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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훈의 퍼스펙티브] 우왕좌왕 한국당의 복지정책 … 공존·연대의 리더십 절실

보수와 복지
차가운 겨울로 가는 길목, 3평 안의 죽음과 3조원의 부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우리의 분노를 자극한다. 종로 고시원 3평짜리 쪽방 안 사소한 화재가 최약자층의 쓸쓸하고도 허망한 죽음으로 이어졌다. 복지 그물망 밖에서 7명의 빈곤층이 소리 없이 스러져가는 동안 같은 땅 위에서 3조8000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돈이 무상보육이라는 이름 아래 줄줄 새고 있었다.
 
먼저, 3평 안 죽음에 대한 분노는 복지 예산 160조원 시대에도 여전히 최저임금, 최저 주거복지의 보호막 밖에 놓인 약자들의 곤궁한 삶에 대한 감성적 분노이다. 허망한 죽음과 더불어 이들은 빈곤 통계로부터 재빨리 지워진다. 두 번째 분노는 매년 수십조원씩 복지 예산을 늘려봐야, 결국 일부 탐욕스러운 이들의 지갑만 불릴 뿐이라는 납세자들의 차갑고 이성적인 분노이다. 유치원은 세금 누수라는 거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복지국가 딜레마 : 감성적 분노와 합리적 분노
 
일찍이 복지국가의 딜레마와 씨름해온 선진국들은 두 가지 상이한 분노를 이른바 ‘오코너의 역설’로 정리한 바 있다. 오코너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복지국가라는 안전장치 없이 유지되기 어렵다. 하지만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방만해지기 쉬운 복지국가와 공존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3평 쪽방에서 스러져간 최약자층의 삶과 죽음에 대한 분노는 보편적 국가 복지에 대한 강렬한 요구로 이어진다. 시장경제는 합리성과 효율성으로 우리 삶을 윤택하게 떠받치지만, 경쟁에 따른 그늘을 어쩔 수 없이 만들어내고 이를 충분히 돌보지 않는 사회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하지만 보편적 국가 복지는 항상 방대한 비효율, 도덕적 해이, 부패로 이어져 왔다는 것이 선진국 복지국가의 경험이다. 따라서 눈덩이처럼 커져만가는 복지의 방만한 팽창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
 
선진국들도 쩔쩔매 온 복지국가의 딜레마를 우리 정치는 과연 잘 다룰 수 있을까? 한편으로, 방만한 복지정책이 결국 국가 파산 직전까지 치달았던 그리스 병(病)을 우리는 피해갈 수 있을까? 세수 기반이 취약한데도, 복지는 늘리고 세율은 인하하던 그리스의 포퓰리즘 정치를 우리는 피해갈 수 있을까? 다른 한편, 우리 정치는 방만한 복지 정책의 비효율, 부패를 공격하면서 마침내 ‘아기들 우유병 빼앗기’에 나섰던 영국 대처리즘의 속물 같은 합리화의 함정을 피해갈 수 있을까?
 
먼저 시민들이 여론조사를 통해 내보인 복지국가의 설계 방향과 복지 재원 충당과 납세에 관한 인식을 살펴보자. 이어서 복지국가 재편의 세 갈래 시나리오를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재건 몸부림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복지국가 재편과 보수 정치 재생
 
한국당을 중심으로 복지 재편 가능성을 검토하는 까닭이 몇 가지 있다. 한국당은 대통령 탄핵과 지방선거 참패 이후 여전히 보수 재생의 큰 그림은 엄두도 내지 못한 채 당내 싸움에 여념이 없다. 복지 재편과 같은 보편적 시대적 과제를 외면하기 때문에 당내 권력 투쟁은 더욱 자잘하고도 처절해지고 있다. 한국당이 복지·평화·동맹과 같은 절박한 시대적 화두를 정면으로 마주할 때야 비로소 유권자들은 보수 정당을 새삼 되돌아볼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당은 복지 포퓰리즘의 악순환에 동참하면서 방만한 복지국가로 가는 길을 닦을 것인가? 혹은 온라인 여론에서 광범하게 요구되는 바와 같이 공무원 연금의 대규모 개혁과 더불어 복지 예산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차가운 재편의 길’로 들어설 것인가? 혹은 수년 전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선구적으로 주장했던 ‘중부담 중복지’라는 실용적 선택을 할 것인가?
 
먼저 시민들이 복지정책에 대해서 가진 인식부터 검토해보자. 구체적으로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 복지 확대와 재정 건전성 딜레마에 대한 시민들의 태도, 복지를 위한 납세 의사 등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을 살펴보자.
 
시민들의 복지 인식과 토크빌 역설
 
최근 우리 시민의 복지에 대한 인식은 토크빌의 역설을 여실히 보여준다. 프랑스 출신의 자유주의자 토크빌이 200년 전 미국을 여행하면서 쓴 『미국의 민주주의』에는 개인과 국가의 역할에 대한 놀라운 통찰이 가득하다. 민주주의가 사람들의 관념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주로 다루고 있는 『미국의 민주주의』 2권의 관찰을 잠시 들어보자.
 
