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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처리업체에 '셀프' 수질검사 맡겼더니…5년간 2만번 조작

경기도 포천의 한 공공하수처리장에서 방류한 물이 포천천으로 흘러가고 있다. 천권필 기자

경기도 포천의 한 공공하수처리장에서 방류한 물이 포천천으로 흘러가고 있다. 천권필 기자

15일 경기도 포천시의 A공공하수처리장.
 
하수 처리 과정을 거친 물이 처리장 앞을 지나는 포천천으로 쉴새 없이 흘러 들어갔다.
 
이곳에서는 4만여 명의 포천 시민이 쓰고 버린 2만2000여 t(톤)의 생활하수를 매일 처리한다. 
 
처리장 안에서는 질소와 인 등 녹조를 일으키는 오염물질들이 미생물과 약품을 통해 걸러지고 있었다. 처리장에 설치된 수질원격감시장치(Tele Monitoning System, 이하 TMS)는 방류수가 오염되지 않았는지를 한 시간 단위로 측정하고 있었다.
 
포천의 A공공하수처리장에서 생활하수를 처리하고 있다. 천권필 기자

포천의 A공공하수처리장에서 생활하수를 처리하고 있다. 천권필 기자

A하수처리장을 운영하는 위탁업체가 이 TMS 장비를 5년 동안 2만 번 넘게 조작해 온 사실이 드러났다.

 
환경부는 지난 5월부터 9월까지 환경사범 기획수사를 통해 포천시 A하수처리장 등 전국 8곳의 공공 하·폐수처리장을 적발하고 관계자 26명을 최근 검찰에 송치했다고 15일 밝혔다.

 
이번에 적발된 A하수처리장의 위탁운영업체는 총질소(T-N) 항목 값이 방류수 수질기준(20㎎/L)의 70%에 접근하면 TMS의 측정 상수인 ‘전압값’을 낮췄다.
 
‘영점 전압값’을 낮추면 측정값이 실제 농도보다 낮게 측정되기 때문에 방류수 오염도가 실제보다 낮은 것처럼 조작할 수 있다.
 
이 업체는 이런 방식으로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총 2만여 차례에 걸쳐 측정치를 조작했다.
 
이 위탁운영업체는 ‘전압값’을 바꾸면 변경 이력 정보가 자동 저장되는데, 이를 피하기 위해 일반모드에서 변경 이력이 남지 않는 ‘비밀모드’로 바꾸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하지만, 하수처리장을 관리·감독하는 한국환경공단과 환경부는 TMS에 비밀모드가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위탁운영업체는 이 같은 조작으로 수질 정화비용을 아끼는 등 5년간 총 30억 원의 부당이득을 취했다. 
 
김현 환경부 환경조사담당관실 사무관은 “그동안 TMS 수치를 조작한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비밀모드를 사용한 건 한 번도 발견되지 않은 신종 수법이다 보니 5년간 밝혀내지 못했다”며 “겨울철에는 온도가 떨어지면서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미생물의 활동이 저하되다 보니 질소 오염도를 낮추기 위해 수치를 조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파주 상수원인 임진강 오염시켜
포천의 A공공하수처리장에서 방류한 물이 포천천으로 유입되고 있다. 천권필 기자

포천의 A공공하수처리장에서 방류한 물이 포천천으로 유입되고 있다. 천권필 기자

한국환경공단은 데이터 조작 방지를 위해 TMS실 출입문 개폐 여부를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있다.
 
하지만 위탁운영업체 직원이 출입문이 아닌, 창문으로 들어가 하루에도 몇 번씩 TMS를 조작해 온 것으로 이번에 드러났다. 그만큼 TMS의 관리가 허술했던 셈이다.
   
이렇게 5년 동안 오염 수치가 조작된 방류수는 한탄강을 거쳐 경기도 고양·파주시민의 식수원인 임진강까지 유입됐다.
 
환경부 환경조사담당관실은 A하수처리장에서 확보한 측정기기 저장장치에 대한 디지털포렌식(Digital forensic) 수사 등을 통해 측정기기에 남아있는 ‘전압값’ 변경 이력의 자료를 확보해 조작 사실을 밝혀냈다.
 
