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63)
순간 가슴이 저리며 울컥 눈물이 나왔다. 아무것도 해준 게 없어도 대우받으니 좋다. 2주나 되는 시간을 보내려면 여행 다니면서도 큰돈이 나갈 텐데 하며 걱정하고 있으려니 며느리가 선 답을 해준다.
![엄마표 김치의 대표인 딸 사돈네의 김장대전. 해마다 올해가 마지막이라고 외치시면서도 해마다 온 가족이 모여 김장을 해서 싸 보낸다. 사돈 김치도 챙겨주시는 부처님 같은 사돈댁이다. [사진 송미옥]](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811/21/bdebae5f-74c1-439f-897f-84e1453907e6.jpg)
엄마표 김치의 대표인 딸 사돈네의 김장대전. 해마다 올해가 마지막이라고 외치시면서도 해마다 온 가족이 모여 김장을 해서 싸 보낸다. 사돈 김치도 챙겨주시는 부처님 같은 사돈댁이다. [사진 송미옥]
“어머니, 2주를 어찌 지내실지 걱정하시죠? 그건 염려 안 하셔도 돼요. 여행도 다니지만 중간에 ‘엄마 김치 만들기’ 시간도 있답니다. 호호. 남편이 엄마 김치가 먹고 싶다며 며칠 전에는 눈물까지 글썽거려서요. 오신 김에 엄마표 김장김치도 담가주고 가셔야 해요.”
이건 또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결혼생활 40년이 다 되도록 김치를 담았어도 ‘참 맛있었다’고 자부하는 해는 몇 해가 안 되었다. 닥치는 대로 담가 먹은 김치가 엄마표 김치라고 할 만한 맛이 있었던가?
그러고 보니 벌써 김장철이 다가오고 있다. 그 옛날 어린 나이에 시집을 가니 시댁의 형편은 파산 직전의 상태였다. 그해 겨울 층층시하 열 명이 넘는 대가족의 겨울은 혹독하리만큼 추웠다. 아무리 가난해도 기본 반찬인 김장을 해야 하는 건 당연한 거라 텃밭에 심어놓은 배추를 수확했다. 김장배추도 집안의 가난을 알았는가 어쩌면 그리도 어설픈 모양인지 속이 찬 배추가 거의 없었다.
겨울날 짚으로 동여매도 살까 말까인데 그 추위에 그렇게 시퍼런 잎으로 살아준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속은 차지 않은 요즘 말로 납작 배추였다. 그런데 문제는 양념이었다. 소금이야 기본 재료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김치 맛을 내는 것은 젓갈과 고춧가루 그 외 양념의 조합이 아니던가!
그 당시 나는 김치를 직접 해보지는 않았지만, 친정엄마가 만드는 과정과 그 맛은 기억했다. 통 큰 배추를 반으로 잘라 다시 칼집을 내어 소금물에 푹 절이고 다음 날 씻어 물기를 뺀 후 찹쌀로 쑨 풀죽에 맑은 젓갈과 고춧가루 그리고 온갖 양념과 채소를 썰어 넣고 휘저어 버무리면 그냥 먹어도 맛있었다.
엄마가 김치를 담글 때면 그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손가락으로 양념을 푹푹 찍어 먹다가 혼나기도 했다. 푹 절인 배춧잎에 싼 양념 묻힌 겉절이를 입에 넣어주면 맛있어서 마구 받아먹다가 밤새 물을 들이켜고 화장실을 쫓아다녀도 좋았다.
![딸네 집 냉장고에 빈 통으로 들어있던 김치통을 들고 와서 세척해 보냈다. 빈 통을 들고 가 꽉꽉 채워 오는 기쁨을 부모님이 떠나고 나면 느낄는지.... [사진 송미옥]](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811/21/347a67d2-e700-4223-a4c7-36182b492939.jpg)
딸네 집 냉장고에 빈 통으로 들어있던 김치통을 들고 와서 세척해 보냈다. 빈 통을 들고 가 꽉꽉 채워 오는 기쁨을 부모님이 떠나고 나면 느낄는지.... [사진 송미옥]
폭 삭은 젓갈은 인생의 맛이다. 부산발 완행열차가 삼성역에 도착할 즈음 동네 사람들은 집 앞을 서성거렸다. 며칠에 한 번씩 들르는 싱싱한 생선을 머리에 인 부산 아줌마는 봄이면 생멸치가 든 상자를 리어카에 가득 싣고 마을을 돌며 장사를 하는데 집집이 통 멸치를 사서 젓갈을 담았다.
우리 집 멸치젓갈은 어떠한 레시피도 없이 순전히 시할머니의 손대중으로 만들어졌다. 소금 하나로 바람과 태양을 시간에 버무려 넣고 인고의 세월을 넣어 뚜껑을 닫아두면 속이 다 삭아 곧 스스로 녹아버릴 상태였지만 뚜껑을 열면 그 모습 그대로 자태를 보여주었다. 재료는 소금뿐이지만 삭았을 때 맛을 보면 그 감칠맛은 집집이 다 달라 그 집의 역사가 되고 삶의 양념이 되었다.
시할머니는 쿰쿰하고 진득한 그것을 생채로 걸려 양념에 섞으셨다. 먹음직스럽지도 않은 양념이었다. 그 많은 배추에 허여멀건 한 양념으로 버무리는 그해의 이상한 김장김치는 내 인생에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 시간이었다. 배고픈 가족들은 그렇게 담근 김치 한 조각으로 고봉밥을 먹었다.
빚쟁이에 시달리며 갖은 고초를 겪어야 했던 시할머니와 시어머니의 모습은 초연하고 꿋꿋해서 그렇게라도 고봉밥을 먹는 자식들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셨다. 사각거리고 아삭해 말로 표현이 안 되는, 배추의 맨몸으로만 맛을 내던 그 김치의 맛을 내보려고 오랫동안 통이 안 찬 배추를 찾아 김치를 담가 보기도 했다.
내 아이들은 어떤 맛으로 기억하는 엄마표 김치일까? 그때그때 건성건성 만들었던 김치를 아이들이 엄마표 김치라고 불러주니 조금 더 정성스러운 손맛으로 만들어 줄 걸 하며 반성도 해본다.
이 글을 쓰는데 딸아이가 통배추 한 포기를 달랑달랑 들고 들어온다. “머꼬?” “엄마, 둘째 유치원에서 김장김치 담그는 행사를 하는데 배추 한 포기 절여서 갖고 가는 거래. 내가 김치를 한 번도 안 해봐서 어찌하는지 모르잖아. 엄마가 해줘. 호호” 결혼한 지 10년이 된 딸아이의 말에 등짝을 한 대 치며 한심하게 쳐다보았다.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sesu32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