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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밴드 21년 허클베리핀, 제주에서 음악을 되찾다

허클베리핀은 ’공간은 상상력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끼친다“며 ’ 좁은 곳에서 넓은 곳으로 시선을 옮기면 상상력이 커지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성장규·이소영·이기용.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허클베리핀은 ’공간은 상상력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끼친다“며 ’ 좁은 곳에서 넓은 곳으로 시선을 옮기면 상상력이 커지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성장규·이소영·이기용.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21년차 인디 록밴드 허클베리핀이 새로운 모험을 떠난다. 목적지는 높고 넓은 곳. 7년 만에 나온 6집 ‘오로라 피플’은 그 여정의 결과물이다. 하여 앞서 발표한 앨범과는 사뭇 다른 질감을 지닌다. 이전까지 앨범을 만드는 과정이 기타와 드럼을 치고 노래를 하며 합을 맞추는 데 중점을 뒀다면, 이번에는 공간을 채울 수 있는 소리를 찾아 나서는 게 우선이었다. 여행을 떠나 만나는 황홀한 일몰 같은 풍광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일상과는 다른 재료들이 필요했다.
 
19일 서울 서소문에서 만난 허클베리핀은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것처럼 보였다. 밴드를 이끌고 있는 이기용(보컬·기타)은 “제주에서 보낸 시간이 음악에 대한 생각을 바꿔놓았다”고 말했다. “2012년부터 마음의 병이 심해졌어요. 모른 척하고 싶었는데 점점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힘들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제주에서도 가장 한적한 김녕에서 4년을 머물렀어요. 약도 안 먹고 아플 거 다 아파가면서. 자연이 주는 위로가 생각보다 크더라고요. 그걸 음악에 담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그 무렵 이소영(보컬)도 방황하긴 마찬가지였다. 2집 ‘나를 닮은 사내’(2001)부터 허클베리핀에 합류해 십여년간 노래해 왔지만, 여전히 음악으로 먹고살 자신이 없었다. 안정적으로 음악을 하기 위해 2007년 홍대 앞에 문을 연 음악 바 ‘샤’까지 닫고 나니 더욱 막막했다. 7년을 버텼지만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하긴 어려웠던 탓이다. “형은 제주로 내려갔지, 음악을 계속할 수 있을까, 음악을 그만두면 뭘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죠. ‘핀(FIN)’이란 약자에 꽂혀서 핀란드로 여행을 갔는데 거기서 오로라를 봤어요. 청춘을 다 바친 시간을 계속 곱씹으면서.”(이소영)
 
허클베리핀 6집 ‘오로라 피플’. [사진 칠리뮤직]

허클베리핀 6집 ‘오로라 피플’. [사진 칠리뮤직]

어둠의 터널 끝자락에 서 있던 두 사람은 빛을 향해 한 발짝씩 떼기 시작했다. “다시 음악을 시작해보자”는 설득에 이소영은 제주에 작업실을 얻었고, 이기용은 서울을 오가며 성장규(기타·드럼·프로그래밍)를 새 멤버로 영입했다. 만돌린 세션으로 종종 공연에 참여했던 성장규는 “오랜만에 연락이 왔길래 다시 공연하나보다 했는데 보자마자 대뜸 ‘너 취직됐어’ 해서 황당했다”고 돌이켰다. “장규는 한 악기를 고집하지 않고 여러 악기를 다룰 수 있는 데다 각종 사운드 이펙트를 의논해 만들 수 있어서 꼭 필요한 멤버였거든요. 우리는 필요한 소리가 많았고.”(이기용)
 
