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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의 골프 인사이드] PGA 입성 이경훈 “내 재능은 노력하는 자세”

지난달 제주에서 열린 CJ컵에서 티샷하는 이경훈. 최근 PGA 1부 투어 출전권을 땄다. [뉴시스]

지난달 제주에서 열린 CJ컵에서 티샷하는 이경훈. 최근 PGA 1부 투어 출전권을 땄다. [뉴시스]

깊은 밤 인적이 드문 곳에서 ‘쉭, 쉭’ 하는 소리가 나서 가보니 이경훈(27)이 아이언을 휘두르고 있었다.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앞둔 2010년 11월 골프 대표팀 취재차 제주에 갔을 때의 일이다. 당시 열아홉 살의 이경훈은 “열심히 해서 금메달을 아버지 목에 걸어드리겠다”고 했다. 
 
밤이 늦었는데 너무 무리하지 말라는 얘기에 이경훈은 “나의 가장 큰 재능은 노력하는 자세”라며 웃었다. 그의 말대로 이경훈은 재능이 아주 출중하지는 않았다. 괴물 장타자도 아니고 쇼트 게임 귀신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성실했고, 의지가 강했다.
 
8년이 지난 2018년, 이경훈은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정규 시드를 얻었다. 그는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땄고,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된 일본 투어에서 뛰다 2015년 훌훌 털고 미국 2부 투어로 갔다. 
 
쉽진 않았다. 첫해인 2016년 당시 남미에서 열린 대회가 6개나 됐다. 미국에서도 2부 투어가 열린 대회장이 대부분 시골이어서 비행기가 한 번에 가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치안이 좋지 않은 곳에서, 한국과 일본에서는 보지 못했던 엄청난 장타자들과 경쟁해야 했다. 
 
밤늦게 공항에 내리면 식당이 없어 라면에 햇반을 말아 먹는 일이 잦다 보니 몸무게가 7㎏이나 불었다. 15개 대회를 치르고 나서 번 돈이 5000 달러(약 550만원) 정도였다.
 
이경훈은 “상금 랭킹이 떨어지면서 일부 대회의 출전 자격을 잃었는데 그걸 몰랐다. 공항에 가려고 짐을 다 싸놨는데 나중에 참가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망연자실한 일도 있었다. 싼 호텔에서 자다 벌레에 온몸이 물려 시뻘겋게 부어오르고 전화까지 터지지 않아 고생한 기억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눈물 젖은 빵을 뜯어야 하는 2부 투어 생활 3년 만에 상금랭킹 8위에 오른 덕분에 올가을 PGA 1부 투어로 올라섰다. 
 
그는 “나를 도운 두 명의 귀인이 있다”고 했다. 올해 미국 2부 투어 신인왕을 차지한 임성재가 그중 한 명이다. 19세 임성재는 미국의 2부 투어 데뷔전서 우승했다. 당시 우승을 확정 지은 임성재에게 물을 뿌려 주며 축하한 선수가 이경훈이었다. 이경훈은 “성재는 약점이 없다. 멀리 치고, 퍼트도 잘한다. 앞으로 대성할 선수”라고 칭찬했다.
지난해말 혼인신고를 한 뒤 다음달 15일 결혼식을 하는 이경훈(왼쪽)과 신부 유주연씨. [사진 이경훈]

지난해말 혼인신고를 한 뒤 다음달 15일 결혼식을 하는 이경훈(왼쪽)과 신부 유주연씨. [사진 이경훈]

본인은 3년째 아무런 기약 없이 2부 투어에서 고생하고 있는데 데뷔전에서 덜컥 우승한 임성재가 부럽지 않았을까. 이경훈은 “물론 나도 잘하고 싶지만, 후배가 우승하니 내 일처럼 기분이 좋았다. 나도 할 수 있다는 동기부여도 됐다”고 했다.
 
그와 함께 주니어 시절을 보낸 동료들은 “이경훈은 남이 잘되면 자기 일처럼 좋아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경훈은 “그 정도는 아니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을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은 했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이경훈배 서울시 학생 골프 대회가 생겼다. 이경훈은 2부 투어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싼 호텔을 전전하면서도 경비를 아껴 장학금을 냈다.  
 
이경훈의 또 다른 귀인은 부인 유주연(29)씨다. 2살 연상인데 후배의 소개로 만났다. 지난해 말 혼인신고만 하고 올해는 함께 투어를 다녔다. 이경훈은 “다니던 제약회사를 그만두고 나를 위해 고생하고 있다. 적극적이고 할 말을 할 줄 아는 똑똑한 사람이다. 밥도 맛있게 해준다”며 “경기가 안 풀려 내가 속상해하면 아내가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방법이 없다’고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골프도 잘 모르는데 무척 답답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경훈은 미뤘던 결혼식을 12월 15일 올린다. 이경훈과 친한 LPGA 투어 선수 김세영은 “아주 예쁜 주연 언니와 결혼하는 경훈 오빠가 진정한 승자”라고 했다. 부인 얘기를 할 때 이경훈의 얼굴에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12월 15일 결혼식을 올리는 이경훈과 유주연씨의 웨딩 사진. [사진 이경훈]

12월 15일 결혼식을 올리는 이경훈과 유주연씨의 웨딩 사진. [사진 이경훈]

만약 올해도 PGA 투어 카드를 얻지 못했으면 어땠을까. 이경훈은 “올해 실패했어도 한국으로 돌아오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게 내 꿈이니까. 만약 PGA 투어 카드를 잃더라도 다시 도전할 것이다. 그게 내 꿈이니까”라고 했다. 
 
그는 또 “아버지와 처, 또 후원사인 CJ의 김유상 부장이 무조건 될 거라고 응원해줬다. 그렇게 얘기하면서 나를 믿어준 사람들이 고맙다”고 했다. 이경훈이 좋아하는 말은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이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성실하고 마음씨 좋은 이경훈이 더 잘 되기를 바라고 있다.

 
성호준 골프팀장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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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