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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과학인재 산실 한국과학원, 1971년 마침내 홍릉에 둥지

미국 국제개발처(USAID)에 ‘터만 보고서’가 제출된 지 두 달 뒤인 71년 2월 16일 한국과학원(KAIS)이 마침내 고고의 함성을 올렸다. KAIS는 7개 학과, 9개 전공을 갖추고 서울 홍릉에 문을 열었다. 설립 목적을 ‘산업발전을 위해 필요로 하는 과학기술 분야에 관한 심오한 이론과 실제적인 응용력을 갖춘 자를 양성하는 것’으로 명시했다. 달리 말하면 ‘산업·경제 발전을 이끌 과학기술 인재 양성’이다. 스탠퍼드대 부총장과 공대 학장을 지내면서 산업에 활용되는 연구·개발을 중시했던 ‘실리콘 밸리의 아버지’ 프레데릭 터만 단장의 철학이 반영됐다.  

 이상수(1925~2010년) 초대 한국과학원(KAIS) 원장. KAIS는 81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통합해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됐는데 89~91년 카이스트 원장을 맡아 대덕 캠퍼스 이전을 지휘했다. [중앙포토]

이상수(1925~2010년) 초대 한국과학원(KAIS) 원장. KAIS는 81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통합해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됐는데 89~91년 카이스트 원장을 맡아 대덕 캠퍼스 이전을 지휘했다. [중앙포토]

초대 KAIS 원장으로 물리학자인 이상수(1925~2010년) 박사가, 초대 부원장에는 설립 구상 초기부터 관여한 내가 각각 임명됐다. 이 원장은 서울대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광학 물리학자로 한국 레이저 과학을 개척했다. 이화여대 교수와 원자력 연구소장, 원자력 청장으로 일하다 KAIS 원장을 맡아 과학기술 행정가로 활약했다. 이듬해 3월까지 원장으로 일하며 초창기 교수진 유치에 힘을 기울였다. 그 뒤 KAIS 물리학과 교수로 활발한 연구 활동을 했으며 89~91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원장을 맡아 캠퍼스의 대덕 이전을 지휘했다. KAIS는 연구 기능만 있던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81년 1월 통합해 KAIST로 개편돼 현재에 이른다. 다만 KIST는 89년 다시 독립했다.  
1971년 9월 카이스트 부원장을 맡아 귀국할 무렵의 정근모 박사 가족. [사진 정근모 박사]

1971년 9월 카이스트 부원장을 맡아 귀국할 무렵의 정근모 박사 가족. [사진 정근모 박사]

나는 뉴욕 공대에 KAIS 초기 설립 과정을 도울 임시 주미 연락 조정실을 설치하고 책임을 맡았다. 그곳에서 71년 3~9월 KAIS 초창기 교수진 구성과 교과 과정 수립, 연구실 배치를 기획했다. KAIS 산파 역할은 힘들었지만, 보람으로 가득했다.  
이 과정에서 과거 모셨던 김법린(1899~1964년) 초대 원자력원장이 미국 유학을 떠나는 내게 했던 말씀이 내내 떠올랐다. “유학하는 동안 여러 군데에 다니며 미국이 어떻게 과학기술을 일으켜 부강한 나라를 만들었는지를 알아내 대한민국 국민이 잘사는 데 기여하라”는 당부다. “이를 위해 한 알의 밀알이 되라”던 그분의 말씀은 미국 생활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독립운동가 출신으로 3대 문교부 장관을 지냈던 김 원장은 63년 동국대 총장을 맡았는데 이듬해 과로로 세상을 떠났다. KAIS 창립을 보지 못하고 가신 게 못내 아쉽다.  
나는 고국에서 일하며 한국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작은 밀알이 되기로 결심했다. 임시 주미 연락 조정실 운영을 마친 71년 9월 가족과 함께 귀국 비행기에 올랐다. KAIS 부원장 겸 교수로 부임하기 위해서였다. 뉴욕 공대 교수직은 휴직했고 내가 받았던 미국 정부 연구비는 다른 교수들이 맡아 연구를 계속했다. 제자들과는 계속 인연을 유지하며 전문인으로서 협력했다. 격동하는 한국 상황을 헤쳐 나가야 할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황수연 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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