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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치료비 70원, 소들이 어슬렁…로힝야 난민촌의 응급실

 
방글라데시 동남부 콕스바자르 지역의 로힝야 난민촌과 인근 주민 거주지를 살펴보면서 느낀 점은 국제인도주의 기구들이 하는 사업이 상당히 다양하다는 점이다. 흔히 생각하는 식량과 기초 생필품, 임시 거처를 제공하는 일은 그야말로 기본에 불과했다. 지난해 8월 이후 미얀마에서 방글라데시로 탈출하거나 추방된 72만 명과 이전에 들어온 사람을 포함해 모두 120만 명의 로힝야 난민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물품이나 사업은 한둘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들 난민의 다량 유입으로 생활에 불편을 겪는 현지 주민들을 다독이는 사업도 사회 안정을 위해 필요할 수밖에 없다.
 방글라데시 동남부 콕스바자르의 로힝야 난민촌에서 국제적십자사(ICRC)의 지원으로 의족을 얻고 재활치료를 받아 혼자 이동할 수 잇게 된 한 난민이 의족을 보여주고 있다. 무플 위에 약봉지가 보인다. 현장에서 만난 국제인도주의 기구 요원들은 난민촌에서 수많은 사업을 벌이며 '사람 사는 세상'에 한걸음이라고 더 다가가려고 애쓰고 있었다. 우상조 기자

방글라데시 동남부 콕스바자르의 로힝야 난민촌에서 국제적십자사(ICRC)의 지원으로 의족을 얻고 재활치료를 받아 혼자 이동할 수 잇게 된 한 난민이 의족을 보여주고 있다. 무플 위에 약봉지가 보인다. 현장에서 만난 국제인도주의 기구 요원들은 난민촌에서 수많은 사업을 벌이며 '사람 사는 세상'에 한걸음이라고 더 다가가려고 애쓰고 있었다. 우상조 기자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콕스바자르 사무소의 오마르 샤리프 공보관은 "우리가 펼치는 사업은 오랜 국제 인도주의 활동의 결과 생긴 노하우와 현장 대응력, 그리고 현지 실정을 감안한 맞춤형 사업 기획력에 바탕을 두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ICRC의 사업은 과학적·체계적·계획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효율성을 계속 점검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현장을 둘러봤더니 국제인도주의 기구들은 난민과 주민을 동시에 지원하면서 참으로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었다. 그 중에서 ICRC의 현장 요원들과 동행하며 난민과 주민을 만나보면서 진행 중인 사업 프로그램을 살펴봤다.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지역에서 유일한 응급의료센터의 응급실 모습. 시설과 장비, 물품이 태부족이었다. ICRC는 응급시 개선작업을 시작하고 있었다. 우상조 기자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지역에서 유일한 응급의료센터의 응급실 모습. 시설과 장비, 물품이 태부족이었다. ICRC는 응급시 개선작업을 시작하고 있었다. 우상조 기자

  
현지인 보건의료 사정도 열악
콕스바자르 지역은 12만 명이 이상의 주민이 사는 곳이기도 했다. ICRC는 이들을 돕는 사업에 상당한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들도 난민만큼 열악한 경제·사회적 환경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현지 보건의료 사정을 파악하기 위해 지역 응급센터를 방문했더니 상당히 열악함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현장을 함께 방문한 ICRC 콕스바자르 사무소의 병원 프로젝트 담당자인 바버라 텀벌은 "이곳이 콕스바자르 유일의 응급의료시설"이라고 말했다.   
소나기가 내린 직후에 도착한 응급센터는 입구와 그 주변이 온통 진창으로 변해 있었다. 인근 도로가 포장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응급의료센터 입구에선 한쪽 다리가 없는 중년 남성이 목발을 짚고 센터를 나서는 모습, 할머니가 손가락에 피 묻은 붕대를 둘둘 감은 채 다른 여성 두 명의 부축을 받고 나가는 모습이 각각 눈에 들어왔다. 5층짜리 건물에 들어서니 바닥이 흙으로 지저분했다. 보안 사무실은 설치돼 있었지만 잠겨 있었고 보안 요원도 보이지 않았다.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지역에서 유일한 응급의료센터의 복도에는 병실 부족으로 복도 바닥에 깐 이불 위에 누워 링거액을 맞는 환자들로 가득했다. 우상조 기자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지역에서 유일한 응급의료센터의 복도에는 병실 부족으로 복도 바닥에 깐 이불 위에 누워 링거액을 맞는 환자들로 가득했다. 우상조 기자

