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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한 까마귀 … “까~까~까” “콰~콰” 태화강은 그들만의 낙원

겨울철 짧은 해가 넘어갈 무렵이면 울산 태화강 인근 십리대숲에서는 떼까마귀의 군무가 펼쳐진다. 이들은 먹이를 구하러 경주·영천까지 가기도 한다. [중앙포토]

겨울철 짧은 해가 넘어갈 무렵이면 울산 태화강 인근 십리대숲에서는 떼까마귀의 군무가 펼쳐진다. 이들은 먹이를 구하러 경주·영천까지 가기도 한다. [중앙포토]

올해도 어김없이 울산 태화강 삼호대숲에는 겨울 손님 까마귀가 도착했다. 지난 2000년 무렵부터 울산 삼호대숲을 중심으로 3만~5만 마리의 떼까마귀와 갈까마귀가 집단을 이뤄 월동한다. 경주나 양산 등지까지 포함하면 최대 10만 마리나 된다. 군무를 펼치는 태화강 까마귀는 이 지역 생태관광 자원으로 자리 잡았다.
 
경기도 수원 도심에도 매년 겨울이면 수천 마리의 떼까마귀가 찾는데, 주민들은 배설물로 인해 고통을 겪는다. 까마귀들이 유독 울산과 수원에 모여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물새네트워크 상임이사이자 조류 생태학자인 이기섭 박사는 “울산을 찾는 까마귀의 80~90%는 떼까마귀이고, 10~20%는 갈까마귀”라며 “울산으로 모여드는 것은 편안한 잠자리와 풍부한 먹이, 포식자의 위험을 피할 수 있는 등 조건이 고루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태화강을 따라 4㎞에 걸쳐 이어져 있는 삼호대숲(십리대숲)에는 사람이 거의 들어가지 않는 데다 차가운 겨울바람까지 막아주니 더할 나위 없는 안식처라는 것이다.
 
게다가 울산 주변에는 농경지가 비교적 넓다. 비닐하우스가 드물고, 계단식 논이 펼쳐져 있다. 까마귀는 떨어진 낱알뿐만 아니라 풀씨도 먹이로 좋아하는데, 계단식 논의 논둑에는 평지 논보다 풀이 자랄 공간이 많다. 까마귀는 먹이를 찾아 30㎞ 거리는 물론 40~50㎞까지도 날아간다. 울산 주변에는 큰 저수지나 하천이 없어 겨울 철새인 오리·기러기와 경쟁할 필요가 없다.
 
까마귀가 가장 두려워하는 포식자는 수리부엉이다. 산지에 사는 수리부엉이가 대숲에는 잘 출현하지 않는다. 야행성인 수리부엉이가 접근하더라도 주변 가로등 덕분에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수원 도심에도 몇 년 전부터 겨울이면 9000~1만 마리 정도씩 까마귀가 찾아오고 있다. 이 박사는 “1990년대에는 까마귀들이 김포 쪽에서 월동했는데, 김포 지역 개발이 가속하면서 수원이나 평택시 안중읍 쪽으로 이동한 것 같다”고 말했다. 수원이나 안중읍 부근에도 농경지가 비교적 넓게 펼쳐져 있다.
 
수원 도심에서 까마귀들이 주로 쉬는 장소는 고층건물이나 높은 아파트 지역이 아닌 3~5층 높이의 빌라형 주택단지와 상가 뒷골목의 전깃줄이다. 그러다 보니 도로 바닥은 물론 주차한 차량 위에도 배설물이 쌓인다. 이 박사는 “까마귀 배설물은 백로·갈매기 배설물보다는 산도가 강하지 않다”고 말했다. 곧바로 닦아내면 차량에 피해를 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까마귀들이 울산이나 수원을 계속 찾는 것은 겨울나기에 편안한 곳이라는 걸 까마귀가 기억하기 때문이다. 사실 까마귀의 기억력은 대단하다. ‘까마귀 고기를 먹었나’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까마귀는 사람의 얼굴도 구분하는데, 한번 자신을 공격한 사람을 기억했다가 두고두고 덤벼들어 공격한다. 일본 오키나와에서는 2004년 관광객이 자전거 바구니에 둔 지갑을 까마귀가 훔쳐간 사건이 발생했다. 까마귀가 머물던 나무 아래에는 지퍼가 열린 지갑이 발견됐고, 찢어진 지폐도 발견됐다. 지난 5월에도 일본에서는 까마귀가 기차역 승차권 자동발매기 앞에서 승객의 신용카드를 훔친 뒤 이를 발매기에 넣어 표를 끊으려고 시도하는 게 목격됐다.
 