민주적 “평등의 시대에는 누구도 주위 사람을 도울 의무가 없으며 주위 사람에게서 어떤 큰 지원을 기대할 권리도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누구나 독립성을 지니는 동시에 나약해진다.” “모두가 무기력하고 냉정한 까닭에…전반적인 의기소침 속에서 홀로 우뚝 솟아 있는 거대한 존재로 눈을 돌리게 된다.” “마침내는 이 존재를 개인적인 나약함을 보강해주는 유일하고 긴요한 지원자로 간주하게 된다.” 바로 이 존재가 중앙정부이다. “중앙 권력은 평등을 옹호하고 고무한다. 평등이 바로 이러한 권력의 활동 반경을 특별히 촉진하고 확대하며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미국의 민주주의』 2권 4부 제3장)
 
시민들은 소득 격차가 우리 사회에서 심각하다고 여길 뿐만 아니라, 격차 축소는 정부의 책임이라고 강력하게 믿고 있다. 응답자의 약 70%가 소득 격차 축소는 정부의 책임이라고 답하고 있다. 이는 강력한 복지국가인 독일·스웨덴과 비슷한 수준의 인식이다. 일본(약 50%)이나 미국(약 30%) 시민들보다 훨씬 많은 압도적 다수가 소득 격차 축소는 정부 책임이라고 믿고 있다.
 
더 흥미로운 결과는 정부 책임을 강조하면서도 우리 시민들은 복지정책의 대원칙, 복지와 건전 재정 등에 대해서 매우 균형 잡힌 태도를 보인다는 점이다. 자격과 조건을 따지지 않는 보편적 복지(22.3%)보다는 선별적 복지(75.6%)에 대한 지지가 압도적으로 높다. 더 의미심장한 결과는 복지와 재정 건전성에 대한 팽팽한 균형 의식이다. 복지를 더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44.6%)과 재정 건전성의 유지가 더 중요하다는 현실적 견해(48.5%)가 팽팽하게 맞서 있다. 같은 맥락에서 복지 확대를 위해서 추가로 납세를 할 의향이 있다는 견해 역시 50.8%로 나타나 무조건적인 복지 확대와는 거리를 두고 있는 셈이다.
 
결국 공은 정치인들의 코트로 넘어와 있는 셈이다. 자신들의 의견을 좀 더 규범적으로 표현하기도 하는 여론조사에서 시민들은 매우 균형 있는 복지 의식을 내비치고 있다. 선별적 복지를 선호하고, 재정과 복지가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우리가 그리스·이탈리아·포르투갈·베네수엘라 등의 경우에서 숱하게 보아왔듯이, 권력 쟁취에만 혈안이 된 정치인들은 복지 포퓰리즘으로 시민들을 끊임없이 유혹하려 할 수도 있다.
 
보수정치 재생은 분노의 경제학을 넘어야
 
보수를 지탱하던 이념적 기둥들이 뿌리 뽑힌 이후, 보수 세력의 이념적 방황은 깊어가고 있다. 방황과 혼란은 복지정책에서 뚜렷하다. 하루는 복지의 무차별적 확장으로 기울다가, 다음 날은 복지정책의 합리화로 다시 기우는 혼란이 요즘 한국당의 현주소이다. 이달 초 한국당은 출산장려금 2000만원 신설, 아동수당의 대폭 인상과 보편 지급 방식으로 변경 등을 주장하고 나섰었다. 하지만 요즘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사립유치원 지원금의 공공성 강화, 회계 투명성 제고(흔히 박용진 3법으로 불리는)에 대해서는 지극히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 한국당의 혼란을 상징한다.
 
이러한 대혼란 속에서 보수 세력은 과연 보수의 재생이라는 장미꽃을 피울 수 있을까? 세 가지 선택지가 앞에 놓여 있다. 첫째, 이념적 혼란을 재빨리 벗어나려는 성급한 유혹에 굴복하는 복지 포퓰리즘의 길이다. 진보정부보다 더 과감하게, 더 호기롭게 복지를 전방위적으로 약속하는 길이다. 성급하고 손쉬운 유혹의 방향으로 기운 한국당 인사들을 시민들은 이미 알고 있다. 출산·육아·교육·취업·의료·노령연금까지 보편적 복지를 통 크게 약속함으로써 2020년 총선 승리를 노리는 길이다. 팍팍해지는 시민들의 삶의 분노와 성급함의 정치학이 만날 때, 단기적으로는 정치적 과실을 맛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리스·스페인·이탈리아의 경험이 생생하게 보여주듯이, 성급한 유혹의 정치는 다음 선거에서 또 다른 성급한 정치에 의해서 쉽게 대체되곤 한다.
 
공존·연대 정치의 리더십
 
둘째, 복지의 방만한 운영을 비판하면서 복지의 축소 내지는 합리화를 추구하는 길이다. 1980년대 신자유주의를 이끌었던 레이건과 대처는 이 길을 걸어갔지만, 끝내 복지 예산의 규모 자체를 줄이는 데에는 실패하였다. 이제 분노의 사회학과 분노의 경제학이 확산 중인 한국 사회에서 복지국가에 대한 전면적 비판과 축소 조정은 아마도 정치적 자살에 가까울 것이다.
 
셋째, 결국 남는 선택은 선택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의 균형, 재정 건전성과 복지정책의 균형, 현재의 혜택과 미래의 부담 사이의 균형이다. 균형 잡힌 복지국가는 위에서 보았듯이 다수의 시민이 여론조사에서 내보인 인식과도 통하는 것이다.
 
결국 문제는 한국당을 포함한 보수세력 안에 지속가능한 복지국가를 추구할 용기·매력·비전을 갖춘 정치 리더가 누구인가의 문제이다. 분노의 경제학이 내뿜는 에너지를 합리적 경제학과 포용의 정치학으로 전환할 수 있는 리더는 누구일까? 친박-비박, 복당파와 잔류파, 영남과 수도권의 갈등이라는 우물 안 싸움을 넘어설 인물은 누구일까? 분노의 열기를 공존과 연대의 정치로 끌어올릴 리더십을 찾는 것이 한국당과 보수 세력의 과제이다.
 
장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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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