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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힐만 "2년 동안 행복했어요. 또 올게요"

"2년 동안 한국에서 경험했던 시간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환상적이었다. 한국에서 보낸 2년간 행복했다."
 
SK 와이번스의 4번째 우승을 이끈 트레이 힐만(55) 감독이 눈시울을 붉혔다. 옆에 있던 통역도, 뒤에 서 있던 홍보팀장도 눈물을 흘렸다. 12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우승을 확정한 힐만 감독은 기자회견이 끝난 후 "감사합니다"라고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힐만 감독은 포스트시즌 전,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는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미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 소식을 들은 SK 선수들은 힐만 감독과 마지막 이별을 아름답게 장식하기 우승을 목표로 한마음이 됐다. 그리고 우승을 이뤘다.  
 
우승을 차지한 SK 와이번스 트레이 힐만 감독과 선수들이 '아이 러브 유(I Love you)'라는 의미가 담긴 수어로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승을 차지한 SK 와이번스 트레이 힐만 감독과 선수들이 '아이 러브 유(I Love you)'라는 의미가 담긴 수어로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미국에 이어서 한국에서도 프로야구 감독을 한다면, 진정한 '월드(world) 감독'이 되는 겁니다."
 
2016년 10월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 있는 트레이 힐만(55) 감독 집을 방문한 민경삼 전 SK 단장은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힐만 감독은 SK 감독직을 수락했다. 힐만 감독은 일본 니혼햄 파이터스(2003~07년) 감독과 미국 캔자스시티 로열스(2008~10년) 감독을 지냈다. 일본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아시아 야구에 관심이 커졌다. 하지만 한국 프로야구에선 어떤 제안을 받은 적이 없었다. KBO리그 구단에서 감독직을 제안하고, 구단 수뇌부가 직접 집까지 방문한 적은 SK가 처음이었다. 
 
민 전 단장은 "다들 '그렇게 대단한 감독이 한국에 오겠어?'라고 생각했다. 미국에 갈 때만 해도 미팅이 제대로 될지 걱정이 많았다"고 했다. 그런데 힐만 감독은 SK 관계자들의 방문을 아주 반가워했다. 민 전 단장은 "한국 야구에 대해 세세하게 질문하고 꼼꼼하게 메모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힐만 감독을 사로잡은 말은 '월드 감독'이었다. 힐만 감독은 "미국에서 일본에 갈 때는 몇 개월을 고민했는데, 한국으로 갈 때는 2주 밖에 안 걸렸다"고 했다. 1985년 내야수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계약했던 힐만 감독은 3년간 마이너리그에 머물면서 타율은 1할대에 그쳤다. 그래서 일찌감치 은퇴하고 1990년부터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나이 27세였다. 그리고 올해까지 28년 동안 그라운드를 호령하면서 세계 최초로 한·미·일 야구를 경험한 감독이 됐다.
 
SK 선수들이 힐만 감독을 헹가래하고 있다. [연합뉴스]

SK 선수들이 힐만 감독을 헹가래하고 있다. [연합뉴스]

 
힐만 감독은 부임하면서 특유의 '젠틀맨 리더십'을 발휘했다. 학연·지연으로 얽힌 한국 야구는 감독과 선수 사이에 상명하복이 뚜렷하다. 아무리 감독이 '편안하게 대하라'라고 해도 선수들이 행동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힐만 감독은 감독 눈치를 보는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선수들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고 스킨십을 했다.
 
경기 전 배팅볼을 직접 던져주기도 하고, 선수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주기 위해 몸을 아끼는 않았다. 지난 시즌엔 소극적인 성격인 외야수 정의윤이 부진하자 그의 스트레스를 풀어주기 위해 "나를 쳐도 좋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실제로 정의윤은 홈런을 터뜨린 뒤 세리머니로 힐만 감독의 가슴을 쳤다.
 
