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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만 3000켤레 이멜다 …'땅콩회항'의 원조?

 ※ [후후월드]는 세계적 이슈가 되는 사건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을 파헤쳐 보는 중앙일보 국제외교안보팀의 온라인 연재물입니다.
“그녀는 8년 간 매일 구두를 갈아 신었다고 한다. 하루도 같은 구두를 신은 적이 없다.”  
 
이 대목까지 듣고 누구의 이야기인지 바로 아셨다면, ‘올드 세대’ 인증입니다. 
맞습니다. 1980년대 세계 뉴스를 뒤흔들며 ‘3000켤레의 구두’라는 족적을 남긴, 페르디난드 마르코스(1917~1989) 필리핀 전 대통령의 부인 이멜다 마르코스(89)죠. 이 대사는 2003년 만들어진 그의 전기 영화 ‘이멜다(Imelda)’의 도입부에 등장하는 내레이션입니다.  
최근 부패 혐의로 77년형을 선고 받은 필리핀의 전 영부인 이멜다 마르코스. [EPA=연합뉴스]

최근 부패 혐의로 77년형을 선고 받은 필리핀의 전 영부인 이멜다 마르코스. [EPA=연합뉴스]

잊혀진 역사 속 인물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1929년생인 이멜다는 아흔이 가까운 현재까지 필리핀에서 4선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고 있거든요. 최근 그의 이름이 다시 필리핀 정국을 들썩이게 하고 있는데요. 필리핀 반부패 특별법원이 이번 달 9일 이멜다의 부패 혐의에 대해 최고 징역 77년을 선고하고 체포 영장을 발부한 겁니다. 남편인 마르코스 전 대통령이 집권 중이던 1970년대 이멜다가 마닐라의 주지사로 재직하면서 2억 달러(약 2264억 원)를 스위스 은행의 비밀 계좌에 예치하는 등 부정을 저질렀다는 혐의입니다. 
 
하지만 고령인 그의 보석 신청이 허용되면서 구속을 피했구요, 이멜다는 즉각 항소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따라서 지금까지 여러 차례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시간만 끌다 유야무야 면죄부를 받게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죠.  
 
#빼돌린 돈이 11조 #구두는 사실 1060켤레  
 
마르코스는 1965년 필리핀의 10대 대통령으로 당선돼 1986년 시민들이 들고 일어선 ‘피플 파워(People Power)’ 혁명으로 권좌에서 물러나기까지 21년 간 대통령 자리에 있었습니다. 마르코스 정권이 출범할 당시 필리핀은 아시아의 경제를 이끄는 선도 국가로 빠르게 성장하는 중이었죠. 하지만 마르코스 정권이 추진한 국가 주도 경제발전 계획은 방만한 재정 지출을 초래했고, 극심한 정경유착과 부정부패로 필리핀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1986년 필리핀 시민들이 마르코스 대통령과 부인 이멜다의 초상화를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1986년 필리핀 시민들이 마르코스 대통령과 부인 이멜다의 초상화를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이 부정부패의 중심에 있던 것이 마르코스 부부였습니다. 1972년 마르코스 대통령은 장기 집권을 위해 계엄령을 선포하고 반대파들을 본격적으로 탄압하기 시작했는데요. 이 과정에서 수만 명이 투옥되거나 탄압을 받았죠. 국민의 입을 틀어 막고 국가 사업을 독점하면서 마르코스 대통령 부부가 부정 축재한 재산은 무려 100억 달러(약 11조 320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3000켤레의 구두’가 전세계에 알려진 건 1986년 이들이 국민들의 거센 저항에 굴복해 권력을 내려놓고 미국 하와이로 도피한 후였습니다. 부부는 서둘러 도망치면서도 미군 수송기 두 대에 다이아몬드와 금괴, 현금, 옷과 귀금속 등을 가득 실어 갔다고 전해지는데요. 그 와중에 챙겨가지 못한 물건들이 대통령 관저 말라카낭궁에 남아 있었던 겁니다. 
이멜다의 구두. [중앙포토]

이멜다의 구두. [중앙포토]

피플지에 따르면 대부분은 이멜다의 의복과 장신구들로, 35벌의 밍크 코트와 1200벌의 드레스, 1500개의 핸드백과 검은 브래지어 500여 장 등이었습니다. 구두는 페라가모, 샤넬, 크리스찬 디오르, 지미추 등 명품 브랜드를 총망라했고, 3000켤레로 알려졌지만 2200~7500켤레까지 다양한 숫자가 언론에 등장했습니다. 타임지는 이후 이멜다가 남긴 구두의 수는 정확히 1060켤레였다고 보도하기도 했죠.
 
