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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정의 시선]대권 꿈꾼다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등잔 밑 참사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7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친 서울 종로구 '국일 고시원' 화재 참사가 발생한지 1주일이 지났다. 지난 15일 박원순 서울시장 집무실이 있는 시청 본관을 출발해 기자가 직접 걸어가 보니 화재 현장은 불과 1km 거리였다. 수도 서울의 사대문 도심 한복판이자, 매일 수천 명의 내외국인이 몰려드는 관광명소 청계천 바로 옆이었다. 무엇보다 1000만 서울시민 안전의 최종 책임자인 시장 집무실 코앞에서 후진적인 화재 참사가 일어났다.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국일 고시원 화재 참사 현장에 몰려온 희생자 유가족과 생존자들. 장세정 기자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국일 고시원 화재 참사 현장에 몰려온 희생자 유가족과 생존자들. 장세정 기자

 뒤처리하던 공무원들이 떠난 현장 주변에는 유가족과 생존자들이 몰려와 서성거렸고, 지나가던 시민들이 안타까움에 발걸음을 멈췄다. 희생자 장모(72)씨의 아들(33)은 지방에서 소식을 듣고 왔다면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였던 아버지와 몇 년째 연락을 못 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셨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시민들은 건물 앞에 국화꽃과 막걸리·소주병을 놓고 갔다. '집은 인권이다' '모든 건물에 스프링클러를' 등의 글귀도 남겼다. 가난한 일용직 노동자의 인명 피해가 유독 컸던 이번 참사를 계기로 지하방·옥탑방·고시원·쪽방촌·여인숙에 주로 거주하는 저소득층 주거 대책과 서울시의 무능 행정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넘쳤다.
국일 고시원 화재 참사 현장은 매일 수천명의 내외국인이 몰려드는 관광명소인 청계천 바로 옆이다.

국일 고시원 화재 참사 현장은 매일 수천명의 내외국인이 몰려드는 관광명소인 청계천 바로 옆이다.

 월세 5만원을 더 주고 창문 있는 방(월세 30만원)에 묵었기에 죽지 않았다는 박모(59)씨는 "공교롭게도 '소방의 날(11월 9일)'에 불이 났는데 그날 서울시 소방 공무원들의 복지부동 행태를 생생하게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소방관들이 출동하면서 매트리스도 들고 오지 않아 3층에서 가스 배관을 타고 가까스로 탈출했다. 화재 당시 소방관들은 적극적으로 물대포를 쏘지 않았고 비디오 촬영에 집중해 지켜보던 시민들이 항의할 정도였다"고 전했다.  
국일 고시원 화재 참사 현장을 찾은 시민들이 국화꽃과 '모든 건물에 스프링클러를'이란 글을 남겼다.

국일 고시원 화재 참사 현장을 찾은 시민들이 국화꽃과 '모든 건물에 스프링클러를'이란 글을 남겼다.

 3층에서 옆 건물 1층 지붕 위로 탈출한 한모(58)씨는 "출동한 소방관들이 소화전과 상수도 맨홀 뚜껑을 여는 데 10여분을 허비해 인명 피해를 키웠다. 고층 빌딩도 아닌 3층 건물 화재조차 제대로 못 잡았는데 무슨 대한민국 수도 서울이냐"고 반문했다. 그는 "화재 당일 오전 내내 현장을 지켜봤더니 박원순 시장은 형식적으로 얼굴만 내밀었을 뿐 정작 화재 진압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피해자들은 어떤 말을 하는지 제대로 챙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화재 당일 오전 박 시장은 잠시 현장을 찾아 레코드판 틀듯 '철저한 피해 수습'을 당부하고 돌아갔다. 이틀 뒤 서울시는 "국일 고시원 화재를 계기로 내년 2월까지 시내 고시원 5840곳과 소규모 건축물 1675곳을 안전점검한다"고 발표했다. 그리고는 끝이었다.  
지난 1월 7명이 화재로 숨진 서울 종로5가 서울장 여관 건물은 리모델링이 한창이었다.

