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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돈 어디가]③생활SOC에 당신 돈 21만원…그게 뭐죠?

2016년 5월 이른바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지하철 2호선 강남역 10번 출구 모습. 여성들은 포스트잇을 붙이며 피해자를 추모했다. [중앙포토]

2016년 5월 이른바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지하철 2호선 강남역 10번 출구 모습. 여성들은 포스트잇을 붙이며 피해자를 추모했다. [중앙포토]

이른바 ‘강남역 살인사건’이 발생한 지 벌써 2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2016년 5월 강남역 인근 노래방의 남녀 공용 화장실에서 30대 남성이 20대 여성을 아무런 이유 없이 칼로 난자한 사건이었죠. 사건 후 강남역에는 피해자를 추모하는 포스트잇이 줄이었습니다. “나는 ‘여자’가 아닌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고 주장하는 내용이 많았고, 이후 이 사건은 본격적인 여성 담론을 형성한 시발점이 됐습니다.
 
사건 발생 직후 정부는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남녀공용 화장실을 줄여나가겠다는 것이었고요. 그런데 2년 넘도록 대책이 시행된 건 찾아보기 힘듭니다. 민간 건물에 정부 예산을 투입하는 게 옳으냐는 등을 따지다 사실상 손을 놓았고, 올해 처음으로 22억6000만원을 내년도 예산에 배정했습니다. 이 예산은 ‘생활 SOC’로 분류됩니다. SOC(social overhead capital)가 사회간접자본인 건 알겠는데, 생활 SOC는 낯설다고요. 그럴 만도 한 게, 생활 SOC란 개념 자체가 올해 처음 생겼습니다.
 
지난 8월 생활 SOC 확충 방안을 발표하면서 정부는 “‘공간ㆍ개발’ 중심의 대규모 SOC에서 탈피하고 ‘사람ㆍ이용’ 중심의 소규모 생활인프라에 대한 투자 비중을 늘리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한 마디로 도로나 항만 등 대규모 SOC를 줄이고, 그 돈으로 박물관ㆍ과학관ㆍ체육관 등 주민 밀착형 소규모 SOC를 짓겠다는 겁니다.
 
정부는 내년도 생활 SOC 예산으로 각 부처에 8조7000억원(전체의 1.8%)을 배정했습니다. 여기엔 전통시장 화재 알림시설 설치(2조3000억원), 노후주거지 도시재생(1조5000억원), 체육센터 개소와 도서관 리모델링(1조1000억원) 등이 책정돼 있고요. 100대 기업 근로자는 연평균 21만원의 세금을 생활 SOC 조성이란 명목으로 내는 셈입니다. (100대 기업 평균 연봉 5400만원×연간 조세부담률(21.6%)×생활 SOC 예산 비중(1.8%)=2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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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그간 강원도 양양 공항 등 대규모 SOC의 예산 낭비가 꾸준히 지적돼왔으니 타당한 문제의식이다. 그런데 미비한 점도 눈에 보인다”(우리금융연구소 허문종 연구위원)고 평가합니다. 실제로 한 걸음만 더 들어가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부분이 속속 드러납니다.
 
먼저 전에 없던 ‘생활 SOC’란 개념을 창안했지만, 구체적인 사업들은 사실 몇 년 전부터 해오던 ‘기존 사업’이 대다수입니다. 사업 개수로 보면 전체 149개 중 신규 사업은 14개(9.4%)고요, 이 사업들의 예산도 4015억원(4.6%)에 불과합니다. 새롭게 뭔가를 하는 건 10개 중 한 개도 될까 말까 하단 의미입니다.
 
