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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변별의 늪에서 빠져나오라

강홍준 중앙SUNDAY 사회에디터

강홍준 중앙SUNDAY 사회에디터

국어 교사도 못 푸는, 영국인도 어려워하는, 수학자도 ‘으악’하고 경악하는…. 지난 15일 이후 매일 나오는 수능 기사는 ‘-알못(알지 못하면서)’ 시리즈 같다. 국어 31번 문항(뉴턴의 만유인력 관련 과학 지문). 말 그대로 악명 높았다. 그런데 정도의 차이일 뿐 이전부터 이런 문제가 계속 나왔다는 거 몰랐나. 상위권과 하위권을 변별하는 과목별 한두 문제 말이다. 이걸 맞히기 위해 사교육에 돈을 그리 퍼붓는다. 그런데도 몰랐다면 건망증 환자이거나 아니면 무지를 가장한 거짓말쟁이다.
 
우리는 1968년 경기중 입시에서 벌어진 ‘무즙’ 파동 시절과 비교해 볼 때, 최소한 입시에 관한 한 달라지지 않았다. 그때에 비해 학생 수가 많이 줄었고, 대학 수는 크게 늘어났으나 그때나 지금이나 선호 학교를 들어가려는 경쟁의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여기서 경쟁이란 말도 좀 더 분명하게 정의하자. 경쟁은 ‘문 닫고 들어가는’ 경쟁을 말한다. 1등부터 한 명씩 차례대로 들어가, 문을 쾅 하고 닫는 경쟁 말이다. 그러니 수능 같은 선발 도구에 ‘4차 산업혁명에 적합한 인재 양성’이란 말을 붙이는 게 어색하다. 수능은 처음 도입된 1994학년도부터 지금까지 줄 세우기를 위한 변별도구였다.
 
줄 세우기라는 수능의 기능이 비교육적이라고 해서, 2008학년도엔 점수를 없애고 등급도 도입했다. 점수를 없애고 등급만 썼더니 문가에 사람들이 너무 몰려 문을 닫을 수 없었다. 고교 교육을 정상화하고, 사교육을 줄이며, 학생의 역량을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고 학종(학생부종합전형)을 도입했더니 비정상적 내신 경쟁이 벌어졌다. 숙명여고 전 교무부장은 자기 딸의 성적 급상승 의혹을 변호하기 위해 “수학 클리닉 선생님을 소개받아 문제풀이법·정리법을 교정해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라는 해명 글을 남겼다. 전교 1등이 되기 위해, 남을 내 뒤에 줄 세우기 위해서 갖은 노력을 다했다는 그의 해명은 공교육 교사들에게 ‘의문의 일패’를 가했지만 경쟁의 본질을 명쾌하게 까발렸다.
 
그러니 문 닫고 들어가는 기능을 무시한 수능 관련 논의는 사실상 무의미하며, 논의가 계속될수록 아까운 힘만 소비한다. 국어 31번 문제 때문에 절대평가 얘기를 꺼내는 사람도 있다. 그럼 1등급이 5% 미만으로 추정되는 올 수능 영어는 뭔가. 절대평가가 난이도 조절 실패와 만나면 또 다른 혼란을 초래한다. 우리도 외국처럼 수능을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 같은 논술로 바꾸자는 이야기도 나온다. 취지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실현은 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학종의 공정성이 의심받고 있는 상황에서 유일하게 남은 잣대인 수능을 바꾸자는데 누가 동의를 할까. 국가교육위원회가 얼마 전 수능 특위와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해 입시제도를 논의했으나 남은 건 반목과 불신이었다.
 
그렇다고 선호 대학을 없앨 수는 없다. 선호는 욕망이다. SKY를 없애면 그 자리는 다른 대학이 차지한다. 서울 강남 부동산 가격을 잡겠다고 강남을 없앨 수 없듯, 욕망을 애써 무시한 정책은 실패했다. 차라리 SKY에 자녀를 보냈더니 기분은 좋긴 한데 헛돈 쓴 거 같다는 생각을 갖게 해주는 게 낫다. 물론 당장은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조짐은 보인다.
 
SKY 나와 취업이 안 된 자녀를 쳐다보는 부모들의 속을 들여다봤나. 쓴 돈 대비 산출이 많이 낮아지면서 SKY 나와 대기업 가봐야 답 없다는 말을 요즘 40·50대가 한다. 애들 대학 보내는데 쓴 돈을 그냥 목돈으로 줄 걸 그랬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현상은 입시제도를 손봐서 그리된 게 아니다. 교육부가 어떻게 입시를 바꿀지 고민하는 시간에 마이스터고교 같은 대안적인 길을 계속 열어줬으면 좋겠다. 다른 길을 가도, 예를 들어 고교만 졸업해도 먹고 사는 데 지장 없게 여러 길을 터주는 데 고민을 집중했으면 한다.
 
실제 존재하는 경쟁은 공정하게 관리해주면 된다. 수능 제도에 손대는 것은 변별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짓이다. 더 깊숙하게 가라앉는다.
 
강홍준 중앙SUNDAY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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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