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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호의 논설위원이 간다] 일본 대학 서랍서 잠자는 북한 문화재 … 반환 논란 곧 터진다

[논설위원이 간다 - 남정호의 '세계화 2.0'] 북·일 간 시한폭탄, 일본 내 북한 문화재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경내에 세워져 있는 18~19세기 조선시대 문관상(文官像). 사모(紗帽)를 쓰고 홀(笏)을 손에 든, 영락없는 조선시대 관리다. 남정호 기자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경내에 세워져 있는 18~19세기 조선시대 문관상(文官像). 사모(紗帽)를 쓰고 홀(笏)을 손에 든, 영락없는 조선시대 관리다. 남정호 기자

북핵 문제 협상이 급물살을 타면서 북한과 일본 간에 국교가 정식으로 맺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북·미 수교가 이뤄지면 이를 전후해 양측이 전격적으로 외교관계를 정상화할 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1972년 리처드 미국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는 등 미·중 수교 분위기가 무르익자 일본이 선수를 친 적이 있는 까닭이다.
 북·일 수교가 이뤄지면 일본은 1965년 한일 협정의 전례에 따라 거액의 배상금을 내놔야 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아베 정권은 북한이 보낸 값비싼 청구서를 받게 돼 있다. 북한 지역에서 출토된 일본 내 문화재를 돌려달라는 요구다. 북한은 김정은 시대 때부터 줄기차게 문화재 반환 요구를 해왔다. 그렇다면 일본에는 북한 출토 문화재가 얼마나 있으며 어떻게 처리될까. 그간의 역사를 더듬으며 현 상황을 짚어봤다.
 
일본 도쿄 우에노공원 북쪽에 자리잡고 있는 도쿄국립박물관 본관. 출처: 위키피디아

일본 도쿄 우에노공원 북쪽에 자리잡고 있는 도쿄국립박물관 본관. 출처: 위키피디아

 
 일본 도쿄의 고즈넉한 우에노 공원. 공원 북쪽에는 일본 문화의 정수를 모아놓은 도쿄국립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다. 박물관 정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가니 널따란 잔디밭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낯익은 석상 2개가 눈에 띈다. 사모(紗帽)를 쓰고 홀(笏)을 손에 든, 영락없는 조선 시대 관리다. 아니나 다를까, 설명을 보니 평양에서 가져온 18~19세기 조선 시대 문관상(文官像)이다. 도쿄국립박물관에서 생각도 못 한 조선 시대의 석상을 대하니 반가우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이 여간 복잡하지 않다.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경내에 세워진 18~19세기 조선시대 문관상이 평양에서 가져온 것임을 밝히는 안내문. 남정호 기자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경내에 세워진 18~19세기 조선시대 문관상이 평양에서 가져온 것임을 밝히는 안내문. 남정호 기자

 1872년 세워진 뒤 국보 89점과 중요문화재 643점을 포함, 11만7000여건의 소장품을 자랑하는 이 박물관은 자타가 공인하는 일본 최고의 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은 5개의 건물로 이뤄져 있는데 이중 동양관은 한반도와 중국에서 가져온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 소장품 중에는 일본강점기 조선에서 전기회사를 하며 큰돈을 번 오구라 타케노스케(小倉武之助)가 수집한 1100여점의 '오구라 컬렉션'도 포함돼 있다.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에 전시된 1~3세기 녹유박산향로(綠釉博山香爐). 오구라 컬렉션에 포함된 낙랑시대 유물이다. 남정호 기자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에 전시된 1~3세기 녹유박산향로(綠釉博山香爐). 오구라 컬렉션에 포함된 낙랑시대 유물이다. 남정호 기자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에 전시된 1~3세기 낙랑시대 녹유(綠釉) 작은 단지. 평양 부근에서 출토된 것으로 오쿠라 컬렉션 중 하나다. 남정호 기자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에 전시된 1~3세기 낙랑시대 녹유(綠釉) 작은 단지. 평양 부근에서 출토된 것으로 오쿠라 컬렉션 중 하나다. 남정호 기자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에 전시된 1~3세기 낙랑시대 녹유(綠釉) 물고기 무늬 대야. 평양 부근에서 출토됐다. 남정호 기자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에 전시된 1~3세기 낙랑시대 녹유(綠釉) 물고기 무늬 대야. 평양 부근에서 출토됐다. 남정호 기자

