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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매우 부족한 증거에 옥죄인 법치와 경제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논설위원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논설위원

지난 5일 법원이 검찰을 준엄하게 꾸짖었다. 정현옥 전 고용노동부 차관과 권혁태 전 서울고용노동청장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하면서다. 법원은 “(범죄 혐의를) 뒷받침할 소명자료가 ‘매우’ 부족하다”고 했다. 혐의 사실을 놓고 다툼의 여지가 있다거나 증거인멸 우려를 따진 게 아니다. 법리적으로 다툴 필요도, 인멸할 증거 자료조차 없다는 말이다. 영장은 기각됐다. 정 전 차관 등은 삼성전자서비스의 불법파견을 은폐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검찰은 “노조 파괴의 빌미를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이 불구속기소를 했으니 법정에서 진위여부가 가려질 게다. 하지만 영장실질심사에 나타난 법원의 판단만 보면 검찰의 수사가 미진했거나 결론을 내놓고 끼워 맞추기식 수사를 했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고용부 직원들은 후자에 무게를 둔다. “노동사건은 법적 분쟁으로 번지지 않게 조정과 중재로 해결하는 대원칙을 견지해야 한다. 그에 따른 행정행위를 범죄로 옭아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항변과 함께다.
 
어디 증거가 불충분한 게 이뿐이랴. 경제 정책도 마찬가지다.  
 
“소득주도성장론은 논리적인 비약과 불완전성이 존재하고, 그 인과관계가 실증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가설”(박정수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이라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소득주도성장의 논리를 제공한 국제노동기구(ILO)의 논문은 “모든 나라가 소득주도성장을 채택해야 성공하는 전략”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정부는 검증되지 않은 가설을 실험하는 도구로 국가 경제를 택한 셈이다. 우리가 먼저 실행해 다른 나라의 동참을 끌어내는 ‘글로벌 경제 운전자’를 자처한 꼴이기도 하다. 한국이 그만한 능력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길도 없는 곳에서 검증 안 된 교본을 들고 운전교습을 하는 형국이다. 그러다 고용참사, 소비와 투자 급감과 같은 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그 와중에 다치는 사람은 국민이다. 치료비를 충당하려 빚만 잔뜩 내 부채에 허덕인다. 실험과 운전교습에 따른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15일 “고용상황이 엄중하지만 나아지는 부분도 있다”고 했다. “청년 고용률이 1.1%포인트 올랐다”는 부연설명을 하면서다. 진짜일까. 통계청 관계자의 해석은 영 딴판이다. “근로시간이 짧은 20대 취업자들이 많이 증가해” 발생한 착시 현상이란다. 안정적인 일자리에 신규 채용된 게 아니라 초단기 일자리에 변동이 생겨 호전된 것처럼 보인다는 얘기다. 초단타 투잡을 찾아 헤매는 ‘메뚜기 청춘’의 아픔을 “나아지는 지표”로 내세우는 정부를 어떻게 봐야 할까.
 
하기야 요즘 공직자 사이엔 이런 말이 돈다고 한다. “내년 1월까지만 버티면 된다. 올 2월부터 경제와 일자리가 죽을 쒔기 때문에 기저효과로 내년 2월부터는 통계상 수치가 오를 것이다. 조금만 일자리가 늘어도 올해 2월과 비교하면 엄청 증가하는 것처럼 보일 테니 말이다. 그게 통계”라는 헛헛한 분석이다. 어쩌다 이런 통계 분식과 착시효과에 기대야 할 만큼 무기력해진 걸까.
 
한데 이상한 건 증명 돼도 법과 원칙이 안 먹히는 영역이 있다. 기업 문 앞을 트럭으로 봉쇄해 생산품 납품을 막아도 아무 문제가 없다. 아파트 앞 보복 주차조차 거세게 비난하는 시대인데 말이다. 지방고용노동청과 자치단체장실, 심지어 검찰청사를 점거해도 처벌했다는 말은 안 들린다. 이를 두고 노동계로 비난을 집중한다. 한데 노동계만의 문제로 보는 건 주어가 빠진 느낌이다. 정부가 법을 무시해서 발생한 일이어서다. 그저 눈치를 본다기보다 치외법권 영역을 정해놓은 듯 짜맞추기식 법 집행이라 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다. 어쩌면 증명 안 된 가설형 국정과제의 여파일 수 있다.
 
국가 경제가 낙동강 전선에 몰렸다. 더 밀리면 안 되는데, 경제 수복은 가물가물하다. 불충분한 증거를 들이대는 정부에 휘둘린 기분이 드는 것 또한 착시일까.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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