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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불 났는데, 소방공무원이 파업하면?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이하 경사노위) 산하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이하 제도개선위)에서 논의 중인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 비준과 관련된 1단계 노사정 협상이 끝났다. 근로자의 결사의 자유와 단결권 보호 협약(제87호)에 관한 논의다. 노사 간에 이견이 커서 합의에는 실패했다. 그래서 공익위원이 그동안의 논의 내용을 바탕으로 '공익위원안'을 내놓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1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민주노총 서울본부 주최로 열린 민주노총 총파업 동참 선언 및 서울지역 노동자권리 찾기 행동 선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민주노총은 오는 21일 노동자의 파업할 권리 보장과 ILO핵심협약 비준, 노동관계법 개혁 착수를 촉구하는 총파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연합뉴스]

1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민주노총 서울본부 주최로 열린 민주노총 총파업 동참 선언 및 서울지역 노동자권리 찾기 행동 선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민주노총은 오는 21일 노동자의 파업할 권리 보장과 ILO핵심협약 비준, 노동관계법 개혁 착수를 촉구하는 총파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연합뉴스]

 
제도개선위의 이번 1차 논의는 노동계가 요구한 노조 가입의 자유와 노조 가입 범위 확대 등을 다뤘다. 2차 논의는 경영계가 요구하는 대체근로 허용과 같은 ILO 협약 비준에 따른 글로벌 스탠다드형 제도 개선 방안이 다뤄진다. 시한은 내년 1월말까지다. 이에 대해서는 노동계가 강하게 반대하고 있어 2차 논의도 노사 합의 대신 공익위원안을 도출하는 선에서 봉합될 수 있다. 따라서 ILO 협약 비준을 둘러싼 관련 법과 제도 개선은 경사노위에서의 논의가 끝나도 상당기간 표류할 전망이다.
 
한국은 1991년 ILO에 152번째로 가입했다. 당시 정부는 "국제적 외교 무대에 당당히 나서기 위해서"라고 가입 이유를 밝혔다. 다만 일부 협약의 비준을 유보했다. 협약 비준 여부는 회원국의 사정에 따라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91년 7월 12일 회장단 회의에서 "국내 노사관계와 법·제도가 선진국과 비교할 때 상당한 괴리가 있다"는 점을 들어 "글로벌 스탠다드에 근접했을 때 비준하는 것이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국노총도 "국내외 노동현실의 문제점을 고려해 제87호 등의 비준은 상당기간 유보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고 입장을 정리했다.
 
이 기조는 한동안 유지됐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대통령 선거 당시 ILO 협약 비준을 공약으로 내걸고, 정부 출범 뒤 국정과제로 삼으면서 수면 위로 부상했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과 경제규모를 고려할 떄 더는 비준을 미루기 어렵다는 설명을 하면서다. 이에 따라 지난 7월 20일 경사노위 산하에 제도개선위가 꾸려져 1·2차로 나눠 논의를 진행했다.
 
1단계 논의 이후 나온 공익위원안은 노동계의 요구를 대폭 수용하는 쪽을 택했다. 노조 가입 범위를 대폭 확대하고, 이와 관련된 법·제도 개선을 정부와 국회에 권고했다. 노동계는 '누구나 노조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해왔다.
 
우선 해고자와 실업자의 노조 가입과 활동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렇게 되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합법 노조가 된다. 현재는 해고자를 조합원으로 둘 수 없다는 관련 법을 어겨 '노조 아님' 판정을 받은 상태다. 특히 종업원이 아닌 외부인이 기업 내 근로자의 임금이나 복지 수준을 결정하는 데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게 우리 사회의 통념상 허용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김영완 경총 노동정책본부장은 "기업 경영이나 직원의 근로조건에 외부인이 개입하는 것은 심각한 기업활동 저해 요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익위원은 또 현재 6급 이하만 가입하도록 돼 있는 공무원의 노조 가입범위를 5급 이상으로 확대하도록 의견을 모았다. 정책을 결정하고, 심의하는 고위 공직자까지 노조의 영향권 안에 편입되는 셈이다. 공무원 연금 개혁과 같은 작업이 난관에 봉착할 수 있고,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될 위험도 있다. "임금이 민간보다 높고, 고용 안정성이 높은 공무원이 단체로 위력을 행사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김태기 단국대 교수)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소방공무원에게 노조 가입의 문호를 열도록 공익위원들은 권고했다. 소방공무원의 처우 개선을 위해 노조를 결성, 대항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기 위해서라는 명분이다. 문제는 소방공무원이 파업하면 화재와 같은 재난 상황이나 위급환자 수송 등에 큰 혼란이 일 수 있다. 여론이 이를 수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노조 전임자 확대 방안도 논란거리다. 노조 간부가 일을 하지 않고 임금만 받는다는 비판이 일자 2010년 근로시간면제제도를 도입했다. 노조는 노조 스스로 꾸려가야 한다는 노조의 자주성과 관련된 사안이어서 노동계도 강하게 반대하지 못했다. 공익위원은 이를 확대하도록 권고했다. 노조 전임자를 더 늘리라는 얘기다. "근로시간면제제도의 취지를 희석하는 발상"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그렇다고 이번 1단계 논의 결과가 그대로 반영되는 것은 아니다. 향후 진행할 2단계 논의 결과와 종합해 사회적 대타협이 있어야 관련 법·제도 개선의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ILO 협약 비준을 둘러싼 법·제도 개선 방안의 윤곽은 내년 1월 말 2단계 논의가 끝나봐야 드러날 전망이다.
 
2단계 논의는 경영계가 요구한 ILO 협약 비준에 따른 글로벌 스탠더드형 대안 논의다. 경영계는 '노사 간 힘의 균형'에 초점을 맞춘 요구안을 내놓고 있다. ▶대체근로 허용 ▶부당노동행위 폐지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 ▶사업장 점거 금지가 골자다. 한국에는 없고, 선진국은 대체로 시행 중인 제도다.
 
대체근로는 파업 때 외부에서 인력을 충원해 공장 가동을 계속하는 조치다. 대체근로를 금지하는 국가는 한국뿐이다. 사업장 점거 금지도 기업의 생산 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방안이다.
 
부당노동행위는 미국과 일본을 제외하곤 외국에선 찾아보기 힘들다. 심지어 미국은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뿐 아니라 노조의 부당노동행위도 함께 제어한다. 일본은 사용자에 대한 부당노동행위가 있지만 처벌 조항이 없다. 선언적인 의미일 뿐이라는 얘기다.
 
단체협약 유효기간은 현재 2년인 것을 최대 4년으로 늘리는 방안을 경영계가 내놨다. 매년 임금협상을 하고, 단체협상을 하느라 불필요한 노사갈등이 깊어지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김영완 경총 노동정책본부장은 "노동계의 요구만 다룬 1차 논의 결과는 별 의미가 없다"며 "협약을 비준하려면 경영계가 요구한 대체근로 허용과 같은 2차 논의 의제에 대한 의견접근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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