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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96%가 '내 집'에 사는 나라···그 곳의 '특별한 사정'

1인당 국민소득(GNI)은 1만 달러를 넘지 않는데, 국민의 96%가 ‘자기 소유의 집’에 살고 있는 나라가 있습니다. 한반도 전체와 비슷한 면적에 인구 1900만 명이 살고 있는 동유럽 국가 루마니아입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내 집에 산다니, 말만 들으면 주거 안정이 보장된 천국처럼 느껴지죠. 하지만 이 나라만의 ‘특별한 사정’ 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영국 BBC가 20일(현지시간) 보도했습니다.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 전경. [중앙포토]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 전경. [중앙포토]

유럽연합(EU) 공식 통계기구인 유로스타트(Eurostat)에 따르면, 2016년 기준 루마니아의 자가(自家) 점유 비율은 96%로 EU 28개 회원국 중 1위, 전세계에서도 가장 높았습니다. 국민 대부분이 월세나 전세가 아닌, 자기 가족 소유의 집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인데요. 이는 영국(63.4%), 프랑스(64.9%), 독일(51.7%) 등 EU 주요국들과 비교해도 상당히 높은 수치죠. 한국의 자가점유율은 2016년 기준 56.8%입니다.
 
TV 가격으로 집을 사던 시대 
 
어떻게 이런 상황이 가능했을까요. 루마니아에서 ‘집을 갖는다는 것’의 의미는 다른 나라들과 조금 다르다고 합니다. 배경에는 공산주의의 몰락이 있었죠. 1989년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정권이 막을 내린 후, 루마니아 정부는 전국 주택의 70% 정도를 소유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새 정부가 국가 소유의 부동산을 판매하면서 사람들은 자신이 살고 있던 집을 서둘러 사들이기 시작했죠. 가격은 매우 저렴했습니다. 부쿠레슈티 대학의 도시계획학자 보그단 스디투는 “당시로서는 컬러TV 한 대 가격으로 아파트 한 채를 구입하는 것이 가능했다”고 회상합니다. 차우셰스쿠 정권의 출산 장려 운동으로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들은 역사의 격랑 속에서 손쉽게 자신의 집을 가질 수 있었던 거죠. 
EU 회원국의 자가점유율 [자료 유로스타트]

EU 회원국의 자가점유율 [자료 유로스타트]

크로아티아(90.1%), 슬로바키아(89.5%), 헝가리(86.3%) 등 구 공산권 국가들의 자가점유율이 높은 것도 비슷한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대출로 형성된 루마니아 중산층 
 
국민의 대부분이 집을 갖게 되자 루마니아에서는 ‘집주인 문화’가 생겨납니다. 기본적으로 ‘성인이 되면 자신의 집을 가져야 한다’는 통념이 형성된 거죠. 문제는 오르는 집값과 2008년 찾아온 글로벌 금융위기였습니다. 민간 기업들의 주택 공급은 크게 줄었고, 은행은 대출을 옥죄기 시작합니다. 
 
루마니아 정부는 부동산 침체를 타개하기 위해 2009년 ‘첫 집 프로그램(First Home programme)’을 고안해냅니다. 20~30대들에게 집을 구매할 것을 독려하고, 처음 집을 구매하는 사람의 경우 집값의 5% 정도 현금만 갖고 있어도 나머지는 은행의 대출을 받아 집을 살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이는 루마니아 부동산의 부활을 불러왔지만, 동시에 부작용도 있었죠. 
지난달 10일 부쿠레슈티 시민들이 연금 수령액을 줄이는 루마니아 정부의 새 연금 정책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달 10일 부쿠레슈티 시민들이 연금 수령액을 줄이는 루마니아 정부의 새 연금 정책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다들 내 집에 살다 보니 루마니아에서는 제대로 된 주택 임대 시스템이 자리 잡지 못했습니다. 대출을 받아 집을 사기보다 안정적인 임대 주택을 바라는 층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관련 법이 정비되지 않았구요, 기존 제도는 세입자보다 집 주인을 보호하는 데 치우쳐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마땅한 셋집을 찾지 못해 ‘울며 겨자먹기’로 집을 사야 하는 상황이 된 겁니다.      
 
임신한 아내와 살고 있는 서른 두 살의 라즈반 드미트라스쿠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세를 살던 집 주인이 무작정 2주 안에 집을 빼 달라고 했다. 대안이 없어 대출을 받아 새 아파트를 살 수 밖에 없었다”며 “30년간 대출금을 갚아야 한다”고 고충을 털어놓습니다. 부쿠레슈티 인근에 최근 아파트를 구입한 스테만 파나(31)도 “원하는 만큼 머물 수 있는 임대 물건이 있다면 그곳에 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구조”라고 말합니다. 
 
집 사느라 고칠 돈이 없네
  
집값은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지만 ‘내 집’에 집착하는 루마니아의 문화는 여러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BBC는 전합니다. 세계은행과 루마니아 지역개발 프로그램이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루마니아에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임대시장으로 인해 가족 여러 세대가 한 집에 거주하는 경우나, 독립할 때가 되어도 집을 떠나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이 보고서는 또 루마니아 주택의 3분의 1 이상이 제대로 난방이 작동하지 않거나 지진에 대한 대비가 거의 없는 등 사실상의 파손 상태에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루마니아의 위험 주택 비율은 유럽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구요. 집들이 낙후된 가장 큰 이유는 ‘집을 사는데 너무 많은 돈을 써 집을 수리할 여력이 없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42세의 자가 보유자 크리스티나 아나는 BBC에 이렇게 말합니다. “집 주인이라는 사실이 축복인지 저주인지 모르겠네요.” 2017년 기준 루마니아의 1인당 국민소득(GNI)은 8853달러로 세계은행이 조사한 189개국 가운데 70위였습니다.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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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