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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南人流] 낯설지만 편하다 … 송중기·박보검의 그 옷

송중기·유아인의 ‘성균관 스캔들’, 박보검의 ‘구르미 그린 달빛’, 주지훈의 ‘간신’, 조인성의 ‘안시성’. 이 쟁쟁한 리스트의 공통점은 모두 패션 디자이너 이진희씨가 만든 옷을 입었다는 점이다. 내로라하는 대한민국 공연 무대의상들이 그의 손길을 거친지는 벌써 20년째다. 그런 그가 지난 10월 자신의 브랜드 ‘하무(HAMU·물의 춤)’를 론칭했다. 그동안 작품 속 캐릭터에 갇혔던 자신의 야성적 기질을 자유롭게 살려보고 싶어서란다. 그런데 이 옷, 참 묘하게 눈길을 끈다.
글=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사진=최승식 기자, 하무
 
패션 디자이너 이진희씨. 그외의 남녀 화보 사진은 '하무(HAMU)' 의상들이다. '하무'는 상고시대부터 조선까지, 역사 속에서 찾아낸 '우리 옷'의 DNA를 토대로 디자인하고 있다. 그래서 낯설지만 편안한 느낌이다.

패션 디자이너 이진희씨. 그외의 남녀 화보 사진은 '하무(HAMU)' 의상들이다. '하무'는 상고시대부터 조선까지, 역사 속에서 찾아낸 '우리 옷'의 DNA를 토대로 디자인하고 있다. 그래서 낯설지만 편안한 느낌이다.

 
 
패션 디자이너 이진희씨의 이력은 여러 겹 바다 속처럼 다채롭다. 예고시절엔 회화를,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선 무대미술을 전공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해온 일은 부전공으로 선택했던 무대의상과 관련 깊다. 20년 동안 그는 줄곧 ‘옷’을 만들어왔다. 1999년 ‘고도를 기다리며(위성신 연출)’를 시작으로 현재 공연 중인 ‘엄마 이야기(한태석 연출, 박정자 주연)’까지 수많은 공연 의상이 그의 손끝에서 창조됐다. 그뿐만이 아니다. 2006년도 방송됐던 ‘썸데이(배두나 주연)’를 시작으로 현재 개봉 중인 영화 ‘안시성’까지 수많은 드라마·영화 의상도 맡았다.  
그 중 대표작을 꼽으라면 드라마 ‘바람의 나라’ ‘성균관 스캔들’ ‘구르미 그린 달빛’, 영화 ‘간신’ 등이다. 모두 ‘한복’에 방점이 찍힌다.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 속 박보검 의상.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 속 박보검 의상.

“복식사를 배울 때 처음에는 바로크, 로코코 등 중세 의상들의 화려한 형태가 매력적이었는데 점점 불필요한 장식을 없앤 원형에 가까운 옷들이 좋아졌어요. 옷이 지나치게 화려해지면 그 옷을 입은 사람이 안 보이더라고요. 옷의 본질을 계속 고민하던 차에 공연 작품에서 처음 한복을 만들게 됐는데 단순한 형태, 기품 있는 색, 우아한 움직임에 감동했죠. 옷의 원형이란 이런 것이구나, 내가 추구해야 할 옷의 본질은 이것이구나.”
단국대 석주선 기념박물관을 찾아가 한복 사진을 찍고, 직접 염색을 하며 조선시대 색들을 복원하기 시작했다. 서양 디자이너들이 색을 찾을 때 팬톤 컬러 칩을 뒤적이듯, 그는 자신만의 컬러 북을 만들고 있다. 한복에 대한 열정은 여러 편의 사극을 맡으면서 점점 더 깊어졌고, 그는 자신만의 생각으로 한복의 재해석을 시도했다. 아마도 그 정점에서 만난 것이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이 아닐까.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속 송중기 의상.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속 송중기 의상.