세 사람이 의기투합하면서 작업실 한쪽 벽면은 다양한 풍광으로 채워져 갔다. 오로라나 북극·남극처럼 넓은 공간을 담은 사진이 주를 이뤘다. 르네 마그리트의 회화 ‘빛의 제국’을 음악적 지향점으로 삼은 이들은 그림을 그리듯 작업했다. “도화지에 붓을 치는 순간 구조가 생기잖아요. 위아래가 구분되고. 음악도 저음, 중음, 고음을 쌓아 나가면서 그 공간을 어떻게 하면 최대한 벌릴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오로라’를 들어 보면 바람 소리가 나거든요. ‘항해’에서는 첼로가 대기권을 통과하는 듯한 소리를 만들고. 작은 소리지만 공간감이 확 넓어지죠.”(이기용)
 
6집으로 새로운 음악 스타일을 선보인 허클베리핀.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6집으로 새로운 음악 스타일을 선보인 허클베리핀.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음악적 실험도 계속됐다. 한 곡에 200개 트랙을 채워 넣고 공간감 형성에 방해가 되는 트랙은 지워나갔다. 이기용은 “빼고 또 빼다 보니까 ‘너의 아침은 어때’ 같은 경우는 기타까지 사라지게 됐다”며 “허클베리핀 노래 중에 기타가 없는 노래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기타리스트이자 프로듀서로서 기타가 중심이 된 앨범을 만들어온 그에게는 꽤 과감한 선택이다. 1집 ‘18일의 수요일’과 3집 ‘올랭피오의 별’ 등 2장의 앨범을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올린 그간의 성과와는 다른 방향성이 뚜렷하다.
 
이번 앨범은 세상에 없는 공간을 여행하는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이지러진 저 달을 봐/ 성스러운 저 검은 숲/ 쏟아지는 빛에 싸여/ 밤이 너의 눈에서 자라고 있어”(‘오로라 피플’)라거나 “밤의 궁전으로 물에 비친 불빛이/ 바람에 흔들리면 니가 그리웠어”(‘너의 아침은 어때’) 같은 노랫말은 우주여행 안내서처럼 시공간을 떠돌게 하는 효과를 지닌다. 록밴드 공연에 와서 가만히 서서 감상만 하는 관객들을 향해 “출렁이며 춤추게 만들겠다”고 선언한 5집 ‘까만 타이거’(2011)와 비교하면 더욱 대조적이다.
 
허클베리핀은 "올해로 14번째 '옐로우 콘서트'를 준비하고 있다"며 "연말 공연은 팬들과의 약속이자 버티면서 음악을 계속할 수 있는 힘을 준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허클베리핀은 "올해로 14번째 '옐로우 콘서트'를 준비하고 있다"며 "연말 공연은 팬들과의 약속이자 버티면서 음악을 계속할 수 있는 힘을 준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들은 다음 달 22일 서울 광흥창 CJ아지트에서 열리는 ‘옐로우 콘서트’ 선곡 작업이 한창이다. 휴지기 틈틈이 발표한 싱글 ‘사랑하는 친구들아 안녕 나는 너희들이 모르는 사이에 잠시 지옥에 다녀왔어’나 ‘뜨거운 불로 만들어진 검은 새는 그녀의 팔에서 태어났다’ 등을 들을 수 있는 기회다. 이기용은 “곡마다 감정 격차가 커서  어떻게 구성할지 걱정”이라며 “그만큼 다채로운 무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언니네이발관·델리스파이스 등과 함께 1세대 인디밴드 부흥기를 연 선배로서 지금 인디 음악계를 바라보는 소회는 어떨까. 장기하와 얼굴들이나 장미여관 같은 후배들이 팀을 결성하고 해체하는 동안 꿋꿋이 팀을 지켜온 비결을 묻자 “그냥 버티는 것”이라는 싱거운 답이 돌아왔다. “저희는 선배라는 인식도 없어요. 막 누굴 만나고 계보를 만들고 이런 스타일도 아니라서. 장르를 떠나서 자기 음악을 하는 것을 존중할 뿐이죠. 밴드를 한다는 건 연애랑 비슷해서 오래 관계를 유지하는 게 쉽지 않거든요.”(이기용)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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