지난 1월 7명이 화재로 숨진 서울 종로5가 서울장 여관 건물은 리모델링이 한창이었다.

 시계추를 9개월 전으로 되돌려보자. 지난 1월 20일 서울 종로5가역 부근 3층짜리 '서울장 여관'에서 방화로 박모(34)씨 세 모녀 등 투숙객 7명이 숨지고 3명이 다쳤다. 불난 곳은 동대문 서쪽 400m 지점으로 역시 사대문 도심이었다. 당시에도 박 시장은 자신의 트위터에 “종로5가 화재 현장에 다녀왔다”며 활동상을 홍보했지만, 근본 안전 대책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국일 고시원이 건축물관리 대장에 '고시원'이 아닌 '기타 사무소'로 등록된 것처럼 서울장 여관도 '숙박업소'가 아닌 '영업용'으로만 돼 있었고 불법 증축 사실이 드러났다. 이러니 화재 예방이나 안전 관리에 구멍이 숭숭 뚫릴 수밖에 없었다. 지난 15일 가봤더니 서울장 여관은 용도변경 신청 상태에서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었다. 참사 흔적만 지우면 안전한 서울이 저절로 구현될까.  
국일 고시원 화재 현장 앞 가로 판매점에 설치된서울시의 공공주택 확대 정책 홍보물.

국일 고시원 화재 현장 앞 가로 판매점에 설치된서울시의 공공주택 확대 정책 홍보물.

 지금도 종로·청계로·을지로·퇴계로 등 사대문 도심의 낡고 비좁은 뒷골목에는 제2의 국일 고시원과 서울장 여관이 안전 무방비 상태에서 시한폭탄처럼 시민의 생명을 노리고 있다. 그런데도 서울시는 안전 사각지대인 구도심을 제대로 정비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 전 시장의 치적이라는 이유로 뉴타운 개발은 줄줄이 해제했고, 재개발·재건축은 각종 규제로 사실상 동력을 잃었다. 대신 박 시장은 도시재생을 외치고 있지만, 어느 세월에 구도심을 안전하고 쾌적한 공간으로 탈바꿈시킬지 기약이 없다.
박원순 시장은 지난 여름 서울 강북구에서 옥탑방 체험을 했고 서울시는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중앙포토]

박원순 시장은 지난 여름 서울 강북구에서 옥탑방 체험을 했고 서울시는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중앙포토]

 2011년 10월 취임 이후 재임 7년이 지났지만, 시민들은 박 시장에게 감동의 박수를 선뜻 보내지 못한다. 옥탑방 체험 등 점수 따기 좋은 이벤트 홍보에는 적극적이지만, 정작 민생과 시민 안전을 꼼꼼하게 잘 챙긴다는 듬직함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일 고시원 화재 현장 바로 옆에 서울시가 노동존중을 내세우며 짓고 있는 '전태일 노동복합시설' 빌딩.

국일 고시원 화재 현장 바로 옆에 서울시가 노동존중을 내세우며 짓고 있는 '전태일 노동복합시설' 빌딩.

 '사상 첫 3선 서울시장'이란 타이틀에 걸맞게 이제 진짜 행정가로서 실질적 능력을 입증해야 한다. '노동 존중 특별시'를 표방하며 '전태일 노동복합시설'을 거창하게 짓기보다는 바로 그 건물 옆 국일 고시원의 창문 없는 어두운 방에서 일용직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잠잘 수 있게 해달라는 거다. 
박원순 시장 집무실(사진 왼쪽 6층)은 국일 고시원 화재 현장에서 불과 1km 거리다.

박원순 시장 집무실(사진 왼쪽 6층)은 국일 고시원 화재 현장에서 불과 1km 거리다.

 박 시장의 핵심 지지 세력이라는 민주노총 산하 서울교통공사 등 '귀족 노조'의 고액 연봉과 세습 일자리를 챙길 게 아니라 가난한 일용직 노동자들의 안전을 먼저 지켜달라는 거다. 차기 대권을 논하기 전에 박 시장은 '등잔 밑 시민 안전'부터 제대로 살펴야 한다.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장세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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