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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한 연주, 현대적이야

an die Musik : 지휘자 조지 셀 
조지 셀이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 바이올리니스트 오이스트라흐와 함께 연주한 브람스의 ‘이중 협주곡’ 음반. 셀이 최만년에 한 녹음이다.

조지 셀이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 바이올리니스트 오이스트라흐와 함께 연주한 브람스의 ‘이중 협주곡’ 음반. 셀이 최만년에 한 녹음이다.

사진만 봐도 포스가 물씬 풍긴다.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 바이올리니스트 오이스트라흐와 팔짱을 끼고 중간에 서서 여유롭게 미소 짓는 사내. 세계 최고의 두 소련 연주자를 동생처럼 감싸 안는 이는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지휘자 조지 셀이다. 1969년 5월 세 사람은 브람스의 ‘이중 협주곡’ 녹음을 하면서 이 사진을 남겼다. 셀은 이듬해에 타계했다.  
 
클리블랜드라는 도시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해 봤다. 미국 동북부 이리(Erie)호 남쪽 연안이다. 철광석·석탄 산지와 가까워 중공업이 발달했고, 강과 호수를 끼고 있어 수상교통의 요지가 됐다고 한다. 인구는 40만 정도. 특별한 뉴스가 없으면 세상 사람들이 주목할 일이 없는 곳이다. 야구선수 추신수가 클리블랜드 유니폼을 입었을 때 이 도시의 이름을 가끔 들어봤다. 
 
헝가리 출신 지휘자 조지 셀은 이런 도시를 미국의 ‘빅 5’ 반열에 오르게 했다. 물론 ‘좋은 오케스트라’ 보유 기준이다. 나머지 네 도시는 세계 문화의 중심 뉴욕, 아름다운 건축의 진열장 시카고, 하버드대학이 있는 보스턴, 한때 미국의 수도였던 필라델피아다. 모두 클리블랜드와는 비교를 거부할만한 도시들이다. 하지만 조지 셀은 이 도시의 오케스트라를 맡아 ‘빅 5’를 넘어 미국 최고라는 찬사까지 받았다. 비결은 간단했다. 악마처럼 굴며 단원들을 무자비하게 조련하는 것이었다.  
 
그가 취임한 뒤 단원의 2/3가 오케스트라를 떠났다. 셀의 기준에 미달한 단원과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제 발로 걸어 나간 이들을 합한 숫자다. 새로 창단하다시피 한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는 셀의 단련 아래 투명하고 정확한 앙상블로 완성도 높은 연주를 하는 단체로 거듭났다. 단원뿐 아니라 협연자들도 지휘자가 만족할 때까지 연습을 거듭해야 했다. 셀이 삐에르 푸르니에/베를린 필과 연주한 드보르작의 첼로협주곡은 명반으로 유명한데, 거장 푸르니에는 셀이 진행한 리허설을 꼼짝없이 소화했다고 한다. 브람스의 이중 협주곡을 협연한 로스트로포비치와 오이스트라흐도 카메라 앞에서 활짝 웃고 있지만, 녹음 세션에서 무슨 일을 당했는지는 알 수 없다.  
 
오랜만에 셀의 음반을 꺼내 본 것은 최근 모임에 갈 때마다 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이다. 셀의 연주가 각광을 받기 시작하고 음반이 비싸게 거래되며 값이 빠르게 오른다고도 했다. 증권시장에서 뜨는 유망주 정보를 듣는 것 같았다. 실제로 확인해 보니 영국 컬럼비아 레코드의 베토벤 교향곡 9번 초반은 가격이 하늘을 훨훨 날고 있었다.  
 
셀의 연주는 완벽을 추구한다. 현악은 일체감이 탁월하고 관악은 정확하다. 이런 정밀함이 현대인의 취향에 맞는지도 모른다. 기록 영상을 통해 그가 소리를 빚어내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베토벤 5번 교향곡 리허설이 있다. 포디엄에 우뚝 선 사내는 1악장 후반 관현악의 총주가 가파르게 상승하는 곳에서 오케스트라를 향해 소리친다. “Suspense! No Crescendo! Suspense!”(긴장! 소리를 죽여! 긴장!). 오케스트라는 셀의 지휘봉을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데 차곡차곡 쌓이는 음향은 폭발 직전의 긴장감으로 현기증이 난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소리가 차갑고 감동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는데, 셀은 “예술은 난잡하거나 무질서하지 않다”고 응수했다.  
 
신세계백화점은 1989년 새 심볼마크를 발표하며 고객들에게 LP를 선물했었다. 지구레코드에서 제작한 음반은 한국 가곡과 드보르작의 ‘신세계교향곡’을 실었다. 그런데 이 교향곡이 조지 셀과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의 연주다. 셀은 많은 명반을 남겼지만 신세계교향곡도 첫 손에 꼽힌다. 덕분에 이 증정용 음반은 아직도 중고시장에서 거래된다. 집에 있다면 버리지 말고 들어보시길. 불붙은 얼음을 보는 듯하다.  
 
 글 최정동 기자 choi.jeongd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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