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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기의 시시각각] 코피전략 막은 빅터차, '삭간몰 보고서' 썼다고 욕한 한국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올 1월 27일.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는 백악관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당신을 주한 대사로 임명하지 못하게 됐다.” 바로 그날 밤 워싱턴의 한 사교 클럽. 맥매스터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은 빅터 차의 상사인 햄리 CSIS 소장과 우연히 마주쳤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이의 증언에 따르면 맥매스터는 빅터 차에 대한 ‘엄청난’ 분노를 햄리 소장에게 쏟아냈다고 한다. 경위는 이랬다.
 
북한을 상대로 한 대북 무력 강경책 ‘코피 전략(제한적 선제타격)’은 맥매스터의 작품이었다. 밀어붙이려 했다. 그런데 빅터 차는 마지막까지 온건론을 폈다. “그건 멍청한(dumb) 아이디어다.” 결과론이지만 빅터 차의 ‘저항’이 코피 전략을 무력화했다. 지금의 ‘제재와 협상’ 전략으로 전환시킨 원동력이 됐다. 우리로선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빅터 차가 요즘 한국에선 몹쓸 강경론자가 돼 버렸다. 지난주 CSIS가 내놓은 ‘미신고 삭간몰 미사일 기지’ 보고서 때문이다. 뉴욕타임스(NYT)가 “북한이 거대한 속임수를 쓰고 있다”고 확대 인용하며 사태가 커졌다. 문제는 미국에선 오직 NYT를 비난하는데 한국에선 CSIS, 빅터 차의 ‘숨은 의도’를 의심한다는 점이다. 청와대는 ‘미신고’란 표현을 문제 삼았고, 박지원 의원은 ‘네오콘(강경파)’에 ‘가짜뉴스 대변인’이라고 비난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빅터 차가) 전쟁 나도 좋다, 때려 부숴라, 이런 식으로 말한다. 정치를 하고 있다”고 했다. 미 군산복합체의 먹이사슬이라고도 했다. 일부 언론도 이에 동조한다.
 
과연 그럴까. 빅터 차나 CSIS를 대변할 생각 따위는 없다. 하지만 사실관계는 확실히 하자. 이번 보고서는 북·미 협상에 딴지를 걸려고 내놓은 게 아니다. 올 초 시작한 ‘분단 너머’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공기부양정 기지(1월 25일), 영변 핵시설(4월 23일) 위성사진 분석에 이은 시리즈물이다. 또 보고서를 잘 보면 삭간몰 기지의 존재가 1990년대 초부터 미 국방부와 정보기관에 의해 알려져 왔음을 분명하게 인정하고 있다(각주 2). 그걸 대중에 보다 자세히 최초로 알린 ‘연구’다. 신고·미신고가 중요한 게 아니다. 학자적 욕심에 가장 선명하게 찍힌 3월 위성사진을 보고서에 실었을 뿐 봄·여름·가을·겨울 모두 위성 분석을 했음도 나와 있다(‘구조’편). 게다가 저자 스스로 “NYT의 ‘속임수’ 제목은 적절치 않다”고 한다.
 
대북제재 완화를 외치는 현 정권 세력의 생각과, 압박·협상을 병행해야 한다는 빅터 차의 생각은 분명 다르다. 마음에 안 들 수 있다. 실제 그의 원칙론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보다 오른쪽에 있다고, 뚜렷한 근거 없이 ‘군산복합체의 끄나풀’ 운운하고 ‘섞어찌개집 주인’이라고 몰아세워서 되겠는가. 상대보다 왼쪽에 있다는 이유로 ‘좌빨’이라고 공격당하는 것과 다를 게 뭔가. 무엇보다 빅터 차가 군산복합체 대리인이라면 도대체 왜 선제타격에 반대하고 협상을 촉구해 대사 내정까지 취소당했을까. 우리 중에 누가 그 의문에 답할 수 있을까.
 
올 초 빅터 차가 낙마했을 때도 우리 외교부는 “개인 신상에 관한 문제”라며 빅터 차의 개인사가 낙마 이유인 것처럼 말을 돌렸다. 그냥 “미 정부가 결정할 문제”라고 했으면 될 일이었다. 사실 자체를 호도하고 화만 키웠다.  
 
이번도 마찬가지다. 실체는 파악하지 않고 흥분만 했다. 적까지 우군으로 만들어야 할 중차대한 판국에 우군까지 적으로 만들고 있으니 참으로 병법으로 따지면 0점짜리 외교를 하고 있다.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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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