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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팅·게임하며 음악 한 곡 뚝딱, 예술이 별건가요

모듈러 신디사이저 앞에 선 태싯그룹은 ’각기 다른 모듈을 조합해 자신만의 악기를 만들 수 있다“며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이진원·박규원·장재호.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모듈러 신디사이저 앞에 선 태싯그룹은 ’각기 다른 모듈을 조합해 자신만의 악기를 만들 수 있다“며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이진원·박규원·장재호.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소리를 볼 수 있을까. 21세기 새로운 예술을 만들겠다는 비전을 가지고 출발한 태싯그룹은 음악을 보여주고 영상을 들려주고자 노력해온 미디어아트 팀이다. 2008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테크놀러지학과 교수와 대학원생으로 만나 팀을 결성한 장재호(49)와 이진원(48)은 이제 같은 학교에서 수업을 하며 함께 작품을 만들고 무대에 오르는 사이가 됐다.
 
이들이 선보이는 예술은 형태를 규정짓는 모든 종류의 속박을 가뿐히 뛰어넘는다. 이들에게 음악은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연주하기보다는 음을 설계하는 과정을 즐기는 것에 가깝고, 영상은 미지의 세계를 상상해서 구현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예술과 기술,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를 쉼 없이 오가며 기존에 본 적 없는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17일 서울 논현동 플랫폼엘에서 열리는 10주년 기념공연을 앞두고 합정동 작업실에서 만난 태싯그룹은 “머리로 만들고 가슴으로 즐길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이디어를 내고 알고리즘을 짜고 코딩을 하고 문제점을 수정하는 등 하나의 시스템을 만들기까지는 족히 수개월의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를 보고 듣는 사람만큼은 부담 없이 즐길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다.
 
장재호는 자신들이 하는 음악을 풍경(風磬)에 비유했다. “저희가 하는 일은 풍경을 만들어서 처마 끝에 달아놓는 거예요. 그다음부터 음을 조합하는 것은 바람이 하는 일이잖아요. 만든 사람도 그 소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모르고. 결과를 만들어낸다기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는 작업이죠.”
 
무대 위에서 ‘게임 오버’를 연주하고 있는 태싯그룹. 테트리스 게임 진행에 맞춰 음악이 연주된다.

무대 위에서 ‘게임 오버’를 연주하고 있는 태싯그룹. 테트리스 게임 진행에 맞춰 음악이 연주된다.

‘훈민정악’이나 ‘게임 오버’가 대표적인 작업이다. 각각 한글 음소와 테트리스 블록마다 음을 입혀서 연주자 6명이 노트북을 들고나와 채팅을 하고 게임을 하면 그대로 한 곡이 완성되는 식이다. 스크린을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채팅창 혹은 게임판이 곧 이 즉흥곡의 악보가 되는 셈이다. 연주자와 관객 사이에 ‘무언의(tacit)’ 합의를 통해 함께 만들어 가는 무대이기도 하다.
 
“처음엔 라이브 코딩을 해 보자고 해서 시작했어요. 그러다 왜 꼭 영어로 해야 하나, 한글로 해보자 이렇게 발전이 된 거죠. 실제로 해보니 한글엔 초성, 중성, 종성이 있어서 결합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엄청 많더라고요. 2011년 덴마크 오르후스 페스티벌에 갔을 때 영어로도 해봤는데 알파벳은 나열식이어서 그 맛이 안 나요.”(이진원)
 
“한글이 건축적으로 구성돼 있어서 소리를 쌓기도 좋고, 모양 자체가 기하학적이어서 보는 재미도 있어요. 2012년 미국 링컨센터에서 공연할 때는 글자가 예쁘니 알파벳으로 바꾸지 말자고 하더라고요. 한국 관객과 달리 한글을 모르니 공감대 형성이 덜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금방 규칙성을 이해하더라고요. ‘게임 오버’도 처음 연주를 시작할 땐 대부분 관객이 저희가 진짜 게임을 하고 있는지 몰라요. 여섯 명 중 한 두 명이 게임에서 죽으면 그때부터 눈치를 채는 거죠.”(장재호)
 
두 사람의 서로 다른 음악적 배경도 도움이 됐다. 서울대 작곡과를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 왕립음악원에서 전자음악을 공부한 장재호가 클래식에 정통했다면, 이진원은 미국 뉴욕을 기반으로 퍼프대디·본조비 등 앨범 작업에 참여해온 엔지니어이자 ‘가재발’이라는 이름으로 테크노 앨범을 발표한 대중음악 작곡가였다. 이진원은 방시혁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대표와 함께 바나나걸 프로듀서로 활동하기도 했다.
 
“스스로 남들과 되게 다르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테크노에 끌렸던 것도 그 전까지 음악에서 통용되던 공식이 없어서였거든요. 바나나걸 ‘엉덩이’도 사실 저희가 만든 오리지널 버전은 사람들이 어려워했어요. 클럽에서 DJ들이 리믹스한 버전이 뜬 거죠. 원래 시혁이랑 둘이 밴드 하자며 각자 강아지 이름을 따서 ‘오알’이라고 이름도 정했었는데 또 새로운 걸 해보고 싶더라고요.”(이진원)
 
누군지도 모르고 들었던 필립 글래스, 칼하인츠 슈톡하우젠 등의 미니멀리즘 음악은 태싯그룹의 지향점이 됐다. 테리 라일리의 ‘인 씨(In C)’나 스티브 라이히의 ‘드러밍(Drumming)’ 같은 미니멀리즘을 대표하는 현대음악에 전자음을 입히고 리듬을 바꾸며 예측 불가능한 변주를 시도하는 토대가 되어준 것이다. 장재호는 “서로 양극단에 있어서 훨씬 매력적이었다”며 “중간지점에서 만나 다양한 실험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럼 이들에게 음악과 영상 중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무엇일까. 이는 음악을 소비하는 플랫폼이 점차 음원에서 동영상으로 옮겨 가고, 듣는 것만큼 보는 것이 중요해진 상황에서 많은 창작자들이 품고 있는 고민이기도 하다. “저희에게 영상은 음악의 구조를 보여주는 의미예요. 오디오와 비주얼이 유기적 관계를 통해 하나의 창작물이 되길 바라는 거죠.”(장재호)
 
“오히려 어떻게 하면 음악을 더 잘 들려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많아지는 것 같아요. 80년대보다 지금이 더 ‘비디오 킬 더 라디오 스타’인 상황이잖아요. 10년 동안 활동하면서 자신감도 얻었지만, 체력 부족이나 아이디어 고갈로 더이상 할 수 없을 때가 올까 봐 두렵기도 해요.”(이진원)
 
인터뷰에 동석한 객원 멤버 박규원(30)은 “태싯그룹 덕에 오디오비주얼 시장 자체가 확장되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 성공을 보고 따라오는 사람이 있어야 그 신이 넓어질 수 있잖아요. 제가 2009년 공연을 보고 한예종에 들어와 함께 하고 있는 것처럼 2014년 시작한 오디오비주얼 축제 ‘위사(WeSA) 페스티벌’을 통해 유입되는 층도 있거든요. 그 발자취를 잘 이어나가고 싶습니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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