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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철도·도로 혈맥잇기 … 이벤트 아닌 효율이 먼저다

남북 철도·도로 연결 ‘재탕’ 논란
낡은 레코드판을 다시 돌리는 느낌이다. 어디선가 들어본 기적 소리가 또 울린다. 너무도 쉽게 망각되는 요란한 이벤트가 줄을 잇고 있다. 고위 당국자 간 논의와 줄다리기까지 연출된다. 남북 사이의 철도·도로 연결 문제를 둘러싼 최근의 분위기를 두고 하는 얘기다. 이미 11년 전 혈맥을 잇는 공사를 마치고 철마까지 달렸는데 다시 무슨 ‘연결’을 하겠다는 것인지 어리둥절해진다. 왜 이런 일이 생겼고, 무엇이 문제일까. 내로라하는 인프라 분야 전문가들이 모인 ‘한반도 국토 포럼’ 현장을 찾아 진단해봤다. 
 
노무현 정부 말기인 2007년 12월 11일 경기도 파주 도라산역에선 ‘역사적인’ 행사가 열렸다. 경의선 철길 남북 간 27㎞ 구간이 완공돼 이곳에서 북측 판문역까지 열차 운행이 이뤄진 것이다. 6·25 전쟁으로 멎었던 열차가 56년 만에 다시 달렸다. 첫 열차는 남측에서 싣고 간 도로 공사용 경계석을 판문역에 내려놓고, 개성공단에서 생산한 신발을 가져왔다. 무엇보다 남북 화해·협력의 상징인 개성공단에서 생산한 물품을 다시 이어진 철길을 이용해 수송할 수 있게 됐다는 데 초점이 쏠렸다. 남북 경협과 교류에 큰 획을 긋는 획기적 진전이란 청와대와 정부의 의미부여가 나왔다. 동해선 25㎞ 구간도 연결돼 같은 날 시험운행이 이뤄졌다. 공중파를 비롯한 방송 매체가 앞다퉈 생중계하고 신문·통신이 관련 뉴스를 대서특필했다.
 
하지만 정부 당국자와 관련 업자들 사이엔 발설하기 힘든 고민이 시작됐다. 당장 이틀째부터 화물 열차 컨테이너에 실어나를 물량이 없었기 때문이다. 트럭을 이용하면 남한 쪽에서 곧바로 개성공단 내 생산라인을 오갈 수 있는데 굳이 번거롭게 열차를 이용할 업체는 없었다는 얘기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 연구기관 관계자는 “열차로 화물을 보내려면 트럭에 물건을 실어 경기도 의왕의 내륙컨테이너 기지로 간 뒤, 열차에 옮겨싣고, 다시 판문역에서 화물차량으로 환적해 개성공단까지 가는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런데도 통일부는 “어렵사리 남북이 합의한 사안인데 빈 차로라도 운행하는 게 중단하는 것보다 낫다”고 버텼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이런 방침 때문에 아무것도 실리지 않은 ‘깡통열차’가 주 5회(토·일요일 제외) 남북을 오갔다. 이듬해 12월 북한이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불만을 터트리며 중단할 때까지 이뤄진 열차 운행은 220회(편도 440차례)에 이른다. 하지만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실어나른 화물은 318t에 불과했고, 화물 컨테이너가 운행된 건 17차례에 31량 수준에 그쳤다. 10번 운행할 때 한 차례 남짓할 정도로 화물 컨테이너가 운행된 것이다. 당초 기관차에 10개의 컨테이너를 달아 운행할 계획이었지만 화물이 없는 경우엔 기관차만 다니는 모양새가 됐다.
 
철도·도로 연결 문제가 다시 이슈로 떠오른 건 지난 4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에서다. 판문점선언은 ‘민족 경제의 균형 발전’을 표방하면서 “1차적으로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와 도로들을 연결하고 현대화하여 활용하기 위한 실천적 대책들을 취해 나가기로 했다”고 명시했다. 이런 합의에 따라 6월엔 철도·도로 분과회담이 열려 남북 공동 점검과 조사에 의견접근이 이뤄졌다. 7월과 8월에는 북측의 철도 연결구간과 고속도로에 대한 양측 전문가 공동조사가 펼쳐졌다. 지난달 열린 남북 고위급 회담에선 철도·도로 연결과 현대화를 위한 착공식을 이달 말이나 다음 달 초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남북 정상이 판문점선언에 철도·도로 연결 관련 합의를 담으면서 ‘10·4 선언’을 강조한 점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합의한 10·4 선언의 계승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교통 및 인프라 분야 전문가 그룹에선 “10·4 합의의 내용과 철도·도로 연결 및 과거 운행 이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청와대와 대북 부처 당국자들이 문재인 정부 들어 북측과 철도·도로 연결을 다시 의제화하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한다. 한 관계자는 “대북 부처 회의에서 일부 전문가들이 ‘재탕삼탕식 철도·도로 연결 이벤트화는 문제’라고 지적했지만 당국 쪽에서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고 귀띔했다.
 
전문가와 관련 업계에서는 남북 경협과 교류·협력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게 철도·도로 인프라 건설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지난 19일 한국공학한림원이 주최한 ‘한반도 국토 포럼’에서도 이 문제가 집중 논의됐다. 최기주(아주대 교수) 대한교통학회장은 ‘남북 교통 인프라의 상생협력을 위한 정책제언’이란 주제발표에서 “5300㎞의 북한 철도망 중 70%가 일본강점기 건설돼 선로상태가 엉망이고, 열차가 시속 30~40㎞ 수준에 그친다”고 말했다. 도로 포장률도 10%에 불과하고, 차량은 28만5000대로 남한(2180만 대)의 1.3% 수준이란 얘기다.
 
이날 포럼에서는 침목이 부족해 통나무를 그대로 베어다 받쳐놓은 철로와 녹이 슬어 구멍이 숭숭 뚫린 화차 등 북한 철도 실상을 보여주는 사진이 공개됐다. 한 전문가는 “침목과 자갈이 부실한 데다 레일을 고정해주는 체결장치가 엉성해 고속주행할 경우 기차가 좌우로 요동치는 등 위험이 따른다”고 설명했다. 북한 열차가 마라토너나 자전거 수준의 속도밖에 내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로 자초한 대북제재가 대북 인프라 지원의 최대 걸림돌이란 분석도 제기됐다. 이종석 휴다임건축사사무소 대표는 포럼 토론에서 “철도·도로 부문에서 새로운 세리머니를 하고 싶어하지만 제재 때문에 한 발짝도 못 나가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건설·건축과 인프라 분야에서 북측이 파트너를 찾는 게 쉽지 않다는 고충도 토로됐다. 이재완 한국엔지니어링협회장은 “조선건축가동맹이나 백두산건축연구원 등이 있지만 북한의 인프라 건설을 실제 주도하는 건 군부라는 답변을 들었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힘을 집중하고 있는 북한 철도·도로 현대화 문제를 두고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월 광복절 경축사에서 “경의선·동해선 철도와 도로 연결을 올해 안에 착공하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또 남북한·중국·러시아·일본·몽골에 미국이 참여하는 ‘동아시아 철도공동체’ 창설을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관련국 호응이 없는 상황이다.  
 
북한의 철도를 당장 우리 수준으로 끌어올리려 하거나 국제협력을 강조하다가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투입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창무(서울대 교수)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장은 “모든 분야의 개량보다는 현재 북한 실정상 문제가 되는 레일과 침목 교체 등에 집중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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