게다가 기존사업 중 다수는 영 진도가 안 나가는 것들입니다. 올해 2547억원이 책정됐던 ‘관광자원 개발’ 사업의 경우 1225억원(집행률 43.3%)밖에 못 썼습니다. 시장 살리기의 하나로 수년 전부터 추진돼 온 전통시장 주차환경 개선 사업은 올해 집행률이 12.8%에 그칠 정도로 진도가 안 나갔고요. 위험도로 개선(32.1%), 도시 활력 증진 지역개발(22.5%) 사업 등도 비슷합니다.
 
지방선거의 전리품 아니냐는 의심도 나옵니다. 생활 SOC라는 개념을 들고나온 건 올 하반기로,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전국을 휩쓸다시피 한 직후입니다. 체육관이나 전통시장 환경 개선 등은 기초단체장의 치적이 되기 쉽습니다. 여기에 고용노동부는 지난 9일 ‘2018년 제5차 고용정책심의회’를 열고 “생활 SOC에 사회적 기업, 사회적 협동조합이 참여 주체가 돼야 한다”는 입장 밝혔습니다.
 
야당은 이를 놓고 제 식구 몰아주기 아니냐고 의심합니다. 다음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자유한국당 간사인 추경호 의원의 말입니다. 추 의원은 기획재정부 차관과 국무조정실장을 지낸 경제통입니다.
 
“사회적 기업이라는 게 기업으로서의 강점이 있는 곳은 아니다.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할 때는 사업 타당성도 봐야 하지만 이른바 ‘가성비’도 좋아야 한다. 그래야 예산의 효율이 생기는데, 사회적 기업은 민간 역량을 이길 수 없다.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의 참여 가능성을 열어놓는 수준이면 모르겠지만, 정책 목표를 설정해 몰아주듯 하면 필연적으로 부작용과 비효율이 생긴다. 여권의 우군 그룹에 재정사업을 몰아주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지난해 5월,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 1주기' 기자회견. 우상조 기자

지난해 5월,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 1주기' 기자회견. 우상조 기자

 
다시 강남역 살인사건 얘깁니다. 애초 정부가 밝힌 생활 SOC의 개념에 남녀 공용 화장실 지원 사업이 포함되는 게 딱 맞아떨어지는지 모호합니다. 그렇다 치더라도, 226개 시군구 당 2개씩 일괄 지원하겠다고 예산을 편성했는데,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입니다. 이에 대해 국회 예산정책처도 “각 지자체의 화장실 남녀 분리사업에 대한 수요를 먼저 파악한 뒤 예산을 편성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기존 사업을 박박 긁어모은 뒤 ‘생활 SOC’란 이름을 붙이고 특징짓는 건 마케팅이나 홍보 차원에선 일견 훌륭해 보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낸 세금으로 예산을 편성할 때 중요한 건 이런 식의 네이밍과 마케팅 실력은 아닐 겁니다. 정책이 치밀하게 수립되고 그에 걸맞은 예산이 적절히 집행되는지가 중요한 거죠.
"SOC 예산 조기 집행 필요"
대규모 SOC 사업을 줄이고 생활밀착형 SOC를 확대하겠다는 방향성에는 동의합니다. 이용객 없는 지방공항 건설 등으로 예산낭비를 초래한 경우가 많았으니까요. 과거 정부에서 4대강 사업 등 대규모 SOC를 진행한 데 대한 반작용 성격도 있어 보입니다. 정치적 결정의 측면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SOC 사업을 급격히 줄이면 그 충격은 클 수밖에 없습니다. 일자리 등 전체 경제에 끼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대규모 SOC의 빈자리를 생활 SOC로 메우기엔 예산 규모 자체가 달라 불가능합니다. 정부가 최근 “장기적으로 SOC 예산 삭감 속도를 조절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런 맥락에서일 겁니다.
경기 하락 국면인 만큼 생활SOC 확장과는 별개로 기존에 예정돼있는 고속철도 사업 등의 집행 시기를 앞당기는 식의 조기 집행도 검토해야합니다.
 
허문종 우리금융연구소 연구위원
 
특별취재팀=권호·서유진·한영익 기자 gnom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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