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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독립유공자 가네코

권혁주 논설위원

권혁주 논설위원

‘그때 그저 눈에 비쳤을 뿐인 사건들이 지금은 크나큰 반항의 뿌리가 되어 제 가슴속에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조선 생활 동안 보고 들은바 저는 조선인들의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모든 반항운동에 동정심을 갖게 됐습니다.’
 
1923년 여름, 당시 스무 살이던 일본 여성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는 도쿄에서 옛 일본인 스승에게 이런 편지를 띄웠다. 10대 시절 충북 청주시에서 지내며 보고 느낀 것을 담은 편지였다. 그는 일본인 지주와 고리대금업자들이 한국인을 학대하고 수탈하는 장면을 수도 없이 목격했고, 3·1 운동 또한 직접 목도했다.
 
일본에 돌아온 가네코는 일본 경찰이 ‘요시찰 갑(甲)호’로 분류한 박열 의사와 동거하며 무정부주의를 표방한 잡지를 발간했다. 인삼을 팔아 잡지 발간에 보태기도 했다. 인삼 행상으로서 사용한 이름은 ‘조선인삼상 박문자’였다. 박 의사의 성에 자신의 이름을 붙인 것이었다.
 
가네코와 박 의사는 1923년 9월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왕세자 결혼식 폭탄 테러를 모의했다는 ‘대역죄’로 기소됐다. 법정에서 가네코는 “조선의 독립운동을 생각할 때 남의 일이라고는 여길 수 없을 정도의 감격이 가슴에 용솟음쳤다”고 증언했다. 26년 3월 23일 박 의사와 옥중 결혼하고 이틀 뒤 사형선고를 받았다. 곧바로 일왕이 무기징역으로 감형했으나 넉 달 뒤 감옥에서 목을 맸다. 박 의사의 고향인 경북 문경시에 있는 가네코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새겨져 있다. ‘(재판에서) 추호의 동요 없이 천황유해론, 약소민족 해방, 한국 독립의 정당성, 인간의 자유를 시종여일하게 주장했다. 사형선고를 받자 여사는 만세를 외쳤다.’
 
가네코는 지난 주말 ‘순국선열의 날’ 기념식에서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아 독립유공자가 됐다. 89년에 남편 박 의사가 독립유공자가 되고 29년 만이다. 일본인으로는 독립 열사들을 많이 변호했던 후세 다쓰지(布施辰治·2004년 독립유공자 포상)에 이어 두 번째다.
 
국가보훈처의 가네코 공적 조서에는 무정부주의 잡지를 발간한 것과 대역죄로 기소돼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옥중 순국한 내용 정도가 간략히 들어 있다. 가네코는 오히려 일본에서 많이 연구했다. 역사학자 야마다 쇼지(山田昭次) 릿쿄(立敎)대 교수는 저서 『가네코 후미코』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후미코는 조선인에 대한 사죄도, 전후 보상도 깔끔하게 처리하지 못하는 오늘날의 일본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문득 야마다 교수와 똑같은 궁금증이 떠오른다.
 
권혁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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