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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으로 불렸던 유대인 소녀를 안고 있는 히틀러

1933년 유대인 소녀 로사 버닐 니나를 다정하게 안고 있는 아돌프 히틀러. [AP=연합뉴스]

1933년 유대인 소녀 로사 버닐 니나를 다정하게 안고 있는 아돌프 히틀러. [AP=연합뉴스]

600만 유대인을 학살했던 아돌프 히틀러가 유대인 소녀를 안고 있는 사진이 경매에서 1만1520달러(약 1300만원)에 낙찰됐다.
 
15일 CNN에 따르면 주로 역사적 물품들을 취급하는 미국 경매장 알렉산더 히스토리컬 옥션에서 신원을 밝히지 않은 국제 구매자가 이 사진을 낙찰받았다.  
 
사진 속 유대인 소녀는 ‘지도자의 아이’라고 알려진 로사 버닐 니나다. 이 소녀는 히틀러의 ‘애인’으로 불리기도 했다고 CNN은 전했다.  
 
니나와 히틀러는 그의 생일파티에서 만났다. 생일이 4월 20일로 같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두 사람은 가까워졌다.  
 
사진은 1933년 여름 히틀러의 별장에서 찍은 것이다. 사진에는 “친애하는 로사 니나에게. 아돌프 히틀러가. 1933년 6월 16일”이라는 히틀러의 친필이 적혀있다.  
 
흥미로운 점은 니나의 외할머니가 유대인이기 때문에 나치 치하에서는 니나 역시 유대인으로 분류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히틀러는 니나가 유대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에도 친밀한 관계를 이어갔다.  
 
사진은 히틀러의 개인 사진사인 하인리히 호프만이 찍었다. 알렉산더 히스토리컬 옥션의 안드레스 콘펠드 부회장은 “몇 달간 사진의 진위를 조사했으며, 히틀러를 아이를 사랑하는 선한 이미지로 홍보하는 것이 사진의 목적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호프만은 단순한 사진가가 아닌 히틀러의 훌륭한 마케팅 담당자였다”고 평가했다.
 
두 사람은 1938년 히틀러의 부하가 둘 사이의 편지를 중단시킬 때까지 17통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히틀러는 5년간 7차례 이상 니나와 사진을 찍기도 했다. 두 사람의 만남이 금지되고 5년 뒤 니나는 척추 소아마비로 인해 17세의 어린 나이에 목숨을 잃었다.  
 
알렉산더 히스토리컬 옥션에 히틀러 관련 물품이 경매 물품으로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에는 히틀러가 2차 세계대전 후반부 2년 동안 자신의 명령을 전달하는 데 사용했던 전화기가 24만3000달러(약 2억7400만원)에 낙찰됐었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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