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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보공단 “상담은 큰병원 가라” … 공공기관이 존엄사 걸림돌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사전의향서실천모임 사무실에서 노부부가 존엄사를 위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쓰고 있다. 중앙의료원이 실천모임의 퇴거를 요청해 존엄사 상담 업무가 이달 말로 끝나게 됐다.[중앙포토]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사전의향서실천모임 사무실에서 노부부가 존엄사를 위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쓰고 있다. 중앙의료원이 실천모임의 퇴거를 요청해 존엄사 상담 업무가 이달 말로 끝나게 됐다.[중앙포토]

19일 오전 서울의 한 국민건강보험공단 지사. 종합민원실 직원에게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상담을 받고 싶다”고 묻고 안내를 받았다. 따라간 곳은 보험급여부 소속 담당 직원의 사무실 책상 옆. 상담실이 없어 직원 옆에 보조의자에 앉았다.  
 
기자가 “부모님 대신 상담받으러 왔다”고 하자 직원은 팸플릿의 사전의료의향서 등록기관 목록을 보여줬다. 그는 대형병원 몇 곳에 동그라미를 친 뒤 “부모님을 여기로 보내라”고 말했다. 기자가 “이곳에서도 등록이 가능하지 않느냐”고 묻자 직원은 “여기로 힘든 발걸음 하지 말고 가까운 병원에 가는 게 낫다”고 말했다.
 
지난 2월 연명의료 중단(일명 존엄사) 제도가 시행돼 조금씩 정착하고 있지만 확산을 막는 장애물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존엄사 확산을 위해 본인이 생전에 분명하게 ‘연명의료를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시하는 게 중요하고, 핵심 장치가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이하 사전의향서)인데 활용 속도가 생각보다 더디다. 건보공단의 비전문성, 국립중앙의료원의 비협조 등이 대표적 장애물이다. 존엄사는 임종 단계에서 인공호흡기·심폐소생술·혈액투석·항암제투여 등 네 가지 연명의료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사전의향서 작성자는 2~4월 2만248명에서 이달 3일 기준으로 7만3150명으로 늘었다. 하지만 아직 더딘 편이다. 2월 존엄사를 합법화하기 전에 민간에서 자율적으로 약 15만 명이 작성했는데, 법 시행 이후 작성자가 절반에도 못 미친다.
 
사전의향서를 작성하려면 건보공단을 비롯해 전국 94개 등록기관을 찾아가야 한다. 의료기관 72곳, 비영리단체 21곳이 있지만 접근성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그래서 2월 부랴부랴 건보공단을 참여시켰고, 공단 지사(지역본부·출장소 포함) 197곳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됐다. 하지만 건보공단 본연의 업무와 다소 이질적인데다 전문성이 떨어져 제대로 상담이 이뤄지지 않는 데가 적지 않다.
 
19일 기자가 찾은 서울의 또 다른 지사에선 사전의료의향서 작성에 대해 묻자 “임종 상황에 가능한 것이고, 가족 2명의 동의가 필수”라고 말했다. 연명의료계획서에 대한 엉뚱한 설명을 늘어놨다. 연명의료계획서는 의사가 주도해 작성하는 다른 서식이다. 20일 경북의 한 지사는 “담당직원이 교육 가느라 자리를 비웠다. 콜센터에 알아봐라”고 했다.  
 
박경미 건보공단 연명의료팀장은 “사전의향서 작성 전담 인력이 없어 보험급여 등의 다른 업무를 같이 해야하기 때문에 충분히 상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박 팀장은 “존엄사 교육도 서울의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에 가서 받는 점도 애로”라고 덧붙였다.
 
민간단체 중에는 사전의향서실천모임(이하 사실모)가 8년 전부터 사전의향서 작성을 주도해왔다. 사실모는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한 켠에서 이 업무를 한다. 하지만 이달 말 사무실을 비워야 한다. 중앙의료원이 더 이상 업무협약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홍양희 사실모 대표는 “중앙의료원 측이 독자적 상담 업무를 한다고 해서 그 때까지만이라도 계속할 수 있게 해달라고 사정했지만 거절당했다. 중앙의료원이 상담 업무를 하지 않을 수도 있어 어르신들이 상당 기간 헛걸음할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국립중앙의료원 관계자는 “우리가 독자적으로 사전의향서 등록기관 역할을 할지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일학 연세대 의대 의료법윤리학과 교수는 “건강보험공단 직원은 고유 업무를 하면서 사전의향서 상담·등록을 겸해야 해서 상담의 질이 떨어진다. 전담인력을 두거나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사전의향서 작성 업무에 정부가 재정을 지원하지 않아 일부 대형병원만 참여한다. 공공 의료기관을 대표하는 국립중앙의료원이 직접 해도 모자랄 판에 민간단체를 돕지 않는 것은 옳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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