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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의 시선] 제화공의 소명

이훈범 논설위원

이훈범 논설위원

사람은 ‘호모 라보란스(Homo Laborans)’, 즉 ‘일하는 동물’이다. 그렇다고 일의 의미가 누구에게나 같은 것은 아니다. 미국의 사회학자 로버트 벨라는 사람이 자신의 일을 대하는 방식을 세 가지로 구분했다. 직업(job), 경력(career) 그리고 소명(calling)이다.
 
일을 직업으로 대하는 사람은 일을 함으로써 얻는 물질적 보상에만 관심을 갖는다. 직업은 결코 삶의 목적이 아니며, 일터에서 벗어나 나머지 시간을 즐기는 데 필요한 자원을 얻는 수단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들의 관심은 일을 통한 성취가 아니라 다른 것이다. 그것은 어려운 사람을 돕는 봉사활동일 수도 있고, 부동산·주식 투자 등을 이용한 재산 불리기일 수도 있다.
 
일을 경력으로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사회적 지위와 권력, 명성, 수입을 최대화하는 것이 삶의 목표다. 따라서 일에 물리적이나 시간적으로 투자를 많이 하게 되며 조직 내에서 ‘승진’을 중요시한다. 하지만 이들에게 성취란 일을 통해서가 아니라, 승진을 통해서 얻는다. 따라서 조직의 미래보다는 자신의 미래에 더 관심을 갖게 되기 쉽다.
 
일을 소명으로 느끼는 사람에게는 일 자체가 곧 삶이다. 그에게 일의 목적은 물질적 보상이나 승진, 명성 따위가 아니라 일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성취감이다. 소명은 사실 종교적인 의미였으나 종교개혁과 함께 세속적으로 확대됐다. 마르틴 루터는 당시 금욕적인 이상을 추구하고 세속적인 직업을 비판하던 가톨릭 직업윤리에 반대하며, 세속적인 직업들도 영적인 중요성을 지닐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일을 열심히 수행함으로써 인류 복지 향상에 기여한다면, 그것은 곧 신을 기쁘게 하는 일이며 소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사람과 일의 모든 관계가 명확하게 세 가지 부류로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두세 가지의 특징이 조금씩 겹치는 게 오히려 일반적일 것이다. 하지만 어느 한쪽에 극단적으로 치우치는 사례가 있고, 이럴 경우 탈이 나기 마련이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얼마 전 회계비리가 폭로돼 사람들을 공분케 한 일부 유치원의 경우는 대체로 직업으로서 일을 대하는 사람들의 극단적인 사례다. 원장이 자신이 번 돈으로 명품백이나 성인용품을 구입하는 거야 간섭할 바가 아니다. 하지만 그 돈이 두부 2모로 50인분 국을 끓여서 남은 돈이거나, 국가에서 준 지원금이었다면 비난을 받아 마땅한 것이다. 게다가 자신들에게 불리한 입법이 추진된다고 동업자인 유치원 교사들과 대안이 없는 학부모들은 나 몰라라 폐업 ‘위협’을 하는 것은 교육자로서의 ‘소명의식’은 찾아볼 수 없는 안타까운 행동이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선전하며 ‘컬링 신화’를 만들었던 ‘팀 킴’의 폭로 사태는 일을 경력으로 생각하는 극단적 사례가 빚은 결과라 할 수 있다. 올림픽 당시 팀 킴 감독의 부친은 사상 첫 컬링 올림픽 은메달의 산파역을 담당한 인물이다. 그가 없었다면 경북 의성에 컬링 훈련장이 세워지지 못했을 것이며 팀킴의 메달도 불가능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는 한국 컬링의 대부(代父)가 되고자 했으며, 그럴 자격이 있다고 믿었다. 자신이 모든 걸 좌지우지하고 싶어했고, 그것이 한국 컬링의 발전에 역효과를 낸대도 상관없었다. 심지어 8년 전 훈련장을 건설할 당시 남자 컬링 선수들을 건설인부로 동원했다는 기막힌 폭로까지 나왔다.
 
일을 소명으로 느끼는 사람은 의외로 많다. 현장에서 묵묵히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외상외과 전문의 이국종 교수 같은 사람이다. 2011년 아덴만 여명작전으로 국민적 관심을 끌어 권역외상센터가 세워졌지만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게 외상치료의 현실이다. “병원으로서는 다른 부분에 투자하면 막대한 수익을 창출할 수 있지만 외상센터는 제대로 운영하면 무조건 적자”인 상황 속에서도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줄기차게 문제를 제기하며 의료계의 ‘트러블 메이커’를 자처하기란 ‘소명’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모든 사람이 이국종처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저 자기 일을 열심히 할 수는 있다. 일을 직업으로 생각하든 경력으로 여기든, 최선을 다해 자기 일을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게만 한다면 특별한 소명의식이 없더라도 건더기 없는 국을 아이들에게 먹이지는 않을 것이고, 자기 말에 토를 단다고 팀원을 교체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게 바로 이국종이 지난 주말 TV에 나와서 한 말이다. “제가 말하는 정의란 대단한 것이 아니다. 각자 자기 자리에서 자기 할 일을 한다는 건데, 자신의 일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누구의 의중에 맞춰 업무지시 방향이 이럴 거라고  지레짐작해서 윗사람, 여론 눈치로 그 방향의 유불리를 따져서 움직이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루터가 한 말도 그것이다. 제화공이 신의 말씀을 전하는 성직자만큼이나 자신의 위치에서 신의 영광을 드높일 수 있는 것은 인간의 발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신발을 만들기 때문이지, 싸구려 불량품을 속여 팔아 돈을 많이 벌거나 고귀한 사람만 신을 수 있는 값비싼 신발을 만들기 때문이 아닌 것이다. 
 
이훈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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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