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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트렌드] 자동화 기계, 모터 연구개발 20여 년 열정 쏟은 두 장인

우리나라가 기술 강국이 되기까지 많은 기술인의 노력이 있었다. 이들을 포상하기 위해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은 2006년 8월부터 매달 ‘이달의 기능한국인’을 한 명씩 선정해 수상하고 있다. 10년 이상 산업체 현장실무를 쌓은 숙련기술 경력자 중 사회적으로 성공한 기능인이 대상이다. 올해 9·10월 ‘이달의 기능한국인’에는 이정원(60·왼쪽) SMT 대표와 봉원호(55) 봉봉전자 대표가 각각 선정됐다. 끊임없는 기술 개발로 산업 및 국가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자동화 기계 개발에 쏟은 27년
이정원 SMT 대표

이정원 SMT 대표

‘이달의 기능한국인’ 139번째 수상자인 이정원 SMT 대표는 27년간 현장에서 자동화 설비 생산과 자동차 부품 가공에 종사한 기계전문가다. 어린 시절부터 손재주가 좋았던 이 대표는 전역 후 기아기공(현 현대위아)에 취업해 공작기계를 조립하는 일을 했다. 기계 부품을 가공하는 공작기계는 기계 공업의 기초로 여겨지는 만큼 기계의 원리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야간에는 창원기능대 기계과를 다니며 이론적인 지식도 차근차근 쌓았다. 이때부터 사업에 대한 꿈도 조금씩 커졌다고 한다.
 
하지만 이 대표는 무작정 사업에 뛰어들지 않았다. 기계 관련 지식뿐 아니라 생산기술·품질관리 등 사업에 필요한 지식 및 경험을 쌓기 위해 1984년 두 번째 직장인 한국베어링에 입사했다. 생산기술 부서에서 근무하며 설계부터 공정·설비·품질관리 등 생산 전반과 관련한 노하우를 익혔다. 실력을 인정받아 29세의 젊은 나이에 고려정밀 공장장으로 일할 기회도 얻었다. 공장장으로 일하면서 현장을 관리하고 총괄하는 업무까지 두루 경험했다.
 
낮엔 직장, 밤엔 대학 다녀…매출의 4% 이상 R&D 투자, 1인 창업해 강소기업 일궈
 
92년 이 대표는 창업의 꿈을 이뤘다. 직원은 달랑 자신 한 명뿐이었지만 경남 창원에 지금의 ‘SMT’(옛 보국기업)를 설립했다. 주로 유공압(기름과 공기의 압력)을 응용해 타이어 알루미늄휠 부품을 제조하는 자동화 기계를 만들었다. 자동화 기계가 국내에 막 들어오기 시작했던 터라 크고 작은 기업에서 안정적으로 수주를 받을 수 있었다.
 
물론 아쉬움도 있었다. 사업이 승승장구한 덕에 지속적으로 사세 확장을 했지만 SMT만의 아이템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이에 2009년부터 매출의 4% 이상씩 연구개발(R&D)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기존보다 생산성을 30% 높이고 절반 이상 원가를 절감할 수 있는 ‘펀치 코팅’ 방법과 집진기용 인젝터 증폭 효율 증가 기술 등을 적용한 상품을 개발했다.
 
또 2015년엔 경남 밀양에 제2공장을 세우고 그 안에 사내 기술연구소를 설립해 연구 인력을 교육했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SMT의 이름을 건 상품인 투척용 소화기와 정미기계, 분도기(각도 측정 도구) 등이 탄생했다. 이 대표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내는 것을 기술인의 사명으로 여기며 일했다”며 “성과를 인정받아 좋은 상까지 받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영구적인 BLDC 모터 개발 성공
봉원호 봉봉전자 대표

봉원호 봉봉전자 대표

‘이달의 기능한국인’의 140번째 주인공은 봉원호 봉봉전자 대표다. 봉 대표는 22년간 각종 전동기구·가전제품·자동차에 사용되는 모터를 만들어온 모터 장인이다.
 
생계를 위해 고등학교 대신 성남직업훈련학교에 진학한 봉 대표는 아버지의 권유로 ‘선반’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매일 밤 10시까지 공부하는 노력파였다. 이후 선반뿐 아니라 밀링(절삭 가공)·연삭(거친 표면 가공) 등 기계의 기초 지식 전반을 두루 공부하며 당시 최초로 시행됐던 ‘기계가공기능사1급’도 취득했다.
 
봉 대표의 첫 직장은 동아건설이었다. 입사 때부터 그의 포부는 남달랐다. 면접 당시 동아건설의 공정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자신이 보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비치는 호기를 보였다. 그 결과 함께 입사한 동기보다 많은 연봉을 받을 수 있었고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했다.
 
직업훈련학교 나와 취업… 부인과 함께 창고서 창업, 연 매출 150억대로 키워
 
하지만 봉 대표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다. 사업가의 꿈을 위해 안정적인 생활을 포기하고 창원기능대 기계과에 진학했다. 대학 졸업 후에도 연합정밀에 취직해 실무를 익히는 등 창업을 위한 예비 훈련을 했다. 연합정밀에서는 탱크 탑승자들이 의사소통하는 데 쓰이는 ‘인터콤’ 개발을 위한 자동화 설비를 구축했다.
 
봉 대표의 사업은 96년 충남 천안시 쌍용동의 10평 남짓한 허름한 창고에서 ‘봉봉전자’라는 이름으로 시작됐다. 직원은 자신과 아내 둘뿐이었지만 전동공구에 들어가는 모터를 함께 제조하며 사업을 꾸려갔다.
 
이때도 봉 대표는 계속해서 미래를 고민했다. 전동공구 시장의 전망이 밝지 않다고 판단해 계량기 모터를 거쳐 BLDC 모터로 업종을 바꿨다. BLDC 모터는 가전제품과 자동차 등에 쓰이며 기존에 사용하던 DC 모터보다 에너지 효율이 좋고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BLDC 모터를 본격적으로 생산화 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고, 결국 2006년 자체 기술을 확보했다. 이후 지난해 기준 연 매출 150억원을 달성하는 큰 성공도 거뒀다.
 
봉 대표는 서울대 최고산업전략과정과 공주대 최고경영자과정을 거치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대책을 고민 중이다. 그는 “좋은 상황에서도 언제나 미래를 생각한 것이 성공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신윤애 기자 shin.yun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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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