1층 응급실을 찾았더니 먼지가 잔뜩 묻은 채 반쯤 열린 창문이 보였다. 의사 한명과 남자 간호사 3명이 근무하고 있었는데 가운도 입지 않고 일반 복장이었다. 현지 ICRC 직원을 통해 물었더니 하얀 가운을 입는 것은 필수 규정이 아니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내부에는 에어컨도 통풍시설도 없었다. 천정에서 돌아가는 팬이 유일한 냉방 겸 환기 장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냉장고도 없었고 수납장 안은 텅 비어 있었다. 필수적인 소독약이나 의약품 응급수술 도구는 보이지도 않았다. 청바지 차림의 간호사들이 시트도 없는 이동식 병상에 앉은 환자에게 붕대를 감아주는 모습이 보였다. 
방글라데시 동남부 치타공(차토그람)의 재활센터에서 의족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곳에선 난민들을 위한 의족을 제작하고 이들에게 재활훈련도 시키고 있다. 우상조 기자

방글라데시 동남부 치타공(차토그람)의 재활센터에서 의족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곳에선 난민들을 위한 의족을 제작하고 이들에게 재활훈련도 시키고 있다. 우상조 기자

 
진료비 사실상 무료이지만…     
응급실 바깥의 복도는 바닥에 담요를 깔고 누워있는 환자와 보호자로 가득했다. 직원들에게 물어보니 입원실은 250병상밖에 없는데 현재 600명의 환자가 병원에 있다고 했다. 병상이 아닌 바닥에 누워 입원하면서 빈 병상이 나오기만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병상을 얻지 못한 환자는 복도와 통로에 빡빡하게 이불이나 담요 깔고 누워있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병원에 전기는 들어오지만 두 대의 승강기 중 하나는 가동을 하지 않고 있었다. 승강기 문 앞에 두 명의 환자가 나란히 이불을 깔고 누워서 수액을 맞고 있었다. ICRC 콕스바자르 사무소의 공보담당 무함마드 잠쉐는 "의료비는 무료에 가까워 진료비가 1인당 3다카~5다카(약 42~70원)에 불과하다"라고 알려줬다. 공급 능력이 따라가지 못하는 무상의료의 현실이었다. 복도 벽에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이 병원을 지원했다는 표시가 보였다.  
응급센터 뒷문 쪽에 가봤더니 한 여성 환자가 철제 이동 병상에 누운 채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로힝야 난민촌에서 후송된 환자였다. 환자가 들어간 곳을 보니 ‘신장 투석실’이라는 표식과 ‘로힝야 진료소’라는 새 표식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뒷문 양옆으로 보호자로 보이는 남자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 앞으로 소가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콕스 바자르에는 시내에도 소가 어슬렁거렸다. 송아지를 데리고 다니는 어미소가 시내 도로를 막는 일도 다반사였다. 현지인들에게 물어봤더니 모두 주인이 있는 소이며 방목해 키운다고 한다.  
 
병원을 병원답게 만드는 지원사업    
함께 병원을 돌아본 ICRC 병원 프로젝트 담당자 텀벌은 “현재 ICRC의 지원으로 응급실 리노베이션을 준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뒷문 근처에 있는 빈 공간을 찾았더니 벽에 벽돌을 쌓고 바닥을 시멘트로 바르고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뉴질랜드 간호사 출신인 텀벨은 “의료센터에 제대로 된 응급실을 만들고 그 운영을 지원하면 지역주민들과 난민들 모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목적을 설명했다. 병원을 병원답게 만드는 지원 프로그램이다.  
ICRC 콕스바자르 사무소 공보담당인 잠쉐는 “의료 시설과 장비를 보강하면서 지역주민들에게 국제인도주의기구가 자신들에게도 도움을 준다는 인상을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로힝야 난민의 유입으로 지역주민들이 반감을 갖지 않도록 세심하게 노력하는 현장이었다.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지역에선 ICRC의 소액 대출 연결 사업으로 빌린 돈으로 작은 사업을 시작해 수입원을 얻은 주민이 적지 않았다. 현지 소년이 이를 통해 구입한 송아지를 보여주고 있다. 우상조 기자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지역에선 ICRC의 소액 대출 연결 사업으로 빌린 돈으로 작은 사업을 시작해 수입원을 얻은 주민이 적지 않았다. 현지 소년이 이를 통해 구입한 송아지를 보여주고 있다. 우상조 기자