 동양관 내에 전시된 오구라 컬렉션을 둘러보니 고려 시대 청자, 동물 모양 토기 등 한눈에 봐도 국보급의 한국 문화재가 숱했다. 이 중에는 녹유박산향로(綠釉博山香爐), 녹유(綠釉) 작은 단지 등 지금의 북한 땅에서 가져온 문화재도 적잖았다. 오구라 컬렉션은 아니지만, 평양 오촌리에서 출토된 2세기 동검(銅劍)과 낙랑시대의 물고기 무늬 대야 역시 북녘땅에서 출토된 유물이다. 
 1965년 박정희 정권이 일본 측과 한일협정을 맺었을 당시 한국 측은 일본 내 문화재의 반환을 정식으로 요청했었다. 그러나 일본 측에서는 대부분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거나 개인소장품이므로 돌려줄 수 없다고 거절했었다. 당시 오구라 컬렉션은 박물관에 기증되기 전이어서 사유물에 속했다. 
 개인 소장품뿐 아니다. 북한 지역에서 출토된 문화재도 반환 대상에서 제외됐었다. 향후 북·일 국교 수립 때 북쪽에 반환해야 할 품목이라는 게 명복 상의 이유였다. 당시 일본 정부는 남북한을 구분해 협정을 맺는다는 게 원칙이었던 것이다. 한·일 간에 국교 정상화를 위한 대화가 진행되자 북한은 "조일 간에 해결되지 않은 여러 문제를 한일 회담에서 토론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격렬히 반발했지만 수교를 막을 수는 없었다.  
어쨌든 65년 이후 일본 내 북한 지역 문화재를 놓고 북·일 간의 공식적인 접촉은 없었지만, 북한의 관심은 지대했던 모양이다. 2002년 평양에서 열린 역사적인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북한 측은 일본 내 문화재 문제를 꺼낸 거로 돼 있다. 역사적인 북·일 공동선언에도 "(쌍방은) 문화재 문제에 대해 국교 정상화 회담에서 성실히 협의하기로 했다"고 명시된 것도 북한의 관심 덕이 컸다. 수교 때 북한 출토 문화재를 반드시 돌려받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던 셈이다. 이런 터라 북·일 국교 정상화 논의가 본격화되면 일본 내 북한 지역 출토 문화재의 반환문제가 관심사로 떠오를 게 분명해 보인다.
2002년 9월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마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右)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공동선언에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 [평양 AP=연합]

2002년 9월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마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右)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공동선언에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 [평양 AP=연합]

 하지만 북한의 관심이 많더라도 지금 같아서는 돌려받지 못할 문화재가 많을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게 문제다. 일본 쪽에서 "구입 등 정상적 경로로 건너와 반환할 수 없다"고 주장할 게 뻔하다. 하지만 합법적이라고 우길 수 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일본의 공식 문서 등을 통해 일본 강점기에 북한 지역 내 고분을 발굴한 뒤 그곳에서 출토된 부장품 등 유물을 가져갔다는 사실이 객관적으로 입증되는 사례가 숱하기 때문이다. 또 불탑의 경우 멀쩡한 사찰이 경내에 모셔뒀던 걸 팔 리는 없기에 도난당했거나 빼앗겼을 게 거의 확실하다.  
1915년 일본 도쿄대학 연구팀이 조사할 당시의 평양 대동강변 고분 모습.  출처: 국외소재문화재재단

1915년 일본 도쿄대학 연구팀이 조사할 당시의 평양 대동강변 고분 모습. 출처: 국외소재문화재재단

대표적인 경우가 1909년부터 한반도 전역을 훑었던 도쿄대학 조사팀의 낙랑 고분 발굴 사례다. 당시 이 대학 건축학과 세키노 다다시(關野貞) 교수 일행은 평양 대동강 변에 흩어져 있던 낙랑시대 고분들을 발굴해 1912년 관련 유물들을 도쿄대학에서 전시했다. 1912년 5월 일본『고고학잡지』에 게재된 전시 관련 논문에 따르면 "(전시품들은) 세키노 조교수 일행이 조선에서 세 차례에 걸쳐 가지고 온 것으로 재료가 풍부해 일일이 셀 수 없다"고 돼 있다. 
도쿄대학에 반출된 낙랑시대 유물들. 출처: 국외소재문화재재단

도쿄대학에 반출된 낙랑시대 유물들. 출처: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특히 낙랑과 관련해서는 "대동강 상오리 석암동(능동)에서 발견된 한경(漢鏡), 고려검, 오수전(五銖錢), 가마, 시루, 무덤에 사용된 전돌 등은.... 이 방면의 연구에 훌륭한 자료다"라고 돼 있다. 구체적인 출토품이 나열된 셈이다. 
평양 대동강 부근 고분에서 발견된 유물들. 출처: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평양 대동강 부근 고분에서 발견된 유물들. 출처: 국외소재문화재재단

고구려 유물에 대한 언급도 있다. 이 논문에는 "고구려 안학궁지(安鶴宮址)에서 발견된 기와는 그 부근 고분 사진과 함께 학문적으로 흥미 있는 자료"라는 설명도 나와 있다.    
 구체적 기록은 없지만, 정황상 훔쳐왔거나 빼앗아왔을 게 분명한 대표적인 유물이 도쿄 오쿠라 호텔 뒷마당에 세워진 율리사지 5층 석탑이다. 평양 율리사지에 있었던 이 탑은 대표적인 고려 시대 다층석탑으로 일본 강점기에 한국 문화재를 모았던 사업가 오쿠라 기하치로(大倉喜八郞)가 가져간 유물 중 하나다. 이 탑은 평양에서 온 터라 북한에서도 큰 관심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일본과 정식 국교를 맺지 않아 남쪽 불교계 등을 통해 반환 운동을 벌여 왔다. 따라서 북·일이 수교하면 가장 먼저 반환 요구 대상이 될 후보 중 하나다.   
북한으로의 반환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평양 율리사지 석탑의 과거 및 최근 모습. 왼쪽은 1918년 평남 율리사에 있던 모습이며 오른쪽은 도쿄 오쿠라호텔 뒷뜰에 세워져 있는 최근 사진이다. 출처: 국외소재문화재재단

