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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실리콘밸리의 아버지’ 터만 박사, 직접 한국과학원 설립 도와

1970년 3월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한 당정협의회에서 남덕우 재무부 장관의 절묘한 해법 제시로 통과된 한국과학원(KAIS, 현 KAIST) 설립안은 그 뒤 일사천리로 추진됐다. 정부는 그해 4월 경제과학 심의위원회가 KAIS 설립을 확정했고, 과학기술처가 마련한 ‘한국과학원법’은 국무회의를 거쳐 7월 16일 국회를 통과하고 8월 7일 시행에 들어갔다.

김학렬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왼쪽에서 둘째, 1923~72년, 재임 69~72년)이 경제부처장과 함께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중앙포토]

김학렬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왼쪽에서 둘째, 1923~72년, 재임 69~72년)이 경제부처장과 함께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중앙포토]

이토록 신속한 의사결정과 업무처리는 당시 김학렬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1923~72년, 재임 69~72년)의 지원과 김기형 초대 과학기술처 장관(1925~2016년, 재임 67~71년)의 적극적인 노력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김 부총리는 부산상업학교와 일본 주오(中央)대 출신으로 50년 제1회 고등고시에 합격해 재무부 장관과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 경제기획원 장관을 지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입안하고 ‘한강의 기적’을 이끈 경제 관료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김학렬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중앙포토]

김학렬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중앙포토]

김 장관은 서울대 공대 화학공학과를 마치고 61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구대(현 영남대)와 경희대 교수, 국제대(현 서경대) 학장을 맡아 후학을 양성했다. 80~90년대 과학기술재단과 KAIST의 이사장, 한국과학기술한림원 부원장을 맡아 헌신했다. 
KAIS 설립은 70년 1인당 국민소득 257달러의 대한민국에서 ‘과학기술 입국(立國)’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사건이라고 형가한다. 과학기술 입국은 가난에서 벗어나겠다는 국민, 부강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관료, 그리고 과학기술인의 염원과 의지가 합쳐진 것이라 믿는다. 
1970년 8월 당시 이재철 과학기술처 차관과 정근모 박사가 미국 국제개발처(USAID)의 한국과학원(KAIS) 설립 타당성 조사를 위해 입국한 프레데릭 터만 박사를 영접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사진 정근모 박사]

1970년 8월 당시 이재철 과학기술처 차관과 정근모 박사가 미국 국제개발처(USAID)의 한국과학원(KAIS) 설립 타당성 조사를 위해 입국한 프레데릭 터만 박사를 영접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사진 정근모 박사]

이런 과정에 진행되는 동안 뉴욕 공대로 돌아가 있던 나는 미국 국제개발처(USAID)의 요청으로 석 달 뒤 다시 귀국했다. 오리건대 대학원장 출신의 도널드 베네딕트 박사와 함께 KAIS 설립 타당성을 조사하기 위한 선발대였다. 공교롭게도 도착한 날이 한국과학원법이 국회를 통과한 바로 다음 날이었다. USAID가 지원 타당성 조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한국 정부와 국회는 KAIS 설립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을 말끔히 마무리했다. 한 마디로 한국이 먼저 의지를 보여준 셈이다.  
 '실리콘 밸리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레데릭 터만 스탠퍼드대 부총장 겸 공대 학장. [사진 스탠퍼드대]

'실리콘 밸리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레데릭 터만 스탠퍼드대 부총장 겸 공대 학장. [사진 스탠퍼드대]

그로부터 약 한 달 뒤인 8월 중순엔 USAID 조사단 본진이 한국을 방문했다. KAIS 설립 가능성을 검토하고, 필요한 자문을 하기 위한 조사가 목적이었다. 조사단에는 쟁쟁한 인물이 포함됐다. 단장인 프레데릭 터만(1900∼1982년) 스탠퍼드대 부총장과 조사단원인 토머스 마틴(1921~2009년) 서던 메소디스트대 부총장은 전자공학자였다. 마틴은 그 뒤 74~87년 13년 동안 시카고에 있는 일리노이 공대(IIT) 총장을 지낸 인물이다. 화학자로 미국 무기통제국 부국장 출신의 프랭크린롱(1910~90)년 코넬대 전 부총장도 동행했다. 
가장 주목할 인물은 터만 단장이다. 그는 나중에 ‘실리콘 밸리의 아버지’로 불리면서 혁신의 아이콘으로 통한 엔지니어이자 과학기술 교육·행정 전문가였다. 한국 과학기술계에 혁신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황수연 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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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