이에 대해 A하수처리장 소장은 “TMS 업체로부터 관리자 모드가 있다는 얘기를 들어서 알게 됐다”면서도 “측정값에 오차가 있다 보니 편의상 영점 값을 조정한 것일 뿐 오염된 물을 방류하기 위해서 고의로 수질을 조작한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조석훈 환경부 수질관리과장은 “A하수처리장처럼 비밀모드가 있는 TMS 기기를 사용한 수도권과 강원도의 67개 하·폐수처리장에 대해 전수조사를 진행하고 있다”이라고 말했다.
 
한국환경공단 수질관제팀에 따르면 현재 수질 TMS를 설치한 시설은 전국적으로 961곳이다.
전국 공공하수처리장과 폐수종말처리장과 일반 사업장 가운데 하루 오·폐수 처리량이 700톤이 넘는 경우 의무적으로 TMS를 설치해야 한다.
또, 배출허용기준치를 초과한 폐수를 방류하다 적발된 하루 처리량 200톤 이상의 사업장도 TMS를 설치해야 한다. 
 
오염된 하수, 깨끗한 물과 몰래 바꾸기도
B폐수처리장 위탁운영업체는 측정시료를 미리 준비한 깨끗한 물이 담긴 약수통과 바꿔치기했다. [사진 환경부]

B폐수처리장 위탁운영업체는 측정시료를 미리 준비한 깨끗한 물이 담긴 약수통과 바꿔치기했다. [사진 환경부]

이번 수사에서는 시료 바꿔치기 등 다양한 수법을 통해 수질을 조작한 사실도 확인됐다.
 
전남 나주시 산하 B폐수처리장의 위탁운영업체는 총인(T-P) 농도가 방류수 수질기준(0.3㎎/L)을 초과할 우려가 있을 경우, 미리 준비한 깨끗한 물이 담겨 있는 약수통과 측정 시료를 바꿔치기하는 방법으로 수질 TMS를 조작해 단속을 피했다.

  
경북 영천시 산하 C폐수처리장 위탁운영업체는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4월까지 방류수 수질기준을 초과할 우려가 있을 경우, TMS 측정기기를 점검 중으로 변경한 후 시료를 바꿔치기하는 수법으로 총 25회에 걸쳐 측정값이 방류수 수질기준을 초과하지 않도록 조작했다.
  
옥천군 산하 F하수처리장의 위탁운영업체는 처리 과정을 거치지 않은 하수를 빗물 맨홀로 방류하는 수법으로, 6년간 총 1600여 회에 걸쳐 약 18만t(톤)의 미처리 하수를 하천으로 무단 방류했다.

 
이처럼 수질 조작이 빈번하게 발생한 것은 하수처리장 위탁업체가 수질 TMS까지 직접 관리하도록 ‘셀프 검증’을 맡겼기 때문이다.
 
환경부는 2016년부터 하수처리장 위탁업체도 기술인력요건만 갖추면 측정기기관리대행업을 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이로 인해 현재 전국 하수처리장 1000여 곳 중 절반가량은 위탁업체가 직접 TMS 관리까지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조 과장은 “하수처리장 운영과 측정기기 관리를 같이 하다 보니 운영에서 문제가 생기면 측정기기를 조작하고 싶은 유혹이 생기는 게 사실”이라며 “법 개정을 통해 하수처리장 운영과 측정기기 관리를 분리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수질기준 초과 6억 원, 조작은 5000만 원
한강 잠실수중보. [중앙포토]

한강 잠실수중보. [중앙포토]

솜방망이 처벌이 수질 조작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있다.
 
A하수처리장 위탁업체의 경우 방류수 수질기준을 초과하도록 방치하면 1년에 최대 6억 원의 운영비가 감액된다. 조작 사실이 적발될 경우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만 내면 된다.
 
위탁업체들이 하수 처리 비용을 아끼기 위해 고의로 수질 측정치를 조작했다는 의혹도 제기되는 이유다.
 
마재정 환경부 환경조사담당관은 “지속적인 단속에도 불구하고 수질 TMS 측정기 조작행위 등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관리대행사가 TMS를 조작했을 때 지자체로부터 얻는 상대적 이익이 적발 시 받게 되는 벌금 등의 불이익보다 몇 배나 크기 때문”이라며 “앞으로 미세먼지와 폐기물, 유해화학물질 등 사회적으로 민감한 오염물질 배출 분야에 대해서는 환경특별사법경찰단의 수사 등을 확대하고 중대 환경범죄사범의 처벌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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