‘소액 대출’로 난민촌 주변 주민 생활 개선 사업  
이런 노력은 의료를 비롯한 굵은 사업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ICRC는 지역 사회에 직접 뛰어들어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노력도 병행하고 있었다. ‘경제 안전’이라는 개념의 인도주의 활동 프로그램이다. 이웃 미얀마에서 로힝야 난민이 국경을 넘어 들어오면서 생활환경이 악화된 지역 주민 대상의 지원 사업이 중심이다. 난민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현지 주민 마을들을 방문했더니 적지 않은 주민이 ICRC가 소개한 소액 대출(마이크로 크레딧)로 생활을 개선하고 있었다. 현장을 안내한 ICRC 콕스바자르 사무소의 경제안전 담당인 이멜트 차크라는 "경제 안정이 곧 사회 안정"이라고 설명했다. 
한 장년의 여성 농민의 농촌 주택을 방문했더니 대출받은 돈으로 소를 사서 키워 우유를 팔고 있었다. 로힝야 난민들이 자신의 땅에 들어와 임시 거처를 짓고 사는 바람에 경제적으로 피해를 본 이 농민은 우유를 판 수입으로 생활의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이 여성은 “비행사가 되는 싶은 중학생 아들이 꿈을 이루도록 뒷바라지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며 “우유를 계속 팔고 송아지도 얻으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거리가 없었던 한 동네 청년은 소액 대출로 작은 찻집을 차려 운영하고 있었다. 차와 함께 과자, 삶은 달걀 등 주전부리를 파는 가설 시설이다. 동네 어귀에 설치된 그의 찻집은 마을 사람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것은 물론 인근에서 활동하는 국제인도주의 기구 요원들의 쉼터가 되고 있었다. 이 청년은 “한동안 방황했던 내 삶이 이제 안정을 찾고 있다”라고 말했다.  

지난봄에 결혼했다는 한 신혼의 청년은 소액 대출로 두 대의 손수레를 구입해 사업을 벌이고 있었다. 주민이나 구호단체, 심지어 난민의 부탁을 받고 손수레로 물품을 운반하거나 아예 빌려주고 돈을 받는 사업이다. 이 청년은 손수레를 보이면서 "이를 바탕으로 사업을 벌이는 나 자신이 자랑스럽다”며 “갓 결혼한 부인과 앞으로 태어날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지역의 난민촌에서 로힝야 난민이 운영하는 약국. 진열된 의약품들의 깔끔한 포장이 눈길을 끈다. 우상조 기자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지역의 난민촌에서 로힝야 난민이 운영하는 약국. 진열된 의약품들의 깔끔한 포장이 눈길을 끈다. 우상조 기자