“송중기씨가 입었던 한복은 처음으로 옷감에 디지털 프린팅(신윤복의 ‘미인도’)을 시도했던 작품이에요. 유아인씨가 입었던 옷은 전위적인 패턴을 써서 현대 복식을 접목했죠.”
누군가는 “젊은 세대에게 한복은 ‘성균관 스캔들’ 전후로 나뉜다”고 했다. 또 누군가는 “한복으로 다양한 색 조합을 공부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됐다”고도 했다. 지난 10월 새로 선보인 브랜드 ‘하무’의 의상도 한복을 재해석한 것이다.  
“상고시대(원시 부족국가시대로부터 삼국이 정립되기 전에 해당하는 시기)부터 조선까지, 역사 속 우리 옷이 가졌던 상징들을 요소별로 가져와 제 방식대로 현대에 맞게 양식화한 옷이에요.”    
남녀 구분 없이 입을 수 있는 넉넉한 품, 물빨래가 가능한 원단, 누빔 소재의 코트, 꽃무늬 비단 점퍼와 셔츠 등등. 특히 그가 좋아하는 상고시대의 복식을 많이 가져왔다. 직선이 주를 이뤄 형태는 간결하지만, 금사를 섞어 쓸 만큼 옷감은 화려한 것이 특징이다. 그 때문에 그의 옷들은 종종 오해를 받는다. 일본 또는 중국옷을 닮았다는 오해다. 영화 ‘안시성’ 논란도 그 중 하나다.  
“‘이게 무슨 한복이냐’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댓글 중에는 ‘고구려 시대 의상을 제대로 만들려면 드라마 바람의 나라부터 제대로 보고 하던지’라는 말도 있었는데 좀 억울하더라고요. 2008년도에 KBS ‘바람의 나라’ 의상을 제가 만들었거든요. 고구려 시대 자료가 국내에 너무 없어서 중국 복식전문가들을 만나 하나하나 공부하면서 만들었죠. ‘안시성’은 ‘스타일리시한 영화’라는 기획의도 때문에 고증 없이, 하지만 공부했던대로 고구려 문화의 특성상 충분히 가능한 의상을 만든 거였어요. 사실 고구려 전후의 ‘상고시대’엔 유목생활을 하던 때라 중국부터 일본까지 여러 부족이 이동하면서 서로 간의 문화가 활발히 교류됐어요. 고구려 의상이 신라, 가야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갔으니 상고시대를 밑거름으로 하는 의상이라면 일본 옷과 비슷한 게 당연해요.”
그가 정말 속상한 건 ‘잃어버린 시간’이다. 조선시대 이전에 존재했던 긴 역사와 그 시대에 존재했던 다양한 문화를 우리는 잘 모르고 있다는 것. ‘한복’이라고 하면 조선시대 후기의 형태만을 기억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조선전기, 고려, 삼국시대, 상고시대까지 거꾸로 짚어보면 ‘우리 옷’은 형태·길이·색감 등 정말 큰 변화를 겪었는데 이를 비교·분석하는 연구가 거의 없다.        
공연 예술 작품 '곡도굿' 의상.

공연 예술 작품 '곡도굿' 의상.

“일자 깃과 무채색이 특징인 일본 전통 옷은 오랫동안 ‘일본화’된 거예요. 그 요소들이 일본 전통 옷의 DNA라고 국가가 정책적으로 철저히 홍보·학습시킨 결과죠. 무채색의 포장용지만 봐도 자연스레 ‘일본스럽다’는 말을 하게 되잖아요. 고구려 시대 우리 옷의 형태와 컬러들을 보면 그와 비슷한 것들이 많은데, 정작 우린 ‘일본 옷과 똑같다’는 말로 디자이너부터 비판할 때가 많아요. 역사와 문화를 보는 스펙트럼을 조금만 넓혀도 우리 문화에 더 큰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 텐데 속상하죠.”  
그는 지금 ‘하무’ 의상을 통해 여러 가지 실험 중이다. 파리 오트 꾸튀르를 사로잡았던 일본의 패션 디자이너 요지 야마모토, 레이 가와쿠보, 이세이 미야케의 옷이 철저히 현대의상이었지만 언제나 ‘일본의 전통복식을 접목했다’는 수식어가 붙었던 것처럼 우리가 잃어버린 시간 속에서 상징적 요소를 하나씩 더듬어 우리 옷의 DNA를 찾는 일이다.    
형태는 단순했지만 금사를 섞어 직조할 만큼 화려했던 상고시대 스타일의 원단을 만들고, 뻣뻣하게 퍼지는 조선 시대 비단에서 풀을 빼고 물 흐르듯 부드럽게 가공해서 요즘 젊은 층이 좋아하는 보머 점퍼를 만들었다. 솜을 넣어 누볐던 어머니의 비단 목도리에 거위 털 충전재를 넣어 스포츠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들이 한창 내놓은 패딩 머플러를 만들기도 했다.  
수중에서 패션·광고 촬영을 하기로 유명한 사진가 제나 할러웨이와 작업했던 사진.

수중에서 패션·광고 촬영을 하기로 유명한 사진가 제나 할러웨이와 작업했던 사진.

“어려서부터 바다를 좋아했어요. 부산이 고향이라 틈만 나면 바다로 달려갔었죠. 그때마다 가슴이 뻥 뚫리는 희열을 느꼈죠. 태풍이 쳐도 늘 고요한 심연 속 물도 좋아해요. 원시적인 에너지와 힘이 느껴져요. 그래서 브랜드 이름을 ‘물의 춤’이라고 했죠. 옷을 만드는 일도 바다 속에서 숨을 쉬듯, 제 호흡대로 물결 따라 춤추듯 갈 생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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