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시론] 기적 같은 기회 살리려면 특단의 결단 필요하다

박제훈 인천대 동북아국제통상학부 교수·리셋 코리아 자문위원

박제훈 인천대 동북아국제통상학부 교수·리셋 코리아 자문위원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 연설에서 “한반도와 동북아의 공동 번영을 위한 역사적인 출발선이 눈앞에 와있다. 기적같이 찾아온 기회다. 결코 놓쳐서는 안 될 기회다”라고 말했다. 판문점선언 비준이나 남북 국회 회담 등에 대한 국회 차원의 협조를 구하는 의미일 것이다. 기적같이 열렸던 지난 6월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미 비핵화 협상은 지지부진하다. 문 대통령의 중재 역할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초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 이후 숨 가쁘게 달려온 비핵화 여정을 되돌아보고 원점에서 재검토해볼 시점이다.
 
이 기회를 살리려면 발상의 전환에 기초한 특단의 결단이 필요하다.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를 결심한 것은 기적 같은 결단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의 요청을 수락해 북·미 정상회담이 이루어진 것도 기적 같은 일이었다. 문 대통령도 이에 상응한 기적 같은 결단을 내려야 한다. 미국이 요구하는 한미동맹 우선과 한민족끼리라는 북한 노선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식의 중재 노력을 뛰어넘는 새 접근법이 필요하다.
 
미국 제일주의를 표방하는 트럼프의 미국을 우리 힘만으로 중재하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김정은이 시진핑과 세 차례나 정상회담을 한 것은 자기 힘만으로 미국을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기적 같은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면 북·미 비핵화 협상에만 매달리고 있을 수 없다. 비핵화 프로세스에 대한 다자적 접근 방식을 대안으로 제시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비핵화 협상이 진전될 경우 동아시아철도공동체 구상을 제안한 바 있다. 북·미 협상이 잘 진전되는 경우에도 결국 다자적 보장체제가 필요하다면 현시점에서 미리 준비할 필요가 있다. 양자 협상이 좌초하는 경우 예상되는 위기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시론 11/19

시론 11/19

근본적으로 비핵화는 결코 북·미 협상만으로 완료될 수 없다. 구체적으로 ‘비핵화 로드맵 작성을 위한 동북아지역협의체’ 구성을 제안하고 남북한과 미·중·일·러 및 유럽연합(EU)이 참가하는 다자적 비핵화 프로세스를 시작하는 것이다. 초기 단계에서는 한·미 비핵화 실무팀을 확대해 다자 실무 TF팀을 꾸리는 일부터 시작할 수 있다. 다자 협의체가 기존 6자회담과 다른 것은 북핵 폐기만이 아니라 경제 제재 완화나 비핵화 이후의 대북 경제협력 계획까지 논의하고, 장기적으로는 동북아에서 미·중 갈등 문제까지 협의하는 자리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문 대통령은 강제징용 배상 판결로 악화한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어 중·러 정상과의 회담을 통해 다자적 비핵화 프로세스에 대한 지지를 확보해야 한다. 패권 경쟁 양상을 보이는 미·중 갈등을 중재할 수 있는 나라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비핵화를 매개로 미·중 문제도 다자화할 수 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미국에 대해서도 비핵화 문제는 미·중 모두에 중요한 과제이고 비핵화가 좌초할 경우 미·중 갈등은 지금보다 훨씬 악화할 것을 강조하여 설득해야 한다. 비핵화는 우리로서는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가 나서서 미·중과 주변국을 논의의 장으로 불러 모을 명분이 있고 어렵더라도 기필코 그렇게 해야 한다. 언제까지 미·중 사이에서 눈치 보고 줄서기에만 급급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 비핵화 협상이 장기화하는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 상당 기간 지속할 ‘비핵화 이행기’를 상정해야 한다. 한반도에서 70년간 지속한 대결 상황이 몇 번의 정상회담으로 해소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비핵화 협상의 핵심에는 북·미와 남·북의 신뢰 문제가 있다. 신뢰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당사자들이 역지사지(易地思之)로 상호성 있는 실질적·구체적 조치들이 취해져야 한다. 이러한 조치들이 쌓여 어느 순간 ‘비핵화 불가역 지점’을 지나게 될 것이다. 이는 단순히 핵과 직접 관련되는 문제만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경제 사회적 모든 분야에서 기층적 상호 신뢰가 구축될 때 가능할 것이다.
 
셋째, 문 대통령이 지난 평양 방문에서 수십만 평양 시민 앞에서 북한의 비핵화를 김정은과 공개적으로 약속했기 때문에 북한이 비핵화의 루비콘 강을 건넜다고 청와대는 분석한다. 진정 루비콘 강을 건너려면 문 대통령이 내부에 눈을 돌려 비핵화 프로세스에 대한 국내 지지 기반을 확고히 해야 한다. 야당은 물론 비판 여론 집단과 밤을 새워서라도 비판을 듣고 설득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경제에서 포용정책을 강조하고 북한을 포용하는 것처럼 국내 반대 진영을 포용하고 더불어 같이 가려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기적같이 온 기회를 살리고, 진정한 기적이 오도록 하려면 먼저 자신을 낮추고 죽이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박제훈 인천대 동북아국제통상학부 교수·리셋 코리아 자문위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