 
경제 안정이 곧 사회 안정
ICRC의 경제안전 담당 차크라는 “난민 거주용으로 농지를 내준 현지 농민이 제법 있고,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청년층이 불만을 가질 우려도 있다”며 “소액 대출을 활용해 주민 생활을 개선하는 사업을 벌임으로써 난민 유입으로 인한 사회적 불만을 줄이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차크라는 “소액 대출로 재봉틀을 사서 의복을 수선하거나 봉제 일을 하는 사람도 상당수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재봉틀 일은 서민들이 소액 대출로 시작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과거 한국의 삯바느질과 일맥상통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액 대출 시작한 유누스 교수 노벨평화상
소액 대출은 사실 방글라데시가 원산이다. 치타공(현지어로 차토그람) 대학 경제학 교수인 무함마드 유누스가 빈곤 퇴치를 목적으로 1976년 시작한 금융 사회사업이다. 소득 하위 25%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담보물이나 보증인 없이 150달러 미만의 소액을 낮은 이자로 빌려줘 장기간에 걸쳐 조금씩 갚도록 하는 제도다. 서민들은 이렇게 번 돈으로 작은 사업을 벌여 생계 수단을 확보할 수 있다.  
유누스는 1983년 소액 대출을 전문으로 하는 그라민 은행을 직접 설립했다 이 은행은 현재 2568개의 지점에서 2만138명의 직원이 일하면서 16억 달러의 자산을 운용하는 거대 사회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유누스의 그라민 은행이 시작한 소액 대출 제도는 빈곤층의 자립과 자활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는 획기적인 제도로 평가받아 전 세계에 확산했다. 그 결과 유누스는 2006년 노벨평화상을 받았으며 그해 서울평화상을 받기 위해 한국을 방문해 당시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기도 했다. 경제적 안정은 사회 안정과 평화를 지키는 힘으로 평가받은 셈이다.  
이러한 소액 대출 제도는 로힝야 난민을 돕는 ICRC를 비롯한 국제인도주의 기구도 이처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로힝야 난민촌이 위치한 콕스바자르는 치타공 주 관할이어서 소액 대출의 본고장이기도 하다.  
방글라데시 치타공(차토그람)의 직업훈련센터에서 재봉틀 일을 배우는 현지 여성, 소액 대출을 받아 자기 사업을 시작하는 방글라데시 서민들에게 재봉틀 일은 가장 인기가 높다. 우상조 기자

방글라데시 치타공(차토그람)의 직업훈련센터에서 재봉틀 일을 배우는 현지 여성, 소액 대출을 받아 자기 사업을 시작하는 방글라데시 서민들에게 재봉틀 일은 가장 인기가 높다. 우상조 기자

 
난민 이산가족 연결 사업도
ICRC는 로힝야 난민을 대상으로 이산가족 연결 사업도 펼치고 있었다. 방글라데시 적신월사의 자원봉사자들과 펼치는 사업이었다. 자원봉사자들은 로힝야족과 언어가 통하는 치타공주 지역의 대학생과 대학원생이 대부분이었다. 치타공 출신인 ICRC 공보담당 무함마드 잠쉐는 “로힝야 난민은 방글라데시의 표준어인 벵골어로는 대화가 어렵고 치타공 지역의 사투리로는 70~80% 정도 통한다”고 설명했다. 일부 대학생은 난민들이 몰려오자 휴학까지 하고 이들을 돕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돕고 있다.  
난민촌 한복판에 대나무를 엮어 만든 작은 가설 마을회관이 사업의 중심지였다. 이들이 난민촌 전역에 연결된 스피커를 통해 상담을 시작한다고 알리자 가족을 잃은 난민들이 하나둘 찾아왔다. 난민촌에는 전기가 공급되지 않지만, 석유를 이용하는 발전기를 돌려 생산한 소량의 전기로 스피커를 가동하고 있었다. 스피커는 무슬림인 로힝야 난민들에게 기도 시간을 알려주기 위한 용도로 설치됐지만 이러한 사업 안내에도 이용되고 있었다.
로힝야 난민은 황급히 미얀마를 떠나야 했기에 가족끼리 서로 헤어진 경우가 적지 않다. 게다가 난민촌에 머무는 난민은 공식적으로는 방글라데시 휴대전화를 쓸 수 없다. 비공식적으로 구해서 쓰기도 하지만 수량도 많지 않고 경제적 부담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자원봉사자들이 휴대전화를 이용해 난민과 미얀마에 남은 가족을 연결해준다. 다행히 국경을 넘어 다른 수용소에 사는 가족이나 친척을 찾은 경우는 그나마 '행복한 눈물 바다'를 이룬다.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의 로힝야족 난민촌에서 국제적십자사(ICRC) 현장 요원들과 현지 적신월사 자원봉사자들이 이산가족 찾기를 위한 신청과 상담 작업을 위해 난민들을 면답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의 로힝야족 난민촌에서 국제적십자사(ICRC) 현장 요원들과 현지 적신월사 자원봉사자들이 이산가족 찾기를 위한 신청과 상담 작업을 위해 난민들을 면답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다른 지역에 사는 가족 친여러 군데 수소문해서 가족을 찾아주는 경우도 많다. 문제는 미얀마에 남은 사람도 집을 떠나 ‘국내 난민’으로 뿔뿔이 흩어진 경우가 많아 전화 연결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대학원을 휴학하고 방글라데시 적신월사의 자원봉사자로 일하고 있는 마무드 라흐만은 "드물게 로힝야족의 본거지인 국경지대 미얀마 라카인주가 아닌 대도시에 사는 가족 친척과 연결이 되기도 하지만 많은 편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의 로힝야족 난민촌에서 국제적십자사(ICRC) 요원들과 현지 적신월사 자원봉사자들이 이산가족 찾기를 위한 신청을 받고 있다. 우상조 기자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의 로힝야족 난민촌에서 국제적십자사(ICRC) 요원들과 현지 적신월사 자원봉사자들이 이산가족 찾기를 위한 신청을 받고 있다. 우상조 기자

