본·호주·대만 같은 동맹국을 신뢰하지만 한국·필리핀과 같이 미국과 방위 협정을 맺은 나라는 위험을 헷지(분산)하기 위한 노력을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시아 국가들이 특히 긴장하는 이유는 미국·중국과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아시아 국가는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해 왔다. 
 
중국에는 경제적 의존도가 높다. 중국과 연결해 글로벌 공급망을 함께 키워왔다. 반면 군사·안보 면에서는 미국과 깊이 연결돼 있다.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영유권 주장과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일부 지도자들은 미·중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될 가능성을 예견했다.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는 지난 15일 동남아국가연합(ASEAN) 정상회의에서 “미·중 갈등이 언젠가는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며 “그 날이 빨리 오지 않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리 총리는 “글로벌 경제가 두 개의 연합(bloc)으로 나뉘면 아시아 국가들은 매우 어려운 입장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달 초엔 “경제적 철의 장막(Economic Iron Curtain)”이란 표현도 나왔다. 행크 폴슨 전 미 재무장관은 “미국과 중국이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 경제적 철의 장막이 세계를 갈라놓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는 APEC 정상회의에서 “오랜 파트너인 미국과 건설적으로 협력하는 동시에 중국 정부와 가깝게 협조함으로써 호주의 이익을 추구하겠다”고 말하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6일 파푸아뉴기니 수도 포트모르즈비에서 열린 '독립대로' 개통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이 도로 건설에 자금을 지원했다. [AP=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6일 파푸아뉴기니 수도 포트모르즈비에서 열린 '독립대로' 개통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이 도로 건설에 자금을 지원했다. [AP=연합뉴스]

 
미·중 사이에 낀 사례는 파푸아뉴기니 수도 포트모르즈비가 보여준다. 지난 16일 포트모르즈비에 왕복 6차로의 ‘독립대로’가 새로 개통했다. 길가에는 중국 오성홍기와 중국어 구호, 시 주석의 사진이 내걸렸다. 
 
중국은 도로 건설에 약 1200만 달러 규모의 자금을 빌려주는 등 파푸아뉴기니에서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시 주석은 개통식 연설에서 “40년 전 중국이 대외 개방을 했을 때 경험한 것처럼 파푸아뉴기니도 젊은, 성장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비슷한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며 “파트너십은 두 나라를 모두 성장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동맹국들이 파푸아뉴기니 전력망 구축 사업을 지원하기로 약속하고 18일 서명식을 열었다.왼쪽부터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 아베 신조 일본 총리, 피터 오닐 파푸아뉴기니 총리, 재신타 아뎀 뉴질랜드 총리,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 [EPA=연합뉴스]

미국과 동맹국들이 파푸아뉴기니 전력망 구축 사업을 지원하기로 약속하고 18일 서명식을 열었다.왼쪽부터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 아베 신조 일본 총리, 피터 오닐 파푸아뉴기니 총리, 재신타 아뎀 뉴질랜드 총리,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 [EPA=연합뉴스]

 
이틀 뒤인 18일 미국과 동맹국들도 파푸아뉴기니에 손을 내밀었다. 미국은 호주·뉴질랜드·일본과 함께 이 나라 전력 공급망 구축 사업을 지원키로 하고 17억 달러 규모의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미국은 또 호주와 공동으로 노후화된 해군기지 재건을 지원한다. 민신 페이 교수는 “앞으로 상당 기간 미국과 중국은 아시아 국가들에 자신의 매력을 어필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오늘의 도움이 내일의 부채로 남게 된다는 점이다.
 
진영이 구축될 조짐도 보인다. 미국·일본·인도·호주 4개국이 모이는 ‘쿼드(Quad)’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2004년 동남아 쓰나미 사태 때 재난 구호를 위해 처음 모였다. 
 
2007년 고위 관료 회의를 열고 합동 해상 훈련으로 발전했지만, 중국 항의에 부딪혔다. 하지만 중국이 남중국해에 인공 구조물을 설치하고 남태평양 섬나라 지부티에 군사 기지를 세우는 등 세력을 확장하자 쿼드가 부활했다. 
 
중국의 경제적·군사적 부상을 견제한다는 목표에 대해 공감대가 있다. 지난 15일 아세안 정상회의 기간 중 싱가포르에서 쿼드 회의가 열렸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오른쪽)은 20일 자원 탐사, 농업, 교육 등 29개 분야에서 공동 사업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중국 지도자가 필리핀을 방문한 것은 13년 만이다. [AP=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오른쪽)은 20일 자원 탐사, 농업, 교육 등 29개 분야에서 공동 사업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중국 지도자가 필리핀을 방문한 것은 13년 만이다. [AP=연합뉴스]

 
중국과 주변국의 관계도 바뀌고 있다. 스인홍 런민대 교수는 “중국도 가능한 한 많은 친구를 만들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이런 목적으로 시 주석은 파푸아뉴기니 일정을 마치고 브루나이와 필리핀으로 날아갔다. 
 
시 주석과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자원 개발, 교육, 농업 등 29개 사업 공동 추진에 합의했다. 중국 최고 지도자의 필리핀 방문은 13년 만이다.
 
아시아 국가들이 선택을 강요받는다는 데 대해 펜스 부통령은 “미국과 중국 간 권력 경쟁은 꼭 적대감을 의미하진 않는다”며 부인했다. 
 
그는 APEC 정상회의 기간 중 시 주석과 두 번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고 했다. 두 번 모두 "간단하고 솔직하게" 대화를 했으며 “트럼프 대통령이 시 주석과의 만남을 기대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했다”고 말했다. 
 
양국 정상은 이달 말(11월 30일~12월 1일) 아르헨티나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회담한다. 무역전쟁 시작 후 처음으로 테이블에 마주 앉는다. 
 
이때 미국에 유리한 협상이 되도록 APEC에서 펜스 부통령이 중국을 강도 높게 압박했다는 설명도 가능하다. APEC에서 미·중이 교착 상태에 빠지면서 G20 정상회의에 더욱 관심이 쏠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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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영 글로벌경제팀장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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