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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군이 만지다 "쾅"…조선 시한폭탄 비격진천뢰 무더기 출토

조선시대에 조성한 전북 고창 무장현 관아와 읍성(사적 제346호)에서 조선 시한폭탄인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가 무더기로 나왔다.   매장문화재 조사기관인 호남문화재연구원은 무장읍성에서 발굴조사를 진행해 수혈(竪穴·구덩이) 유적과 주변 퇴적토에서 비격진천뢰 11점을 발견했다고 15일 밝혔다. [호남문화재연구원 제공] [연합뉴스]

조선시대에 조성한 전북 고창 무장현 관아와 읍성(사적 제346호)에서 조선 시한폭탄인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가 무더기로 나왔다. 매장문화재 조사기관인 호남문화재연구원은 무장읍성에서 발굴조사를 진행해 수혈(竪穴·구덩이) 유적과 주변 퇴적토에서 비격진천뢰 11점을 발견했다고 15일 밝혔다. [호남문화재연구원 제공] [연합뉴스]

 조선시대의 첨단무기인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가 전북 고창에서 무더기로 출토됐다. 조선 선조 때 발명된 비격진천뢰는 화포에 장전해 발사하면 목표물에 날아가 천둥번개 같은 굉음·섬광과 함께 수많은 파편을 쏟아내며 폭발하는 무기다. 우리나라 최초의 시한폭탄으로 꼽힌다. 
 이번에 나온 비격진천뢰는 11점. 모두 비교적 온전한 상태로 크기는 지름 21cm, 무게는 17~18kg의 비슷한 규모다. 이처럼 많은 비격진천뢰가 한꺼번에 나온 것은 처음이다. 그동안 파악된 비격진천뢰는 모두 6점으로, 그중 1점은 보물 제680호로 국립고궁박물관에 있다.  
조선시대에 조성한 전북 고창 무장현 관아와 읍성(사적 제346호)에서 조선 시한폭탄인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가 무더기로 나왔다.   매장문화재 조사기관인 호남문화재연구원은 무장읍성에서 발굴조사를 진행해 수혈(竪穴·구덩이) 유적과 주변 퇴적토에서 비격진천뢰 11점을 발견했다고 15일 밝혔다.[호남문화재연구원 제공] [연합뉴스]

조선시대에 조성한 전북 고창 무장현 관아와 읍성(사적 제346호)에서 조선 시한폭탄인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가 무더기로 나왔다. 매장문화재 조사기관인 호남문화재연구원은 무장읍성에서 발굴조사를 진행해 수혈(竪穴·구덩이) 유적과 주변 퇴적토에서 비격진천뢰 11점을 발견했다고 15일 밝혔다.[호남문화재연구원 제공] [연합뉴스]

 비격진천뢰가 나온 곳은 사적 제346호 고창 무장현 관아와 읍성. 호남문화재연구원(원장 윤덕향)이 발굴조사를 통해 조선시대 훈련청·군기고로 추정되는 건물터를 비롯해 10여개 건물터와 구덩이, 도로시설 등도 확인했다. 비격진천뢰가 나온 구덩이 가까이에서 포대 시설도 확인했다. 무더기로 나온 비격진천뢰는 1894년 동학농민운동 당시 관군이 묻어둔 게 아니냐는 추정도 나오고 있다. 
조선시대에 조성한 전북 고창 무장현 관아와 읍성(사적 제346호)에서 조선 시한폭탄인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가 무더기로 나왔다.   매장문화재 조사기관인 호남문화재연구원은 무장읍성에서 발굴조사를 진행해 수혈(竪穴·구덩이) 유적과 주변 퇴적토에서 비격진천뢰 11점을 발견했다고 15일 밝혔다[호남문화재연구원 제공] [연합뉴스]

조선시대에 조성한 전북 고창 무장현 관아와 읍성(사적 제346호)에서 조선 시한폭탄인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가 무더기로 나왔다. 매장문화재 조사기관인 호남문화재연구원은 무장읍성에서 발굴조사를 진행해 수혈(竪穴·구덩이) 유적과 주변 퇴적토에서 비격진천뢰 11점을 발견했다고 15일 밝혔다[호남문화재연구원 제공] [연합뉴스]

 비격진천뢰는 조선 선조 때 화포장 이장손이 처음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왕조실록 선조수정실록에는 임진왜란 초기인 1592년 경상좌병사 박진이 이를 이용해 경주성을 되찾은 승리가 기록돼 있다. "밤에 몰래 군사를 다시 진격시켜 성 밖에서 비격진천뢰를 성 안으로 발사하여 진 안에 떨어뜨렸다. 적이 그 제도를 몰랐으므로 다투어 구경하면서 서로 밀고 당기며 만져보는 중에 조금 있다가 포가 그 속에서 터지니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고 쇳조각이 별처럼 부서져 나갔다. 이에 맞아 넘어져 즉사한 자가 20여 명이었는데, 온 진중이 놀라고 두려워하면서 신비스럽게 여기다가 이튿날 드디어 성을 버리고 서생포로 도망하였다." 유성룡의 『징비록』에도 비슷한 내용이 실려있다.  
 고창 무장현 관아와 읍성은 조선 태종 때인 1417년 왜구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고창군이 2003년 복원정비 기본계획을 수립한 이후 연차적으로 발굴조사가 진행돼 왔다.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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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