 
가족 구금된 경우 ICRC가 국제법 집행
더욱 나쁜 경우는 가족이나 친척이 미얀마에서 당국에 의해 구금시설에 갇힌 경우다. 이런 경우는 ‘난민 이산가족 연결 사업’을 넘어 ICRC의 인도주의 사업, 또는 인권 사업의 대상이 된다. 155년 전인 1863년 스위스의 사회활동가 앙리 뒤낭(1828~1910년)이 창설한 ICRC는 원래 전쟁·내란을 비롯한 무력분쟁에서 전상자·포로·민간인 등을 보호하기 위해 설립된 중립적인 인도주의 단체다. 
한국 ICRC 사무소의 박지해 공보관은 "ICRC는 국제협약에서 이런 임무를 공식 부여한 유일한 국제 인도주의 기구"라며 밝혔다. 박 공보관은 "설립 이듬해인 1864년 성립된 1차 제네바 협약부터 1949년의 4차 협약까지 제3조에 ‘ICRC에 이런 서비스를 제공할 권리를 부여한다(It grants the ICRC the right to offer its services to the parties to the conflict)고 명문화돼 있다"라고 소개했다.  
그래서 콕스바자르의 로힝야 난민을 통해 가족이나 친척이 미얀마에 구금돼 있다거나 일을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얻으면 미얀마 양곤의 ICRC 사무소를 통해 이를 확인하는 작업을 진행한다고 한다. 구금자가 확인되면 미얀마 당국에 요청해 양곤 사무소 직원이 면담하고 미얀마 당국에 인권 보호를 요청하게 된다. 로힝야 난민촌 한복판에서 국제 인도주의법과 인권법을 집행하는 사업이 이렇게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이런 과정에서 ICRC는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 중립적인 입장에서 사업을 진행한다.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의 로힝야 난민촌에서 한 난민이 국제적십자사(ICRC)에서 지원 받아 차고 있는 의족을 보여주고 있다. 정기적으로 재활 훈련을 받아온 그는 현재 목발 없이도 혼자서 걸어다닐 수 있는 수준이다. 우상조 기자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의 로힝야 난민촌에서 한 난민이 국제적십자사(ICRC)에서 지원 받아 차고 있는 의족을 보여주고 있다. 정기적으로 재활 훈련을 받아온 그는 현재 목발 없이도 혼자서 걸어다닐 수 있는 수준이다. 우상조 기자