지난해 일본 국립종합연구대학원 대학 연구팀은 성문(聲紋) 분석기법을 통해 까마귀가 최소한 40개 정도의 ‘까마귀 어(語)’를 구사하는 것을 확인했다. 먹이를 발견했을 때는 “까~까~까(여기 먹이가 있다)”, 천적이 가까이 다가왔을 때는 “깍깍깍(위험하다)”,  보금자리로 돌아갈 때는 “콰~콰(안전하다)”하고 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까마귀는 자동차 바퀴를 호두 까기 기계로 이용하기도 한다. 호두를 도로 위에 떨어뜨려 자동차가 지나가면서 호두를 부서뜨리도록 한다. 일본에서는 특히 교차로에 호두를 떨어뜨리고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렸다가 보행자들과 같이 걸어가 알맹이를 수거해가기도 한다.
 
이솝 우화에는 물병의 물을 마시기 위해 돌을 물어다 넣은 까마귀가 등장한다. 실제로 2009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연구팀이 떼까마귀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까마귀들은 물병 속에 떠 있는 벌레에 부리가 닿지 않자 이를 먹기 위해 돌을 물병에 넣은 행동을 보였다.
 
갈까마귀들은 도마뱀을 사냥할 때 역할을 분담한다. 도마뱀이 굴 밖으로 나오면 어떤 까마귀는 굴 입구를 막고, 다른 까마귀는 도마뱀을 공격한다. 도마뱀이 굴로 되돌아가지 않도록 입구를 지키던 까마귀는 도마뱀이 죽은 뒤에야 굴을 떠나 먹이 나누기에 동참한다.
 
도구를 물고 있는 뉴칼레도니아까마귀.

도구를 물고 있는 뉴칼레도니아까마귀.

남서 태평양의 프랑스령 섬이자 유명한 관광지인 뉴칼레도니아에 사는 뉴칼레도니아까마귀는 지능이 높기로 유명하다. 뉴질랜드 오클랜드 대학 연구팀이 이 까마귀의 지능을 테스트했다. 부리가 닿지 않는 깊은 구멍에 고기를 넣어놓고, 먹이까지는 닿지 않은 짧은 막대를 상자 가까운 곳에, 먹이까지 닿는 긴 막대를 상자 먼 쪽에 놓아뒀다. 그러자 까마귀는 짧은 막대로 긴 막대를 꺼낸 뒤, 다시 긴 막대로 구멍 속의 먹이를 꺼내 먹었다.
 
문제 해결 능력이 원숭이보다 앞섰다는 평가를 받았다. 날아다니는 영장류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다. 뉴칼레도니아까마귀는 철사를 휘어 고리를 만드는 등 스스로 사용하기 편하도록 도구를 만들어 사용한다.
 
반포지효(反哺之孝)라는 말은 까마귀가 자라서 자기를 길러준 부모에게 먹이를 구해준다는 데서 유래했는데, 극진한 효도를 의미한다. 실제로 새끼 까마귀는 두서너 살 무렵, 성적으로 성숙하게 될 때까지 부모 곁에 머문다. 수컷 까마귀의 경우 스스로 가족을 꾸릴 준비가 된 지 한참이 지난 후에도 부모 곁에 머물기도 한다. 그러면서 새로 태어난 새끼, 즉 동생을 돕기도 한다. 먹이를 가져다주고, 둥지 청소를 돕는 것이다.
 
까마귀 생태와 행동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신기함이 가득하다. 까마귀는 앞으로 또 어떤 재능으로 우리를 놀라게 할까.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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