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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작가·번역가·변호사·장학사업…'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나' 고민

정소연 변호사.

정소연 변호사.

“누구나 학창시절에는 각자의 전쟁이 있습니다. 학생은 공부를 잘하기만 해도 그 삶이 매우 안정적입니다. 저는 공부를 잘했기 때문에 부모님과 학교로부터 보호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 아마 공부 외에 다른 걸 저만큼 잘하는 사람은 그런 대우를 못 받았을 겁니다. 그런데 그것이 공정하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당시 누렸던 나의 평온이 실제로는 그렇게까지 평온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SF작가이자 번역가, 칼럼니스트, 현직 변호사. 정소연(36)씨를 소개하는 단어들입니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였던 그는 ‘전쟁 같았던’ 고교 시절을 보낸 후 무난히 서울대학교에 입학했죠. 전공은 사회복지학. 문과계열 전공을 죽 늘어놓고 맞지 않는 전공부터 제외해나가다 보니 사회복지학이 남았다고 해요. 장애인·청소년·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의 인권에 귀 기울이는 변호사로서의 자질이 이때부터 보였던 것 아닐까 싶은데요. 그는 현재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법률사무소 보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고교생 때 소연씨는 ‘★IMF키즈’였어요. 경남 마산에서 살던 그의 가족은 IMF사태 이후 아버지의 직장 때문에 경기도 일산신도시로 이주했죠. 일산에서 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모인 비평준 고교로 전학 가면서 그의 ‘전쟁 같았던 학창시절’이 시작됐습니다.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UN OHCHR) 캠페인 포스터 앞에서 포즈를 취한 정소연 변호사.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UN OHCHR) 캠페인 포스터 앞에서 포즈를 취한 정소연 변호사.

“전학을 가고 처음 3일 동안은 분위기가 좋았어요. 그런데 첫 시험을 보고 성적이 나온 후 분위기가 싹 바뀌더군요. 비평준 고교이다 보니 내신 경쟁이 심했는데 제가 전학을 간 순간 아이들의 석차가 하나씩 내려갔던 거예요. 그때 아이들이 저를 ‘386’이라고 불렀어요. 첫 모의고사에서 400점 만점에 386점을 맞아서죠. 제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면서 저를 따돌리기 시작했어요.”
 
소연씨는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잘못한 게 없는 것 같았고, 부당하다는 생각에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리고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죠. 가해자는 분명하지도 않은데 자신은 이렇게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다른 학생들도 피해자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때 저를 따돌린 아이들이 나쁘기 때문에 그랬다고 생각했다면 아마 그 상황을 견딜 수 없었을 거예요. 전학을 알아보기도 했지만 제가 공부를 못하지 않는 이상 어딜 가더라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였어요. 그래서 다른 아이들도 피해자라는 생각으로 그냥 버텼어요.”
 
고교 시절 아픈 경험은 사회복지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이유이기도 한데요. 개인의 노력이나 착한 마음과는 상관없이 세상에는 옳지 않은 일이 있다는 것, 그리고 사람마다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다르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에요. 다행히 대학에서는 매우 평화롭게 공부할 수 있었죠. 전공 특성상 기질이 비슷한 친구들이 많았고 사회복지학도 적성에 잘 맞아서 석사와 박사 3년차 과정까지 공부했죠.
 
국제노동기구(ILO) 총회에 참석한 정소연 변호사.

국제노동기구(ILO) 총회에 참석한 정소연 변호사.

어린 시절 책을 좋아했던 소연씨는 대학생 때 작가로서의 글쓰기에 도전했습니다. SF소설을 좋아했던 그는 2005년 미국의 여성 SF작가 케이트 윌헬름의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를 번역해 출간했어요. 이후에도 여러 책을 번역하면서 자신에게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는 욕구가 생겼죠. 그의 첫 단편소설 『우주류』는 만화 스토리로 당선돼 과학기술창작문예에서 가작을 수상했어요.
 
“번역을 할 때는 ‘누군가가 이 책을 읽으면 덜 힘들 것 같다’는 방향성을 갖고 의식적으로 책을 고르는 편이에요. 반면 소설은 창작자로서 자유로운 영역인 만큼 제가 쓰고 싶은 걸 써요. 특히 논픽션을 쓸 때는 저한테 공식적으로 발언권이 주어진 것이니까 제가 꼭 말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합니다.”
 
젊은 작가인 그의 이력은 화려합니다. 2006년 제48회 서울대학교 대학문학상 소설 부문에서 ‘마산앞바다’로 가작을 수상했고, 『잃어버린 개념을 찾아서』(창비), 『U-ROBOT』(황금가지), 『백만 광년의 고독』(오멜라스) 등 국내 과학소설 단편선에 여러 작품을 게재했어요. 2015년 10월에는 첫 단편 소설집 『옆집의 영희 씨』를 출판했죠.
 
“청소년 독자들이 제 소설을 ‘인생소설’이라고 공감해줄 때가 있는데 소설의 완성도 측면도 있겠지만 그들의 정서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모든 소설에는 제 자신이 조금씩 들어가 있어요. 가끔 어떤 독자들은 이야기 안에 있는 저를 만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소설 안에 제가 경험했던 강렬했던 감정이 있고 그 감정이 어느 정도는 보편성이 있기 때문에, 어떤 독자들에게는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노동법학회에서 강의를 하는 모습.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노동법학회에서 강의를 하는 모습.