 
‘다중의 고통’ 장애인 난민에게 재활프로그램  
ICRC는 로힝야 난민촌 한복판에서 신체재활프로그램(PRP) 센터를 운영하고 있었다. 대나무와 방수포로 지은 가설 시설이었다. ICRC는 이곳에서 로힝야 난민 장애인을 대상으로 의족과 재활훈련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곳에서 만나 두 장애인 난민은 “이 프로그램 때문에 난민촌 여기저기를 혼자 걸어 다니며 일거리를 찾을 수 있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각각 지뢰와 공장에서의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었다는 이들은  ICRC가 맞춤형으로 제공한 의족을 받은 뒤 치타공에 있는 재활센터로 가서 재활 훈련을 한 결과 혼자서 보행이 가능하게 됐다.  
집을 직접 찾아가서 만난 한 로힝야 난민 장애인은 미얀마에서 살 때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잃었다. 미얀마에 살 때 집안에서 재봉틀을 돌려 동네 사람의 의복을 수선하며 생계를 이었다. 그는 “미얀마에서 추방될 때는 죽기 살기로 무릎으로 기면서 국경을 넘었다”라고 말했다.

황급히 쫓겨나는 과정에서 생계수단인 재봉틀은 들고 올 수 없었다. 다행히 난민촌에서 지내는 동안 방글라데시 적신월사를 통해 독지가가 기증한 재봉틀을 하나 얻을 수 있었다. 문제는 난민촌엔 아는 사람이 적어 일거리를 확보할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일거리를 떼와야 하는데 두 다리가 없어 ‘이동성’을 확보하지 못해 ‘영업’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런데 ICRC에서 찾아와 의족을 맞춰주고 재활 훈련까지 시켜주면서 ‘미래’가 생겼다. 난민과의 통역을 도운 ICRC 복스바자르 사무소의 무함마드 잠쉐 공보담당은 “로힝야 언어에는 ‘희망’이란 단어가 없고 ‘미래’라는 말에 그 뜻이 포함돼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 난민은 의족을 차고 난민촌을 조금씩 돌아다니며 이웃 사람들과 사귀고 있었다. 앞으로 재봉틀을 돌려 의복을 수선하는 일을 조금씩 하면서 돈도 모을 ‘미래’를 생각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방글라데시 치타공(차토그람)의 재활센터에서 만난 로힝야 난민 어린이가 좋아하는 배구공을 의족으로 밟고 있다. 난민촌에서 교통사고로 발을 잃었다. 원래 꿈인 축구선수 대신 남을 돕는 의사가 되는 꿈을 키우고 있었다. 우상조 기자

방글라데시 치타공(차토그람)의 재활센터에서 만난 로힝야 난민 어린이가 좋아하는 배구공을 의족으로 밟고 있다. 난민촌에서 교통사고로 발을 잃었다. 원래 꿈인 축구선수 대신 남을 돕는 의사가 되는 꿈을 키우고 있었다. 우상조 기자

 
난민 어린이 장애인에게 미래의 꿈을  
ICRC의 재활 프로그램 담당자인 마푸즈 라흐만은 “재활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며 "처음에 무척 우울했던 이들이 웃음을 되찾는 것을 보기만 해도 보람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라흐만과 동행해 치타공의 ICRC 재활 프로그램 현장을 찾았다. ICRC가 난민들에게 제공하는 의족을 직접 제작하고, 이를 착용한 난민들이 걸을 수 있도록 재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거점이다.  
그곳에서 만난 한 로힝야 난민 소년은 난민촌에서 고통사고로 무릎 아래를 잃은 상태였다. 이 난민 소년은 ICRC가 제공한 의족을 차고 한 달째 걷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재활 훈련장에 있는 배구공을 발로 차면서 그렇게 즐거워할 수가 없었다. 통역을 통해 소년과 대화를 시도했더니 “원래 호나우두나 메시 같은 축구선수가 되고 싶었는데 이제는 생각이 바뀌어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의사가 되고 싶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울기는커녕 명랑하게 미래를 이야기하는 천진난만한 아이의 눈망울을 들여다 보다가 그만 눈시울에서 왈칵 뜨거운 것이 쏟아지고 말았다.  
전 세계에 이런 안타까운 사연이 어디 여기뿐이랴. 그나마 국제인도주의 기구의 활동과 그 요원들,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의 활동이 있어 비극을 이 정도로나마 봉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에 더해 이런 비극을 원천적으로 막거나 해결하는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노력이 절실한 때다.  
 
채인택 국제전문 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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