마르코스를 권좌에서 끌어낸 코라손 아키노(1933~2009) 대통령은 이 구두들을 이멜다의 사치를 보여주는 증거물로 국립박물관에 전시합니다. 현재 일부는 국립박물관에, 일부는 2001년 문을 연 마닐라의 마리키나 구두박물관에 남아있습니다. 
 
#초강력 카리스마 #비틀스를 떨게 한 여자      
 
하지만 필리핀에서 이멜다의 이미지는 단순한 ‘사치의 여왕’은 아니었습니다. ‘강철 나비(iron butterfly)’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로 상상을 초월하는 에너지와 물욕, 권력욕으로 나라 전체를 휘저었는데요. 레이테 지역에서 자란 그는 어려서부터 뛰어난 미모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성인이 되어 마닐라로 올라온 후 1953년엔 미스 마닐라 선발대회에 출전해 우승은 하지 못하고 ‘마닐라의 뮤즈’로 선발됐습니다. 
20대의 이멜다 마르코스. [중앙포토]

20대의 이멜다 마르코스. [중앙포토]

1954년 국회에서 일하는 친척을 만나러 국회의사당에 갔다가 12살 연상인 정치인 마르코스를 만나 11일 만에 결혼한 스토리는 유명합니다. 원래 부잣집 자제였던 마르코스는 이멜다에게 매일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하며 구애했다고 전해지고요, 프로포즈는 “대통령 부인이 되고 싶지 않습니까”였다네요.    
 
1964년 대통령 선거 당시에는 빈민가를 가가호호 방문하는 등 소탈한 모습을 보여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1972년 계엄령이 내려진 후에는 공직으로 본격 진출합니다. 마닐라시 시장(1976~1986), 복지부 장관(1978~1984) 등을 역임했고, 특임대사 권한으로 전세계를 돌며 외교 활동을 벌이기도 했죠. 닉슨, 레이건, 마오쩌둥, 카다피 등이 한때 이멜다가 ‘좋은 친구’라고 표현했던 사람들입니다.    
마르코스 필리핀 전 대통령 부부. [사진 영화 '이멜다' 캡처]

마르코스 필리핀 전 대통령 부부. [사진 영화 '이멜다' 캡처]

이멜다 전기나 관련 기사를 읽다 보면 ‘이게 사실이라고?’ 싶은 에피소드가 수두룩합니다. 해외 순방을 가면 쇼핑 가방 수백 개를 들기 위해 수행원 50여 명이 따라다녔다거나, 호텔 벨보이에게 당시 돈으로 100달러씩 팁을 줬다는 이야기 등입니다. 전설처럼 내려오는 에피소드 중 하나가 국내 한 재벌가의 ‘땅콩회항’을 떠올리게 하는 ‘치즈회항’ 사건인데요. 1970년대, 이탈리아 로마에서 마닐라로 돌아오던 필리핀 에어라인에 탑승한 그가 비행 도중 갑자기 기장에게 로마로 돌아갈 것을 명령했다고 하죠. 이유는 “로마에서 치즈 사는 것을 깜박해서”였습니다.   
린든 B 존슨 미국 전 대통령과 춤을 추는 이멜다. [사진 존 F 케네디 박물관]

린든 B 존슨 미국 전 대통령과 춤을 추는 이멜다. [사진 존 F 케네디 박물관]

‘비틀스 스캔들’이란 것도 있습니다. 1966년 최고 인기였던 비틀스는 서독과 일본, 그리고 필리핀을 도는 월드투어에 나서는데요.(당시 필리핀의 국제적 지위가 이 정도였습니다) 이멜다는 필리핀에 도착한 비틀스를 자신의 개인 파티에 초청했다가 거절을 당합니다. 그러자 TV에 나와 “낙심했다”며 눈물을 흘렸고, 다음날 이멜다의 지지자들이 호텔과 공항으로 몰려들어 거세게 항의했습니다. 
 
비틀스는 가까스로 공항에 도착했지만 이멜다의 지시로 에스컬레이터는 중지됐고, 경호요원 등은 자취를 감춘 상태였죠. 비틀스는 이후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고 당시 상황을 회고했습니다.    
 