올해는 김강민, 박정권 등 베테랑 타자들이 부진하자 어쩔 수 없이 2군으로 보내야 했다. 하지만 팀 내 고참인 이들이 자존심이 상할까 싶어 김무관 2군 감독에게 "그날그날 기분을 잘 살펴달라. 사소한 변화도 꼭 알려달라"고 신신당부했다. 김강민과 박정권은 은퇴 고민도 했지만, 힐만 감독의 세심한 배려에 선수 생활을 계속했다. 그리고 가을야구에서 불방망이를 휘두르면서 맹활약했다.
 
힐만 감독은 "처음에 선수들이 나를 많이 어려워하는 게 아쉬웠다. 선수들에게 매일 일관성을 가지고 진심을 다해 이야기했다. 감독이 자꾸 말을 바꾸면 선수들과 신뢰를 쌓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했다. 코치진과 선수들의 건의사항도 적극 받아들였다. 송태일 육성그룹장은 "2군 코칭스태프와 2주에 한 번씩 면담 요청을 했는데 흔쾌히 수락해주셨다. 그 결과 2군에서 활약하는 선수를 많이 소개할 수 있었다"고 했다.  
 
소아암 어린이를 위해 모발 기부를 하기 위해 머리를 자르고 있는 트레이 힐만 SK 감독. 오른쪽은 커트를 도와주고 있는 힐만 감독의 아내 마리 여사. [사진 SK 와이번스]

소아암 어린이를 위해 모발 기부를 하기 위해 머리를 자르고 있는 트레이 힐만 SK 감독. 오른쪽은 커트를 도와주고 있는 힐만 감독의 아내 마리 여사. [사진 SK 와이번스]

힐만 감독의 유쾌한 행동과 농담도 선수들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힐만 감독은 지난해 팬들과 만나는 자리에는 배우 김보성으로 분장하고 나왔다. 그가 즐겨부르는 노래는 SK팬들이 좋아하는 ‘연안부두’다. 또 소아암 환우들을 위한 가발을 만드는데 기부하기 위해 1년 넘게 머리를 길렀다. 힐만 감독을 따라 '에이스' 김광현도 지난해 팔꿈치 재활을 하면서 기른 머리를 기부했다.
 
힐만 감독은 '감정 조절의 달인'이다. 지난 시즌 힐만 감독의 통역을 맡은 최홍성 SK 매니저는 "힐만 감독님이 화를 낸 적이 없다"고 했다. 힐만 감독은 포스트시즌 내내 기자회견장에서 유쾌한 농담을 자주 했다. '미세먼지가 심해 마스크를 쓰고 나왔나'는 질문에는 "못생긴 얼굴을 가리려고 쓴 것"이라며 웃었다. 경기에 지고 있어도 표정에 변함이 없다. 힐만 감독은 "화를 자주 내면 선수들이 내 눈치를 보고 실력 발휘를 못한다"고 했다.
 
구단 수뇌부에게 힐만 감독은 '나이스맨(nice man)'이다. 도통 요구사항이 없기 때문이다. 힐만 감독은 주어진 전력으로 최선의 전략을 세운다. SK는 몇년 전부터 비교적 작은 구장을 이용해 '홈런 군단'으로 변신하기로 정하고 거포들을 대거 영입했다. 힐만 감독은 부임 후 그런 이야기를 듣고 "나도 그에 맞게 준비하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최정, 제이미 로맥 등을 비롯해 김동엽, 정의윤 등을 적극적으로 기용했다. 지난해에는 홈런은 많지만 타율은 떨어지는 '공갈포 군단'이었다. 올해는 컨택과 출루도 강조했다. 그 결과 지난해 타율은 0.271에서 0.281로 늘었고, 홈런은 비슷하게(234개→233개)유지했다.
 
힐만 감독은 16일 미국으로 떠난다. 그에게 '훗날 한국에 다시 올 의향은 있나요'라고 물었다. 힐만 감독은 "감독으로 올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나중에 한국에 꼭 와서 SK 식구들을 만나러 오고 싶다"고 말했다.
 
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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