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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한국과학원 초안 담당자마다 교통사고·심장마비 … 결국 임무는 내게

대전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KAIST)의 창의학습관 1층에 있는 터만홀의 안내 동판.1970년 미국 국제개발처(USAID)의 한국과학원(KAIS) 설립 지원 타당서 조사단장이던 프레데릭 터만 스탠퍼드대 부총장을 기리기 위해 2004년 그의 이름을 붙였다. KAIST는 1966년 과학기술 진흥을 위해 설치한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와 1971년 과학기술 인재 양성을 위해 설립된 교육기관인 한국과학원(KAIS)이 1981년 1월 통합하면서 탄생했다. [사진 카이스트]

대전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KAIST)의 창의학습관 1층에 있는 터만홀의 안내 동판.1970년 미국 국제개발처(USAID)의 한국과학원(KAIS) 설립 지원 타당서 조사단장이던 프레데릭 터만 스탠퍼드대 부총장을 기리기 위해 2004년 그의 이름을 붙였다. KAIST는 1966년 과학기술 진흥을 위해 설치한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와 1971년 과학기술 인재 양성을 위해 설립된 교육기관인 한국과학원(KAIS)이 1981년 1월 통합하면서 탄생했다. [사진 카이스트]

 
미국 국제개발처(USAID)의 프레데릭 터만 타당성 조사단장은 1970년 8월 한국과학원(KAIS) 설립을 위한 중간보고서를 바탕으로 프랭클린 롱 코넬대 교수에게 최종보고서 초안 작성을 의뢰했다. 그런데 롱 박사는 뉴욕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3개월간 입원하게 됐다. 대신 맡은 토마스 마틴 서던 메소디스트대 부총장은 심장마비를 일으켜 입원했다. 결국 도널드 베네딕트 오리건대 대학원장이 일을 맡아 두 달에 걸쳐 500쪽짜리 초안을 작성했다. 터만 단장이 이를 50쪽 내외로 줄이라고 하자 베네딕트 박사는 고집을 부렸다.  

정근모, 과학기술이 밥이다 - 제131화(7587)
<39> 터만 단장의 배려
최종보고서 맡은 필자마다 문제
터만 단장 부탁으로 내가 맡기로
각장 완성해 보내면 빨간펜 수정
마지막 장은 전혀 수정하지 않아
“한국식 영어 보여야 정 박사 것”
노교수 터만의 배려·정직성 감복


'실리콘 밸리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레데릭 터만 스탠퍼드대 부총장 겸 공대 학장. [위키피디아]

'실리콘 밸리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레데릭 터만 스탠퍼드대 부총장 겸 공대 학장. [위키피디아]

결국 터만 단장은 최종보고서를 새로 작성하기로 하고 내게 전화했다. 나는 당시 뉴욕 공대에서 밀린 업무를 처리하느라 한창 바빴다.  
“정 박사, 새 초안 작성을 맡아주게. 처음부터 자네에게 부탁했어야 했는데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다른 분들에게 의뢰했던 것이니 이해해주게. 초고를 만들면 내가 문장을 검토하겠네.”
아무리 바빠도 대한민국을 위한 일이니까 해야 한다는 생각에 제안을 받아들였다. 우선 제1장을 완성해 보냈더니 1주일 뒤 여기저기가 새빨간 글씨로 수정돼 돌아왔다. 낙담하고 있는데 그가 먼저 전화를 걸어왔다.  
“자네 원고를 임의로 수정했다고 실망하지 말게. 글의 아이디어는 정 박사 것 그대로이고 나는 사람들이 편히 읽을 수 있도록 영어 문장만 고쳤을 뿐일세. 그러니 이제 제2장을 써서 보내주기 바라네.”
그의 전화에 마음을 푼 나는 보고서 작성을 이어나갔다. 각 장이 끝날 때마다 보내면 그는 예의 빨간 펜으로 수정해 다시 보내곤 했다. 드디어 마지막 결론 부분을 보내고 ‘이제 그의 빨간 글씨를 한 번만 더 보면 끝난다’라고 생각하며 후련해 했다 그런데 며칠 뒤 돌려받은 결론 부분을 아무리 살펴봐도 수정한 곳이 한 군데도 없었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전화를 걸었다.  
“터만 박사님. 제 글에는 고칠 곳이 있는 것 같은데 이번에는 피곤하셨는지 수정하지 않으셨더군요.”  
이 말에 터만 박사는 크게 웃었다.  
“정 박사, 자네의 보고서가 모두 완벽한 영어 문장으로 이뤄지면 사람들은 이를 내가 썼다고 생각하지 않겠나. 한국식 영어가 남아 있어야 자네가 썼다는 것을 알게 될 걸세. 결론 부분에 남아 있는 한국식 영어는 자네의 서명이라 할 수 있어 초고대로 놔두기로 했네.”  
나는 만 70세 노교수의 배려와 정직성에 진심으로 감복했다. 생각해보면 이는 프린스턴·MIT·하버드 등에서 경험한 원로교수들의 공통점이기도 했다. 후배나 제자의 연구나 논문 작성을 정성껏 돌보면서도 그 업적에 자신의 이름을 함부로 올리지 않는 정직성이다.  
대전의 한국과학기술원(KAIST) 창의학습관 터만홀. 1970년 미국 국제개발처(USAID)의 한국과학원(KAIS) 설립 지원 타당서 조사단장이던 프레데릭 터만 스탠퍼드대 부총장을 기리기 위해 2004년 그의 이름을 붙였다. 프리랜서 김성태.

대전의 한국과학기술원(KAIST) 창의학습관 터만홀. 1970년 미국 국제개발처(USAID)의 한국과학원(KAIS) 설립 지원 타당서 조사단장이던 프레데릭 터만 스탠퍼드대 부총장을 기리기 위해 2004년 그의 이름을 붙였다. 프리랜서 김성태.

70년 12월 USAID에 제출된 최종보고서는 단장 이름을 붙여 ‘터만 보고서’로 불린다. 나는 KAIS의 운영·조직을 다룬 부록을 작성해 71년 1월 제출했다. 나의 단독 저작물로 기록된 이 부록은 터만 교수의 감수를 거쳐 KAIS 운영 지침서가 됐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황수연 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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