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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R&D 연구자들의 '영수증 풀칠'을 진짜 없애려면

올해 과학기술 분야 국정감사에서는, 모 기관장이 내부 규정을 바꿔 자신을 펠로우(Fellow)로 임용한 ‘셀프 임용’ 문제, 돈만 주면 논문을 실어 주고 해외 유명 관광지에서 발표기회를 제공하는 ‘가짜 학회’ 문제가 집중 조명을 받았다.  

국제학술대회를 주관한다는 WASET 홈페이지. 세계유명도시마다 컨퍼런스를 연다고 돼 있다. 개별 도시의 컨퍼런스에는 특정 주제가 아닌 백화점식 주제의 학술대회가 망라돼 있다. [인터넷 캡처]

국제학술대회를 주관한다는 WASET 홈페이지. 세계유명도시마다 컨퍼런스를 연다고 돼 있다. 개별 도시의 컨퍼런스에는 특정 주제가 아닌 백화점식 주제의 학술대회가 망라돼 있다. [인터넷 캡처]

 
이러한 특별한 이슈와 더불어 해마다 단골 메뉴처럼 등장하는 정부출연연구소의 ‘연구과제중심운영제도(PBS)’의 문제점도 거론되었다. PBS의 문제점은 연구자 인건비 중 일부만 정부의 출연금에서 받고, 나머지는 연구자가 직접 외부에서 연구 과제를 수주해 자신들이 알아서 능력껏 먹고 살 비용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올해도 이 문제에 대해 별다른 해결 방안을 마련하지 못하였다. 한 국회의원은 “이게 ‘연구과제수주 주식회사’지 어떻게 정부출연연구소냐”며 강력하게 비판했다고 한다.  
 
정부출연연구소의 인건비는 연구소의 이름에 적혀 있듯이 정부출연금으로부터 지급되어야 타당하다고 본다. 정부출연금이라는 말은 1966년 설립된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초대 소장 최형섭이 만들었고 그해 12월에 제정된 KIST 육성법 제2조에 처음으로 명시된다. 그의 회고록에 따르면, 기부금이라는 말을 쓰자니 좀 속된 표현 같아서 어감이 좋은 말을 찾은 것이 ‘출연금’이었다고 한다. 산업화 시대에 공업화를 이룩하기 위해 선진국 ‘산업기술’의 내재화라는 시대적 사명에 과학자들을 내몰았던 그였지만 과학자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대우에는 나름 신경 쓴 모양이다.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지난 10월10일 오전 경기도 과천시 중앙동 정부과천청사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과기정통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지난 10월10일 오전 경기도 과천시 중앙동 정부과천청사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과기정통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KIST의 정부지원금에 ‘출연금’이라는 격조 높은 단어를 생각해낸 최형섭 소장은 KIST를 운영할 때에 연구의 자율성을 최대한 확보하고자 하였다. 그는 연구라는 것은 학문적인 기초와 축적을 가진 능력 있는 인재가 독창적으로 모르는 것을 아는 것으로 만들어내는 일이기 때문에 연구하는 사람에게는 일할 수 있는 최대한의 지원이 필요한 것이지, 감독이나 제약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연구의 자율성에 대한 그의 확고부동한 생각은 1966년 12월에 제정된 KIST 육성법에 대한 그의 개정 활동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처음 제정된 육성법에서는 KIST의 연구계획은 당시 주무부처인 경제기획원 장관으로부터 ‘승인’을 받아야 했다. 이것은 최형섭 소장이 처음 구상한 틀과 전혀 맞지 않는 것으로, 국회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바뀌게 된 것이었다. 이에 최형섭 소장은 대통령에게 달려가 당장 개정의 필요성을 말하고 개정안을 제출한다. 
 
그는 직접 국회의원들 앞에 나가 설득하였고, 이에 대해 야당 중진의원 중 한 사람이 “과학기술을 잘 아는 소장에게 믿고 맡겨 보자”라고 제의하여 여야합의로 최형섭 소장의 개정안은 1967년 3월 임시국회에서 통과되었다고 한다. 개정된 법안에서는 연구계획은 경제기획원장관에게 ‘보고’하고, 연구소에서 고용한 공인회계사가  세입세출결산서를 작성하여 주무장관에게 ‘제출’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개정된 육성법은 1981년 폐지되어 한국과학기술원법으로 대체될 때까지 단 한번의 수정도 없었다고 한다.  
고 최형섭 전 KIST 원장이 한국과학재단이사장 시절 김정흠 고려대 물리대 교수와 함께 대담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고 최형섭 전 KIST 원장이 한국과학재단이사장 시절 김정흠 고려대 물리대 교수와 함께 대담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최형섭이 생각하는 자율성은 한마디로 과학자들이 영수증에 풀칠하며 증빙자료를 제출하는 행정 잡무에 시달리지 말고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자율성에 따른 책임도 강조하고 있다. 즉, 자율성은 돈을 흥청망청 쓰자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연구자들 스스로가 ‘질서’ 즉 자주적인 운영 시스템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제기된 ‘셀프 임용’, ‘가짜 학회’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질타에 대한 피감사 기관장들의 답변들에서 질서를 스스로 찾아가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관리 기관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엄정한 징계 요구에도 불구하고 해당 기관에서 징계 당사자에 대한 징계 수위를 낮추었다고 질타하는 모습을 보니 씁쓸할 따름이다.
 
연구 현장에서 일부 연구자들에 의하여 저질러지는 무질서에 대하여 연구기관 스스로 질서를 찾아가지 못한다면 감독기관으로부터의 관리는 엄정해지고 이에 대한 행정 절차는 추가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즉, 연구에 몰입해야 할 연구자들의 영수증 풀칠은 강화될 수밖에 없고 PBS 문제의 해결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부경호 IBS 박사

부경호 IBS 박사

 
부경호 기초과학연구원(IBS) 이노베이션팀 책임기술원(박사, 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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