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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웅의 검사각설] 사람을 죽이는 ‘같은 생각’

김웅 대검찰청 미래기획단장(검사)

김웅 대검찰청 미래기획단장(검사)

트롬핌 리센코는 스탈린 시절 소련 최고의 생물학자였다. 그는 밀을 겨우내 저온, 다습한 곳에서 보관한 후 이른 봄에 심는 이른바 ‘춘화 처리법’이라는 밀 농사법을 발명했다. 이 춘화 처리법은 마침 그해의 기후와 맞아 떨어졌고 다소 수확량이 늘었다. 그는 이 우연한 결과를 검증해 보지 않고 자신의 머릿속에 있던 상상이 증명되었다고 확신했다. 1930년대 그는 멘델의 유전학을 거부하고 ‘리센코주의’라는 자신의 이론을 내세웠다. 춘화 처리로 추위에 적응한 밀의 형질이 유전된다는 것이었다.
 
물론 지금은 획득형질도 일부 유전된다는 여러 가지 실험 결과들이 나오고 있지만 모든 획득형질이 그런 것은 아니다. 그의 이론은 사회주의 사상과 비교적 잘 부합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소련 공산당에 의해 진실로 받아들여졌다. 그래서 어느 해 우연히 좋은 결과를 낸 춘화 처리법은 소련의 전 농장에서 실행됐다. 당연히 추위를 이기지 못한 밀들은 대량으로 고사하기 시작했고 곧 어마어마한 규모의 기근이 시작됐다.
 
검사각설 11/12

검사각설 11/12

그러나 소련 공산당과 리센코는 그들의 신념과 선전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사실을 검증하지 않고 오히려 데이터와 통계를 조작했다. 진실을 말하는 과학자들을 공격하고 숙청하였으며, 그중 일부를 반동으로 몰아 사형에 처했다. 결국 수백만 명이 굶어 죽었다. 일종의 ‘반향실 효과(echo chamber effect)’다. 생각이 비슷한 사람끼리 뭉쳐 있을 때 편협한 사고방식은 더욱 증폭되고 극단화된다. 그래서 리센코주의는 중국 공산당에까지 도입되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을 굶겨 죽였다.
 
폐쇄적인 집단화와 무비판적인 동류의식은 지금도 사라지지 않는다. 이런 시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듣는 것은 결국 내가 듣고 싶어 하는 것’이라는 냉철한 자각이다. 다양성과 수평적 의사결정이 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로 의사결정기구를 구성하고 귀에 거슬리는 이야기들부터 들어야 한다.
 
물론 거대한 장벽을 세워 스스로 반향실을 만들고 구미에 맞는 이야기들로만 채워도, 그들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늘 가장 약한 고리부터 끊어지고, 피해를 보는 것은 약자들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백만 명을 죽였지만 리센코는 천수를 누렸다.  
 
김웅 대검찰청 미래기획단장(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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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