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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 北으로 간 감귤 5만톤···받았다는 北주민 얼마나 될까

특권층과 군부에 빼돌려진 감귤
제주산 감귤이 북한에 갔다. 200t에 이르는 물량으로 10kg짜리 박스로 2만 개다. 철통 보안 속에 준비 작업이 진행됐고, 이번 주 초 이뤄진 북송에는 공군 수송기까지 동원돼 말 그대로 ‘군사 작전’을 방불케 했다. 청와대는 지난 9월 남북 정상회담 때 북측이 송이를 보내온 데 대한 답례 차원일 뿐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한다. 따뜻한 섬 제주의 감귤을 통해 남녘 동포의 마음이 북한 주민들에게 전달될 것이란 기대감도 내비쳤다. 과연 그럴까. 대북 감귤 지원을 둘러싼 논란을 통해 문재인 정부 대북 접근 방식의 문제점과 남북 관계 현주소를 짚어본다.
  
감귤 대북 지원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남북 정상회담의 물꼬를 트기 위해 공을 들이던 김대중 정부가 집권 이듬해인 1999년 초 제주산 감귤을 북측에 보냈다. 노무현 정부 때까지 10여 년에 걸쳐 전달된 물량은 감귤 4만8328t 수준이다. 제주산 당근 1만8100t도 함께 갔다. 북한에서 ‘신비한 섬’으로 여겨지는 제주의 풍미를 북한 동포들에게 전하고, 남북 화해와 협력의 기운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란 취지에서다. 감귤 구입과 수송비 등에 230억원의 국민 세금이 쓰였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하지만 우리 대북 정보기관에 평양 내부의 이상 징후가 곧 포착됐다. 보내진 감귤 대부분이 노동당과 군부를 비롯한 권력 기관과 특권층에게 흘러 들어간다는 첩보였다. 김정일(2011년 사망) 국방위원장이 충성 유도를 위해 선물로 공급하고 있는 정황도 드러난다. 당근의 경우 노동당 간부 식당 등으로 흘러가 주스를 만들거나 요리 식자재로 쓰였다고 한다. 이런 움직임을 확인한 국가정보원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청와대에 이를 보고했고, 결국 대북 지원은 중단됐다. 통일부 당국자는 “당시 제주 출신이던 현인택 통일부 장관도 국정원 측의 구체적 정보를 통해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더 이상의 감귤 북송은 무의미하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런 북한의 전력 때문에 이번 대북 감귤 지원에 대해서도 우려가 제기된다. 김정은 정권이 감귤을 특권층 몫으로 또다시 빼돌리는 것 아닌가 하는 측면에서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대규모 지원이 전격적으로 이뤄진 데 대해 “대량으로 보내 되도록 많은 북한 주민들이 맛보게 하고자 하는 마음을 담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기대에 북한이 부응할 가능성은 적다는 게 대북 정보 관계자의 전언이다. 한 탈북 인사도 “북한 당국이 감귤을 일반 주민에게 나눠준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어떻게 분배했는지는 전혀 파악되지 않고 있다. 통일부는 “북측이 알아서 잘 활용할 것으로 생각한다”는 입장이다.
 
