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영국 수제화의 메카…구두 한 켤레에 250개 공정

영국 노스햄프턴 지역에 자리한 처치스 본사. [사진 처치스]

영국 노스햄프턴 지역에 자리한 처치스 본사. [사진 처치스]

패션을 잘 안다는 남자를 위한 퀴즈 하나. 영국 노스햄프턴(Northampton) 하면 떠오르는 건 뭘까.
런던에서 기차로 1시간 30분쯤 걸리는 이곳은 영국 구두의 성지라 불리는 도시다. 1700년대 중반부터 영국 구두산업의 메카로 자리잡아 1950년대엔 80여개 구두 브랜드가 성업하기도 했다.  
이유는 탁월한 지리적 조건 때문이었다. 11개의 크고 작은 강이 굽이쳐 흐르며 농업과 목축업이 발달했고, 참나무 숲이 우거진 덕에 가죽은 물론 나무로 만드는 구두 틀(라스트)을 만들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로크·존 스펜서·에드워드 그린 등 영국을 대표하는 신사화 브랜드가 다 이곳에서 탄생했다.  
처치스는 1873년 론칭 이래 지역 대표 브랜드로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진 처치스]

처치스는 1873년 론칭 이래 지역 대표 브랜드로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진 처치스]

처치스(Church's)도 노스햄프턴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영국 클래식 구두의 대명사다. 1873년 토마스 처치스가 가업 형태로 시작한 이래 1965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수출 여왕상’을 받았고, 전 영국 총리 토니 블레어가 재임 동안 줄곧 신어온 구두로 알려지면서 명성을 이어갔다. 
그러다 터닝 포인트를 맞았다. 99년 이탈리아 프라다 그룹에 인수된 것. 글로벌 패션 브랜드와 한 지붕이 되면서 어떤 변화를 겪을 것인가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처치스의 정체성은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기존 노스햄프턴 공장에서, 영국 정통의 제화 기법을 고수하는 ’메이드 인 잉글랜드’ 라는 점이다.  
처치스 팩토리 내부. [사진 처치스]

처치스 팩토리 내부. [사진 처치스]

지난 9월 노스햄프턴 본사를 찾았을 때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11월 14일 한국 공식 론칭을 앞둔 브랜드 측이 생산 현장을 공개하면서다. 건물 복도에는 엘리자베스 여왕 방문 기념 사진이 걸려 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방식으로 구두를 만든다”라는 의미를 담았다는 설명을 들었다. 
공장 투어를 맡은 플라비오 세르본 글로벌 마케팅 담당은 ‘메이드 인 잉글랜드’ 구두의 실체를 한 마디로 정리했다. “한 켤레를 만드는데 250가지의 공정, 게다가 8주가 걸리는 신발이다.”
다양한 가죽들을 모아 놓은 '스킨 룸'. 구두 종류에 맞춰 가죽을 고르는 데도 내공이 필요하다. [사진 처치스]

다양한 가죽들을 모아 놓은 '스킨 룸'. 구두 종류에 맞춰 가죽을 고르는 데도 내공이 필요하다. [사진 처치스]

가죽 냄새가 진동하는 ‘스킨 룸(Skin Room)’에 첫 발을 들였다. 구두 모델에 따라 적절한 가죽을 고르는 곳이다. 다음은 ‘클리킹(Clicking)’으로 가서 구두 모양에 맞춰 찍어내듯 가죽을 커팅한다. 그 조각들을 하나로 꿰매는 스티칭(Stitching)룸으로 가는 게 다음 순서다. 여기까지 끝나면 구두 틀(라스트·Last) 위에 구두 윗부분이 되는 ‘어퍼(Upper)’ 가죽을 올려 안창과 연결하고 밑창엔 쿠션 역할을 하는 코르크를 채우게 된다.  
나무로 만든 구두틀인 라스트. 처치스는 매 시즌 새로운 구두를 만들면서 이미 3만 개 이상의 라스트를 보유하고 있다. [사진 처치스]

나무로 만든 구두틀인 라스트. 처치스는 매 시즌 새로운 구두를 만들면서 이미 3만 개 이상의 라스트를 보유하고 있다. [사진 처치스]

하지만 이 구두가 ‘영국 정통 수제화’라는 타이틀을 달 수 있는 건 그 다음부터다. 안창과 밑창 사이 웰트(Welt·가죽틀)라는 걸 두고 기계를 이용해 세 부분을 한 번에 꿰매는 것. 이른바 ‘굿이어 웰트 제법’이다. 웰트가 있으면 구두가 묵직해지지만 내구성이 훨씬 커지고, 밑창만 교체가 쉬워 수명도 길어지는 장점이 있단다. 날씨가 변덕스러운 영국에서 탄생한 제법이다. 이후에는 형태가 잡힌 구두에 광을 내고, 세밀한 마무리를 하면서 한 켤레가 완성된다.  
공장에서 만난 장인들은 마치 가족처럼 친근해보였다. 동네 주민이 대부분인 데다, 구두에만 온 인생을 걸어온 동질성이 두드러졌다. 스티칭 세션에서 만난 안젤라 산드라도 그 중 한 명이다.  27년차 바느질 장인인 그는 “두 줄의 바느질을 일정한 간격으로, 코너 부분까지 정확하게 하기까지 10여 년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숙련된 장인이 많지 않아 고령자들은 재택 근무까지 하며 구두를 만든다고 했다.
구두 장인들. 20년 이상 경력을 지닌 이들이 대부분이다. [사진 처치스]

구두 장인들. 20년 이상 경력을 지닌 이들이 대부분이다. [사진 처치스]

바느질만이 장인의 영역은 아니었다. 스킨 룸에서 구두 가죽을 고르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앞코가 매끈한 플레인 토에는 흠집 하나 없는 송아지 엉덩이 부분을, 구멍 장식이 특징인 브로그에는 한 단계 등급이 낮은 가슴 부분을 쓰는데 이 안목을 쌓는 데만 5~7년이 걸린단다. 가죽을 클리킹할 때도 손실을 줄이기 위해 구두 모양별로 패턴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투어는 거의 2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매 과정마다 다 끝난듯 보였는데도 ‘다음’이 있었다. 250가지 공정이라는 말이 실감났다. 마무리 작업만도 10여 가지가 넘었다. 신발 바닥에 장식용 스탬프를 찍는 것부터 밑창을 가죽과 같은 색으로 페인팅하는 것까지 장인들의 손길을 거쳤다.  
처치스의 대표 제품인 섀넌 모델. [사진 처치스]

처치스의 대표 제품인 섀넌 모델. [사진 처치스]

드디어 완제품이 모여 있는 ‘패싱룸(Passing Room)’에 다다랐다. 판매 가능한 제품들을 선별하는 검수 공간인데, 100켤레 중 대개 3~4켤레는 누락된다. 구두 안쪽에 고유 번호가 있어서 그것만 보면 사이즈와 발볼, 구두 형태, 그리고 누가 만들었는지까지 알 수 있다. 
투어를 마치며 세르본에게 물었다. 이 모든 공정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가 무엇이냐고. 시끄러운 기계 소리를 뒤로 하고 그는 주저없이 검지 손가락으로 패싱룸 바닥을 가리켰다. “이곳이 완벽하지 않다면 구두 역시 완벽하다고 할 수 없겠죠.”
글(런던)=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사진=처치스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