소연씨의 첫 번역 책이 3년 만에 절판되면서 그에게도 슬럼프가 찾아왔어요. 책을 내는 것 말고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하던 20대 중반, 마침 로스쿨 제도가 도입됐죠. 좀 더 사람과 맞닿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로스쿨 진학을 결심했어요. 로스쿨 1기 출신으로 지금은 7년차 변호사인 그는 자신이 어떤 변호사라고 생각할까요.
 
“‘자신의 일에 매우 만족하는 변호사’예요. 변호사는 남을 대리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자신이 선호하는 사건을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에요. 예를 들어 알바생들의 열악한 노동 현실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싶더라도 변호사인 저는 당사자가 아니므로 직접 할 수 없죠. 당사자가 저한테 사건 의뢰를 해줘야 진행이 되니까요. 변호사가 되면 활동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어요. 대신 좋은 점은 누군가 나서기만 하면 거의 확실히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겁니다.”
 
★민변(民辯) 소속 변호사로 활동하며 소연 씨가 맡은 사건들을 보면 ‘도움이 필요한 이에게 꼭 필요한 도움을 준다’는 공통된 가치관이 녹아 있습니다. 2016년 세월호 2주기를 맞아 홍대 앞에서 집회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경찰에 잡혀간 대학생들이 인권을 지킬 수 있도록 대리인으로 나서기도 했어요.
 
“세월호 2주기 집회 때 일이에요. 집회 참가자들은 한 번 용기를 냈다는 이유만으로 경찰에 잡혀갔고 사소한 문제들을 해결 못 해 피해를 입는 상황이었어요. 그 사소한 상황이 계속되면 점점 문제가 커지고, 삶에 더 큰 피해를 입게 됩니다. 그럴 때 변호사가 개입하면 피해를 줄일 수 있어요. 저는 그런 활동에서 보람을 느끼고 그런 도움들이 모여서 우리 사회가 더 안전해진다고 생각해요. 할 수 없는 일도 많지만 변호사만큼 남을 확실히 도울 수 있는 직업은 없어요.”
 
‘보다 이니셔티브’ 활동 중 하나로 캄보디아 캄퐁참(Kam pong Cham) 주 소재 웨스턴 대학(Western University) 도서관에 300권의 책을 기증했다.

‘보다 이니셔티브’ 활동 중 하나로 캄보디아 캄퐁참(Kam pong Cham) 주 소재 웨스턴 대학(Western University) 도서관에 300권의 책을 기증했다.

그의 활동은 다음 세대를 육성하는 장학사업으로 확대되고 있는데요. ‘보다 이니셔티브(Boda Initiative)’를 설립하고 지난해부터 우리나라를 비롯한 베트남·캄보디아·네팔 등 4개 나라의 여학생 39명에게 대학에 갈 수 있도록 지원하기 시작했어요. 이미 불균형한 세상에서 많은 여학생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생각해 볼 기회가 최대한 많이 주어져야 한다는 이유에서죠.우리나라 교육의 방향성에 대해서도 “청소년들이 하고 싶은 것을 선택했을 때 그것을 해 볼 기회를 주는 사회가 돼야 한다. 그래야지 뭘 하고 싶은지 알 수 있다”고 말했어요. 
 
“청소년은 나에 대해서,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변호사로서 남을 돕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도 인정욕구의 한 부분이에요. 어떤 것이 나를 더 행복하게 하느냐의 문제인 것 같아요. 이러한 인정욕구와 사회적 활동이 고리처럼 이어지는 것에 대한 교육이 약간 부족하지 않나 생각해요. 사람의 욕구가 여러 가지 활동으로 충족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교육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IMF 키즈: IMF 시절에 십대를 보낸 세대. IMF는 International Monetary Fund, 즉 국제통화기금이라는 뜻으로 경제가 어려운 나라에 돈을 빌려주는 곳이다. 1997년 우리나라는 외화 보유액이 부족하고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IMF의 도움을 받았다. IMF는 돈을 빌려주는 대가로 우리나라에 경제 구조를 개선하도록 요구하는 등 간섭했다.
 
★민변(民辯):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Lawyers for a Democratic Society)의 줄임말로, 대한민국의 변호사 단체다. 인권, 시국 사건의 변론을 주로 맡아 온 중진 변호사 30명과 젊은 변호사 16명이 참여해 1988년 결성했다. 현재 노동, 소수자인권, 여성인권, 정보인권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변호사 1000여 명이 가입해 있다.
 
글=김은혜 꿈트리 에디터 
 
※’자기주도진로’ 인터뷰는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발행하는 자유학기제 웹진 ‘꿈트리(dreamtree.or.kr)’의 주요 콘텐트 중 하나입니다. 무엇이 되겠다(what to be)는 결과 지향적인 진로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겠다(how to live)는 과정 중심의 진로 개척 사례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틀에 박힌 진로가 아닌, 스스로 길을 개척해 나가는 진로 사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현재의 성공 여부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서 행복을 찾고, 남들이 뭐라 하든 스스로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멋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나의 길’을 점검해 보시기 희망합니다. 꿈트리 ‘자기주도진로’ 인터뷰는 소년중앙과 협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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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