북한으로의 반환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평양 율리사지 석탑의 과거 및 최근 모습. 왼쪽은 1918년 평남 율리사에 있던 모습이며 오른쪽은 도쿄 오쿠라호텔 뒷뜰에 세워져 있는 최근 사진이다. 출처: 국외소재문화재재단

 그렇다면 북녘땅에서 일본으로 가져온 문화재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율리사지 석탑처럼 분명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 소재가 확실하지 않다. 한 전문가는 "수많은 유물이 일본 강점기에 발굴 사업에 참여했던 도쿄대 건축학과 사무실과 교토대 박물관의 서랍 등 속에서 잠자고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때문에 "북한 지역에서 출토된 문화재가 모두 몇 점이고, 현재 어디에 보관돼 있는지 등은 정확히 파악되지 않는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와 관련, 류미나 국민대 일본학연구소 전임연구원은 "북·일 간 교섭으로 북한 출토 문화재에 대한 문제가 나오더라도 일본 대학들은 ‘자율권’을 내세워 소장 유물들을 반환하지 않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   
 유출된 문화재의 반환을 바란다면, 뭐가 어디에 있는지 등을 규명하는 일은 물론 요구하는 쪽의 몫이다. 내주는 쪽이 선선히 대상 품목의 수량과 위치 등을 밝힐 거로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일본 소재 북한 출토 문화재 역시 마찬가지다. 북한 쪽에서 구체적인 리스트를 내놔야 그나마 몇 점이라도 받아낼 가능성이 큰 것이다. 
 이와 관련, 한국 정부는 북한 출토 문화재라도 가능한 원위치에 돌려놔야 한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일본에 있다 서울을 거쳐 2006년 북한으로 반환된 북관대첩비(北關大捷碑)가 살아있는 사례다. 이 비석은 임진왜란 당시 함경북도 북평사였던 정문부 장군이 의병을 일으켜 왜군을 격퇴한 사건을 기리기 위해 숙종 때 세운 것이다. 원래 함경북도 길주군 임명면에 있었으나 1905년 러·일 전쟁 때 이곳을 지나던 일본군에게 발견돼 도쿄의 야스쿠니 신사로 옮겨져 보관돼 왔었다.
이처럼 기구한 북관대첩비의 운명은 결국 1978년부터 시작된 한국 정부의 반환 운동으로 바뀌게 된다. 집요한 한국 측 반환 요구가 계속되자 일본 정부는 함경북도에서 가져온 비석인 만큼 남북한 간의 합의가 있으면 돌려주겠다고 밝힌다. 이에 남북한은 비석을 반환받으면 최종적으로 북쪽에 돌려주기로 뜻을 모은다. 일본으로서는 돌려주지 않을 도리가 없게 된 셈이다. 결국 북관대첩비는 일본 땅으로 건너간 지 100년만인 2005년 서울로 돌아왔으며 그다음 해인 2006년 개성을 거쳐 북한으로 반환됐다. 남북 협력을 통해 일본 소재 북한 출토 문화재를 무사히 돌려받는 성공 사례가 생긴 것이다. 
 100년만에 북관대첩비가 돌아오자 이를 기념하기 위한 행사가 2005년 11월 경복궁 고궁박물관 앞에서 열렸다. 오종택 기자

100년만에 북관대첩비가 돌아오자 이를 기념하기 위한 행사가 2005년 11월 경복궁 고궁박물관 앞에서 열렸다. 오종택 기자

 이런 경험도 있는 만큼 북·일 수교 협상이 본격화되기 전에 한국 정부나 민간단체에서 북한 출토 문화재의 현황과 소재 등을 파악하는 걸 돕는 게 바람직하다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민간 차원에서는 이미 평양 율리사지 석탑의 반환을 위해 남북 간 협력이 오래전부터 진행돼 왔다. 
 또 일본인 중에도 한국에서 빼앗아 온 문화재는 돌려줘야 한다는 반환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한 이들도 적잖다. 이런 이들로 이뤄진 대표적인 단체가 '한국·조선 문화재 반환 문제 연락회의'다. 이 단체는 일본 궁내청에 보관돼 오던 조선왕실의궤(朝鮮王室儀軌)가 2011년 돌아오는 데 큰 힘이 됐다.
 여하튼 지금 분위기로는 머지않아 북·일 수교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비핵화와 관련한 통 큰 결단을 내리면 순식간에 진척될 게 확실하다. 이럴 경우를 대비해 일본 내 북한 출토 문화재에 대한 조사가 하루빨리 진행될 필요가 있다고 관계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nam.je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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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