#질긴 생명력 #두테르테의 비호
  
이멜다는 지금도 필리핀 국민들에게 극심한 애증의 대상입니다. “마르코스는 용서해도 이멜다는 용서 못한다”며 이제라도 죄 값을 치르길 바라는 이들이 대다수인 반면, 마르코스 가문의 텃밭인 레이테와 일로코스 노르테 등의 지역에서는 아직도 높은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문제는 독재자 마르코스가 물러난 후에도 필리핀의 경제와 빈부격차 문제 등이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인데요. 이런 상황이 ‘누가 되도 마찬가지’라는 좌절과 함께 과거 마르코스 정권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겁니다.     
마르코스의 딸인 이메 마르코스 일로코스 노르테 주지사. [AP=뉴시스]

마르코스의 딸인 이메 마르코스 일로코스 노르테 주지사. [AP=뉴시스]

남편이 하와이에서 사망한 후 이멜다는 아키노 대통령의 허락을 받아 1991년 필리핀으로 돌아옵니다. 오자마자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가 떨어지고, 이후 레이테와 일로코스 노르테 등에서 연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됐죠. 현재 일로코스 노르테 주지사는 딸 이메 마르코스이고, 아들 마르코스 주니어도 2010년 상원의원에 당선된 후 2016년엔 부통령 선거에 출마하는 등 정치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필리핀의 ‘과거 청산’이 이토록 어려운 또 하나의 이유는 현직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이 마르코스 전 대통령을 ‘롤모델’로 여기며 이멜다 가족을 감싸고 있기 때문입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지난 해 테러 단체 소탕을 이유로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 섬에 계엄령을 선포하면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계엄령 당시가 좋았다”고 말해 사람들을 경악케 했죠. 2016년 11월에는 마르코스의 시신을 국립영웅묘지로 이관하는 것을 허용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16일 마닐라 시민들이 이멜다의 구속을 요구하며 시위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16일 마닐라 시민들이 이멜다의 구속을 요구하며 시위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역사는 반복되나 #‘말레이판 이멜다’ 
 
이런 이멜다과 꼭 닮은꼴로 최근 뉴스를 장식하고 있는 인물이 있습니다. 지난 5월 총리직에서 물러난 나집 라작 전 말레이시아 총리의 부인 로스마 만소르(67)인데요. 나집 전 총리는 지난 2009년 설립한 국영투자기업 1MDB를 통해 45억 달러(약 5조원)에 달하는 나랏돈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한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부인인 만소르도 남편 재임 중 자금 세탁 등을 통해 19억 상당의 이익을 챙긴 혐의로 최근 말레이 검찰에 기소됐죠.
말레이시아의 고발 블로그에 올라온 나집 라작 전 총리의 부인 로스마 만소르의 모습. 수천만원대를 호가하는 에르메스 버킨백을 색깔별로 들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고발 블로그에 올라온 나집 라작 전 총리의 부인 로스마 만소르의 모습. 수천만원대를 호가하는 에르메스 버킨백을 색깔별로 들고 있다.

이멜다가 구두에 집착했다면 만소르는 ‘에르메스백’을 닥치는 대로 모았습니다. 지난 6월 검찰의 가택 수색에서 3000억 원에 육박하는 사치품과 보석이 나왔는데, 이 중 핸드백만 567개에 달했다고 합니다. 특히 이 중 272개가 에르메스 버킨백이었다고 하네요. 그나마 검찰이 인도네시아로 도주하려는 나집 부부에게 즉각 출국 금지 조치를 내렸고, 마하티르 모하맛(93) 총리가 철저한 수사를 강조하고 있다 하니 필리핀보다는 조금 나은 상황이라고 봐야 할까요.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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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멜다 마르코스, 그가 궁금하다!

알면 알수록 무시무시한 이 사람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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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 이멜다 마르코스가 필리핀에서 역임한 직책이 아닌 것은?

정답 : 3번 부통령 ( )

Q2 : 1986년 마르코스 대통령이 하와이로 도피한 직후 필리핀 대통령이 된 사람은?

정답 : 1번 코라손 아키노 ( )

Q3 : 1966년 공연차 필리핀을 찾았다가 이멜다에게 호되게 당한 그룹은?

정답 : 2번 비틀스 ( )

Q4 : '말레이판 이멜다'로 불리는 나집 라작 전 총리 부인 로스마 만소르가 가장 많이 모은 가방은?

정답 : 4번 에르메스 버킨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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