북한 관영 선전 매체들은 제주산 감귤 지원에 대해 아예 침묵하고 있다. 통일부는 그제 브리핑에서 “북한의 메시지나 반응은 없었다”고 밝혔다. 북한에 보내진 감귤은 아무런 표기가 없는 흰색 종이 박스에 담겼다. 별도의 설명을 하지 않으면 남한에서 북송된 감귤이란 걸 알 길이 없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제주산’이란 표시와 감귤 사진이 실린 포장 그대로 북한에 보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거 대북 쌀 지원 때는 우리 국민이 세금으로 북녘 동포를 위해 보낸 것이란 점을 알리기 위해 40kg들이 포대에 ‘대한민국’이란 글자를 큼지막하게 새겨 넣었다. ‘백지 포장’은 지나친 대북 눈치 보기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대북 수송에 우리 군을 동원한 대목도 부적절했다는 소리가 군 안팎에서 나온다. 지난 11일부터 이틀간 이뤄진 수송 작전에는 공군 C-130 수송기 4대가 투입됐다. 특권층으로의 전용이 우리 정보 당국에 의해 확인된 바 있고, 논란이 재연될 소지가 큰 상황에서 군 운송 장비와 장병을 내세운 건 부적절했다. 청와대와 정부는 민항기 이용이 어려운 대북 제재 상황이라 불가피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민간 트럭을 이용해 판문점 육로를 통한 전달하는 등의 방법이 있는데도 굳이 군을 개입시킨 건 비판 받을 소지가 크다. 대한민국 국군의 위상과 장병들의 자존심을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군 수뇌부가 입장을 분명히 했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안팎에서 나온다.
 
국방부의 처신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기개 있는 엘리트 장교는 장성 진급 이전 대부분 군 밖으로 퇴출당했다”는 한 영관급 장교의 말은 정권에 휘둘리는 우리 군의 단면을 엿보게 한다. 노무현 정부 당시 한 외교 안보 실세 인사가 “군 고위층 장악이 어려울 줄 알았는데 공연한 걱정이었다. 진급과 보직을 쥐고 흔들었더니 다 납작 엎드려 따라오더라”고 말한 대목이 떠올라 씁쓸하다. 9월 남북 정상회담에 수행한 당시 국방장관이 김정은의 제주 방문 문제가 화제에 오르자 그 앞에서 “해병대를 동원해 한라산에 헬기장을 만들겠다”고 언급한 건 서막에 불과할 것 같은 생각도 든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감귤 대북 지원을 결정하고 실행에 옮긴 시점이다. 평양 정상회담 당시 이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이 우리 경제·기업 인사들에게 “냉면에 목구멍에 넘어 가냐”는 핀잔을 준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국민 대북 여론은 들끓었다. 그런데 이 와중에 청와대 핵심 참모들은 제주 밀감밭에서 은밀한 수확 작업에 나선 형국이다. 감귤은 11월이 제철이라 가장 맛있기 때문이라는 게 관계 당국자의 설명이다. 감귤이 최고인 시절은 알면서도 국민들의 마음이 어느 절기에 가 있는지는 관심이 없는 듯한 분위기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문재인 정부가 통치 이념의 중심축으로 삼아온 ‘사람이 먼저다’를 빗대 ‘북한 사람이 먼저다’라는 비아냥까지 나온다. 우리 경제 상황이나 국민 대북 정서보다는 김정은 위원장과 북한을 우선 챙기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남녘의 특산물을 북녘 동포들과 나누는 것 자체를 탓하는 게 아니다. 넉넉한 걸 나누고, 서로 부족한 건 도와주는 유무상통(有無相通)은 남북 화해와 교류로 가는 초석이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때가 있고, 국민감정과 분위기는 더 중요하다. 여론 수렴은 무시한 채 국민 세금으로 펼치는 ‘깜짝쇼’는 지금까지로도 충분하다.
 
감귤을 챙기려 북한은 대남 기구인 조평통 부위원장급 인사를 평양 공항에 내보냈다. 김정은 위원장이 4월 판문점 정상회담 때 공들여 구축한 평양냉면 이미지를 ‘목구멍’ 망언으로 주가를 폭락시킨 이선권이 책임자로 있는 부서다. 안하무인식 대남 태도로 논란이 벌어진 판에 청와대가 서둘러 보낸 귤 산더미를 보며 북한 간부들이 뭐라 쑥덕거렸을지 궁금해진다. 분명한 건 이런 모양새는 국민들이 바람직하게 여기는 남북 관계 구도와는 거리가 있다는 점이다.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 이 기사의 취재·제작에는 정영교 통일 문화연구소 원구원이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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